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꽃이 피었습니다

by 김보리

아이가 태어난다.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문이 트이면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엄마'다. 걷기 시작하면서 이것저것 궁금해지기 시작한 아이는 책을 본다. 책을 보지만 글을 모르니 그저 형상화된 그림일 뿐이다. 그래서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읽고, 쓰기를 반복한다. 당연한 생애주기지만 1960년대 이전만 해도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못했다.

먹고살기도 빠듯한 가정형편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일은 장남만 가능했다. 장남이라도 학문을 깨우쳐야 집안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다. 여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학교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 그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당신은 비록 배우지 못했어도 내 아이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학교 문턱을 넘게 했다. 농사만으로는 어려워 행상을 하고, 바느질을 해서, 품을 팔아 학비를 마련했다. 아이들은 무사히 학교를 졸업했고, 모두 각자 취업을 해서 자리를 잡아 당신의 자긍심이 됐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마음이 무너지고 허전하며 후회가 오는 순간이 왔다. 배우지 못한 한(恨)이었다.

홍북읍 상하리 상산마을 한글교실 12명 어머니들이 대한노인회 경로당 활성화 사업으로 시작된 한글교실에 참여한 것은 2018년이다. 정희자, 박계월, 이오준, 김원태, 남을희, 한청자, 임정례, 신복순 어머니들이 연필심에 침을 묻혀가며 한글을 또박또박 써 내려간다. 처음 배울 때만 해도 어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던 한글교실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8개월을 놀았더니 생각도 나지 않는다.

다시 시작한 한글교실은 비대면 수업이다. 교사가 마을회관에 들어오지 않고 현관에서 수업을 한다. 어머니들이 고개를 빠끔 내밀고 교사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지만 도통 뭔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어머니들이 구시렁거린다.

"다 까먹었어. 이제 내 이름 알고 쓰니까 그 정도 알면 되지 않어?"

교사가 잔뜩 숙제만 내준다.

"이걸 언제 다 혀? 밭도 매야 하고 할 일이 천진디?"

두 권의 숙제장 앞에 벌어진 어머니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신복순 어머니의 양 미간에 세로 주름이 깊이 잡힌다. 올해 아흔네 살로 가장 나이가 많은 신복순 어머니를 위해 교사가 특별 지도를 해준다. 연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남을희 어머니는 칠 남매의 막내딸이었다. 태어나 백 일이 되었을 때 큰 오라버니가 일본 유학길에 올라 그 뒤를 따라갔다. 일본에서 학교를 들어갔다. 일본 학교에서는 무용과 수영 등을 배웠다. 그리고 열두 살이 되던 해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왔다. 13가구가 배를 사서 밤에 몰래 바다를 건넜다. 3일이 걸려 겨우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막내 오라버니가 학교를 가라고 했다. 4학년으로 들어갔어야 하는데 3학년으로 들어갔다. 일본에서 무용과 수영을 배웠던 소녀는 한글 배우기에 이미 흥미를 잃어버렸다.

"내가 지금은 엄청 후회해. 막내 오라버니가 가라고 할 때 갈 걸.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목이 매. 처음 한글 배우러 회관에 갔는데 눈물이 나서 그 사람들 많은 데서 펑펑 울었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시집와 책 한 줄 못 읽었어. 바보 다 됐어. 그게 한이 돼서 우리 애들은 내가 어떻게라도 가르쳤어. 후회해도 소용읎어."

거친 노동에 손가락 마디가 구부러지고 휘어버렸지만 남을희 어머니의 배움에 대한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 새벽 1시에 떠진 눈이 다시 감기지 않아 불을 켜고 부엌에 상을 편다. 한글 선생이 주고 간 숙제장을 꺼내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다. 한동안 연필을 잡지 않았더니 손가락이 뻣뻣하다. 두 자 쓰고 손가락을 주무르다가 다시 세 자 쓴다. 눈이 침침해지는 것도 모르고 쓰다 보니 멀리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오준 어머니는 "난 다른 이보다 더뎠어. 노다지 물어보고 그랬지"라고 말한다. 그래도 이제는 우편물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김원태 씨는 "난 쪼끔 배웠어. 그래서 그리 어렵지 않게 배웠지"라고 한다. 쪼끔 배워 능숙하게 이틀 만에 숙제를 끝낸 김원태 어머니와 이제는 노다지 묻지 않아도 숙제 정도는 거뜬하게 끝내는 이오준 어머니다.

"뭐 그거 금방 허지. 태극기 색칠하는 것만 남았어. 오늘 해야지. 근데 코로나 때문에 회관 문을 닫았는디 한글 선생 안 오겠지?"

어머니들 얼굴에 아쉬움 한 자락이 지나간다. 처음 12명으로 시작한 한글교실 어머니들이 그 사이 8명으로 줄었다. 태어나는 것은 차례가 있어도 가는 것에는 순번이 없다지만 무엇이 그리 급한지 저 세상으로 훌쩍 가버렸다. 아쉽지만 뭐 어쩌겠는가. 남아 있는 어머니들끼리 오순도순 의지하며 연필심에 침 묻혀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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