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니지만 by 보리
돌아가신 아버지는 커피를 좋아했다. 매년 아버지 산소에 가면 언니는 늘 잊지 않고 믹스커피를 보온병에 타서 가지고 온다. 제사라고 정해진 규칙 같은 것 따르지 말고 생전에 좋아하시던 것으로 이것저것 올리는 것이 낫지 않냐는 것이 언니의 지론이었다. 나머지 식구들은 별다른 부정 없이 순순히 받아들였다. 남은 커피는 당연히 내가 마신다.
집에서 아버지의 심성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하는 나 역시 커피를 좋아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달달한 다방 커피를 집에서 타서 마셨다. 믹스커피가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커피 두 수저, 프리마 세 수저, 설탕 세 수저에 가스레인지에서 팔팔 끓인 물을 넣어서 마셨다. 커피 한 잔이면 정신도 각성되고 출출한 배를 잠시 잊게 해주기도 했다.
대학교 재학 시절 ‘섬’이라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카페 섬은 지하에 있었다. 지하로 내려서는 순간 꿉꿉한 지하 냄새가 코를 찌르지만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커피 냄새로 위로를 받는다. 최백호 노래에 나오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 같은 카페다. 테이블마다 성냥과 재떨이가 놓여 있고 잔잔한 음악이 턴테이블을 통해 흘러나온다.
섬 주인 언니는 멋있는 여자였다. 그 당시 삼십 대 중반의 섬 언니는 동그스름한 얼굴에 얼굴을 반쯤 가린 긴 머리, 잔잔하고 그윽하게 다른 이들을 쳐다보던 깊은 눈매를 가졌다. 카운터에 앉아 엘피판을 고르며 천으로 살짝 닦아내고 턴테이블에 올리던 가늘고 긴 손가락. 나는 카운터 앞에 마주 앉아 그녀의 손놀림을 유심히 지켜보았지만 이십 대의 감성으로 조잘거리며 그녀를 귀찮게 하지는 않았다.
섬 언니는 커피 타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 당시 가장 유행하던 커피는 비엔나커피였다. 커피에 아이스크림을 얹는 것인데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내 비엔나커피만큼은 언니가 직접 만들었다. 언니가 가르쳐준 방법은 이랬다. 커피를 탈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물 온도라고 한다. 그야말로 뜨겁게 끓인 물이 가장 맛있다. 지금의 미지근한 생수에 타 마시는 커피는 커피가 아니라 커피 물인 것이다. 인스턴트커피를 넣고 팔팔 끓은 물을 천천히 잔에 돌려가며 부어주어야 커피의 풍미가 살아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런 뒤에 프리마와 설탕을 넣어준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집에서 커피를 마실 때는 그렇게 마신다. 이래서 학습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전북 진안에서 기자로 일하던 당시 상가 탐방을 다녔다. 신문사 근처에 있던 다방 한 곳이 도로 확장으로 인해 문을 닫는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다방에서 일하고 있던 아가씨들은 나를 마뜩잖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다행히도 다방 마담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줬다. 우리가 흔히 마담이라 생각하면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올림머리를 하며 화려한 옷을 입고 있을 거라 상상하게 된다. 아무래도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마담은 생각보다 수수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안경을 쓰고 긴 파마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겼다. 이야기하는 내내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16년 동안 다방 마담을 한 연륜이 보였다. 시골에 사는 외로운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어 주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아침 8시에 문을 열어 밤 12시가 되어서야 영업이 끝난다.
마담은 이제는 안정적인 일을 하며 나이가 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멋진 마담의 말에 달달한 다방 커피 한 잔 마시고 나오는 길,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다면 이번에는 내가 마담에게 커피 한 잔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게 커피는 하루를 시작하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 밤사이 꿈으로 지친 내 영혼을 달래며, 오늘도 살아내야 할 하루를 응원해주는 위로의 음식이다. 커피를 음식의 범주에 넣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허기진 배를 믹스커피 몇 잔으로 달래던 배고픈 이십 대 시절을 생각하면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음식인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