별 것 아니지만 by 보리
나는 오랫동안 이른바 식물 킬러였다. 내 손에만 들어오면 일 년을 버티지 못하고 모든 식물이 시들어갔다. 그래서 한동안 식물을 집에서 키우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유일하게 테이블야자와 몬스테라 키우기에 성공했다. 식물 키우기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충분한 햇빛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동안 살았던 집들은 대부분 빌라나 원룸, 그도 아니면 반지하를 면하지 못했다. 당연히 식물을 키울 엄두도 내지 못했고 빌라나 원룸 앞으로 가로막힌 높은 건물로 인해 일조권이 확보되지 못한 환경이었다. 다행히도 시골에 살면서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충분하게 들어오는 햇빛 덕분에 식물들이 살 수 있었다.
집에 식물을 키우는 이유는 공기정화 등 여러 가지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집안에 생생함을 불어넣기 위함이다. 물건들과 가구만 있는 공간에 식물이 자리하는 순간 삭막한 분위기가 생명이 가득 찬 공간으로 바뀐다. 봄이 되면 분갈이를 해주고 햇빛을 볼 수 있게 창가에 놓아주며 흙이 마르지 않게 물을 주는 것만으로도 바로 옆에서 생명의 지속성을 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역시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는 정성만 한 것이 없다.
식물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한때 잠깐 만났던 이른바 남자 친구가 선인장을 준 적이 있다. 빌라에 살 때였다. 선인장이니 자주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창가에 두고 ‘까치’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왜 굳이 이름까지 붙여주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 달 정도 일이 있어서 집을 비우게 됐다.
장마철로 습도가 높고 숨만 쉬어도 끈적거리는 날이었다. 한동안 거주하지 않았던 집에는 이곳저곳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선인장에 물을 주려는 순간, 선인장의 목이 꺾어졌다. 이유가 뭐지, 곰곰이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남자 친구와 헤어진 뒤라 별 망설임 없이 까치를 버렸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참으로 단순한 생각과 행동이었던 것 같다. 식물 하나라도 그것이 곧 생명일 텐데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이전 관계에서 오는 감정만을 생각하는 못난 생각 말이다. 그 뒤로 한동안 식물 키우기를 생각하지 않았다.
봄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식물 모종을 판매한다. 매년 보게 되는 장면이지만 그 또한 매년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저들의 아름다움에는 어떤 슬픔과 고통이 숨어 있을까, 하는 감정 말이다. 그리고 저들에게 손을 내미는 우리 인간들의 끝없는 구애가 이토록 눈물겹다고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나만의 착각일까. 몬스테라 잎에 맺힌 물방울 하나를 보며 하염없이 상념에 젖어드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