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기억, 오래된 현재-예산역과 예산터미널
1944년생 이회훈 씨는 함경북도 나진 출생으로 1948년 예산에 터를 잡았다. 이후 1977년부터 2002년까지 충남고속에 근무했다. 이회춘 씨의 부친 고(故) 이상규 씨는 충남여객 차부가 있던 현 하나은행 옆 정형외과 건물에서 여객식당을 운영했다.
1916년생 이상규 씨는 예산 출신으로 열여섯 살에 함경북도 나진으로 이주, 철도공무원을 지냈다. 해방되기 전 고향인 예산에 돌아와 당시 철도 관사를 분양받았다가 관사와 나대지를 맞바꿔 1958년 식당 건물을 신축했다. 1963년부터 1층은 식당, 2층은 궁전다방, 3층은 신혼예식홀로 30년간 운영되었다. 당시 대전에서 5시 30분 첫차가 출발하면 공주에 도착해 승무원과 손님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점심식사를 예산에 와서 했으며, 서산에 도착해 정박(이를 ‘도마리’라 부름)하면서 저녁 식사를 했다. 여객식당을 중심으로 소복식당(현 소복갈비). 만복식당(양식) 등이 큰 규모로 운영되던 식당이었고, 궁전다방을 중심으로 춘원다방, 역마차다방 등의 다방들과 우리여관, 제일여관, 신행여관 등이 주변에 형성되었다.
1960년대 여객식당에서는 군에 입대하는 장병들을 대상으로 국밥을 150원에 판매했다. 현 예산군청 자리에 있던 예산농업학교에 인근 온양, 당진, 홍성, 서산, 대천, 청양 등지에서 30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집합했다. 당시 군청 병사계에서 이를 주관했는데 명절과 겹치는 날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면 곤란을 겪었다. 여객식당에서는 식당 정문에서 돈을 받고 식사 후 뒷문으로 나가면서 드럼통에 숭늉을 받아놓고 마시게 했다. 이날만큼은 식당 종업원들도 다른 식당보다 임금을 조금 더 지불해 고용할 만큼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1935년경에는 목탄가스 차를 운행했는데 시름이고개(예산에서 공설운동장을 넘어가는 공주 방면 고개)를 넘어가지 못했다. 당시 차량 화물칸은 차 맨 뒤에 따로 있어 짐들과 손님이 가득 찬 버스가 고개를 넘기에는 연료가 부족했던 것이다.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 손님들 몇 명이 내려 뒤에서 버스를 밀고 고개를 넘기도 했다고 한다. 1949년경부터는 닛산화물차를 이용해 미국산 드럼통을 망치로 두들겨 엔진부를 덮는 보닛을 만들어 화물트럭으로 사용했다.
1995년 시외버스와 고속버스가 구분되면서 버스 내 차장도 시외버스 차장과 고속버스 차장이 구분되었다. 1990년대 말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차장이 없어졌다. 사람이 많은 장날에는 남자 차장을 고용해 출입문 주변 시트를 제거하고 손님들을 뒤에서 거의 밀어 넣었을 정도였다. 버스 뒤 짐칸에 짐을 실어도 모자라 버스 안 선반에 잔뜩 짐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예산-청양 간 교통요금은 1원 60전, 부여는 3원이었다.
2001년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서울이나 대전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산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예산터미널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개인 자동차의 보급과 더불어 이용객이 감소하면서 2002년 무렵부터 차량 수가 364대에서 160대로 줄어들었다.
평소 자차를 이용하지만 여행을 가거나 서울에 갈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스스로 운전하는 동안 오는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창밖을 보며 여정의 시간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역과 터미널을 자주 이용하게 된다. 역과 터미널은 누구나 잠시 머물다 가는 공간이자 장소다. 오로지 이동을 하기 위한 공간으로서만 자리한다. 가끔 신문을 보거나,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시는 잠시의 시간만이 허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 시간을 모두 휴대전화가 대신하고 있지만 말이다.
장항선이 개통되면서 외부로부터의 신문물이 들어오고 교역이 시작됐다. 단순히 사람이 이동하는 교통수단으로써만 아니라 물류가 이동되면서 예산은 경제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다. 도보로만 이뤄지던 교역이 빠른 시간에 가능해진 것이다.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오가는 장사꾼, 입대를 앞둔 장병들, 출근하려는 직장인들로 기차와 버스는 북적거렸다. 좌석표를 구하기 위해 설탕이나 미원 등의 조미료 등을 가져와 표를 달라 요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1992년 터미널의 이전과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터미널과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2023년 11월 1일 간이역으로 개업한 오가역은 2008년에 문을 닫았다. 1922년 6월 15일에 개통한 신례원역은 합덕·당진·서산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역 앞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용객이 많았었다. 1923년 11월 1일에 개통한 삽교역은 전통 한옥 양식의 역이었다가 2008년 장항선 선로개량사업 완공으로 약 2km 떨어진 현재 위치에 현대식 역사를 신축 이전했다. 어떤 역은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역으로 이전하기도 한다. 사라지거나 이동한다고 해서 우리들의 기억에서 모두 소멸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역과 터미널이 미래 어떤 기억과 새로움의 장소로 기억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