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에 몰입하는 장소

사라진 기억, 오래된 현재-중앙극장과 예산극장

by 김보리

2007년 6월 22일 저녁 8시 20분, 중앙극장에 갔다. 마지막으로 영화 밀양이 상영되고 있었다. 출입구 좌측에 위치한 매표소에서 어른 한 장이요, 라고 말하자 통통하고 주름진 손가락의 여인이 좌석표를 건넸다. 입구에 들어서니 로비는 한산했다. 매점에도 사람은 없었다. 평소 영화를 보며 먹는 행위를 싫어했지만 이날만큼은 마지막 팝콘을 먹고 싶었다. 팝콘을 가슴에 끌어안고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150여 석의 좌석 드문드문 대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3~40대 정로 짐작되었다. 남자는 한 명뿐이었고 모두 여자였다. 좌석표가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영화를 보기에는 중간 정도가 가장 적당했다. 맨 앞은 영화를 보는 내내 고개를 쳐들고 봐야 했고, 맨 뒷줄은 앞 좌석 사람들 뒤통수를 피해 봐야 했다. 인근 지역에서 동시상영관으로서는 중앙극장이 유일했다. 당연히 합덕이나 당진에서도 중앙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오기도 했다. 1998년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 우리나라 극장 문화는 달라졌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을 잡았던 대한극장, 피카디리, 단성사, 그리고 예술영화 상영관 코아아트홀 등이 차례대로 폐관했다. 본정통에 위치한 중앙극장도 그 여파를 피해 가기는 어려웠다. 극장 내부 불이 꺼지면서 고소한 팝콘 냄새가 퍼졌다. 대한뉴스는 당연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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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은 주인공 신애(전도연 분)가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도로에서 차가 고장 나고 카센터 김종찬 사장(송강호 분)의 도움을 받아 시내로 들어온다. 피아노학원을 열고 아들 준이를 웅변학원에 보내며,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낸다. 신애의 동생이 이사 온 신애 집에 온다. 신애가 동생에게 말한다.

“여기가 왜 좋은 줄 아니?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극장을 떠올리면 윤대녕의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와 기형도 시인이 생각난다. 1960년생 기형도 시인은 1989년 3월 7일 새벽 4시, 서울 종로구 파고다극장에서 소주 한 병을 든 채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이었다. 무엇이 시인의 육체와 정신을 아리게 했을까 싶다. 컴컴한 극장 좌석에서 영화를 보며 시인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을까. 그리고 오랫동안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은 내 서재 책장에 꽂혀 있었다.


1962년생 윤대녕은 충남 예산 출신의 작가다. 1995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는 주인공 내가 과거의 기억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소설에서 극장은 중요한 장소다. 과거의 첫 기억을 떠올리게 된 옛날 영화를 보러 간 곳은 종로에 있는 한 극장이다. 콜라를 마시며 ‘태양은 가득히’를 본다. 그리고 다시 옛날 영화 ‘해바라기’를 보러 간 극장에서 도난당한 과거 속의 친구를 만난다. 굳이 옛날 영화인 이유는 주인공의 기억과 관련된다. 극장에서 내 기억의 현재와 만나는 중(298p)이며 과거와 동일한 공간으로는 돌아갈 수 없지만 거기에 있는 여기에서는 동일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299p)는 오래된 벗의 이야기를 무심하게 듣는다. ‘오늘 난 한 편의 옛날 영화를 보러 왔네. 영화가 끝나면 나는 내 공간으로 돌아갈 걸세. 현실의 세계로 말일세. 여기가 바로 내 벌레 구멍일세.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회복한 공간 말일세(301p).’ 그리고 주인공인 나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시간의 절대성을 믿기로 한다. 살아가며 느끼게 마련인 견딜 수 없는 고통, 용서되지 않는 시간, 이 추운 겨울의 막막함, 혼자라는 두려움 혹은 서툰 사랑 하나하나까지도 뜨겁게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갈 것(305p)’을 극장을 나서며 생각한다.


장면이 바뀌면서 신애는 아들 준이 납치되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범인은 바로 웅변학원 원장이었다. 아들의 시신을 확인하는 장면이 롱테이크 기법으로 잡힌다. 신애는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기도회 현수막을 발견하고 신에게 구원을 받고자 한다. 하느님이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말에 신애는 범인을 면회 간다. 범인은 이미 하느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고 말하고, 신애는 자신이 용서를 하기도 전에 어떻게, 왜, 하느님이 용서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기도회가 열리는 곳에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틀고, 교회 장로를 유혹하며, 집에서 기도하고 있는 장로 부부의 집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과도로 자해를 한다.


병원에 입원한 신애가 퇴원하는 날, 신애는 종찬에게 미용실에 가고 싶다고 한다. 종찬이 데려간 미용실은 웅변학원 원장 딸이 미용사로 있는 곳이었다. 머리를 자르다 말고 뛰쳐나온 신애를 종찬이 뒤따라온다. 신애의 집 마당에서 신애는 자르다 만 머리를 스스로 자르고 종찬이 그 앞에서 거울을 들고 있다.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쓰레기들이 있는 너저분한 마당으로 바람에 흩어진다. 마당에 한 줌 햇볕이 쏟아진다.


영화 초반 신애는 종찬에게 묻는다. 밀양의 뜻이 무엇인지 아냐고, 토박이 종찬은 정작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신애는 ‘비밀의 볕’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신애의 얼굴에 햇볕이 부서지듯 쏟아진다. 앤딩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극장 밖을 나가면 캄캄한 저녁 어스름이 나를 맞을 것이었다. 하지만 극장을 나선 순간 차가운 바람과 함께 쨍한 햇빛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싶어졌다. 이제는 다시 오지 못할 중앙극장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예산읍 예산2리에 위치한 중앙극장은 1936년 7월 2일에 광주 박필래가 준공했다. 박필래는 대술면 이티리 소재의 풍산금광을 운영하면서 모은 돈으로 목조건물 2층 형태의 중앙극장을 설립했다. 1936년 7월 14일 동아일보에서는 예산극장 기공 기사가 있다. 기사에 따르면 금광으로 성공한 박필래 씨가 공회당 겸 극장으로 팔천 원으로 가수속하고 건평 130여 평에 10월 준공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산극장은 읍공관과 문화관으로 운영되었다. 이후 고인환 씨가 인수하면서 중앙극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7년 폐관하기 전까지는 신성균 씨가 운영했다. 폐관 후 예산군에서 매입해 공용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산극장은 1965년 주교리 김기만 씨가 염전을 운영하면서 소금장사를 해 모은 돈으로 설립했다. 주민들은 ‘역전극장’이라 불렀다. 고인환 씨가 인수해 운영되던 예산극장은 1988년에 폐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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