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침묵의 소리

사라진 기억, 오래된 현재-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예산성당과 신명유치원

by 김보리

일요일 오전 11시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예산성당을 찾았다. 안토니오 신부에게 미리 미사에 참석해도 되냐고 물었다. 작은 성당이지만 미사와 애찬을 함께 하면 영광이라고 했다. 미사 10분 전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한 교우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고, 안토니오 신부는 마르코책방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반갑게 새해 인사를 나눴다. 그 사이 다른 교우들이 들어오며 인사를 했다. 손에는 그날 함께 먹을 점심이 들려 있었다. 창밖으로 에어프라이어를 들고 오는 교우도 보였다. 어떤 이는 작은 인형을 들고 와 미사에 참석하는 유일한 어린이인 여섯 살 유빈이 의자에 살며시 놓아두었다.


유빈이와 낯선 이방인인 나를 포함해 16명이 참석한 미사가 시작되었다. 난생처음 참석하는 미사는 낯설었다. 대전, 홍성, 예산 등지에서 온 교우들의 찬송가가 시작되고, 장백의를 입은 안토니오 신부가 들어오면서 미사가 시작되었다. 일정한 순서에 맞춰 진행되는 미사는 시종일관 엄숙한 분위기였다. 아치형 창문으로 햇살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지면서 십자가를 밝혀 주고 있었다. 성당 외부는 주택들이 있었고 오가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 고요한 정적의 시간, 오로지 성당만이 100년이 넘은 오래된 침묵의 소리로 가득했다. 그 순간 무교인 나이지만 내내 정신이 맑아지는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맨 뒤 나무책상과 의자는 유빈이 자리였다. 예산성당의 역사와 함께 했던 신명유치원에서 사용한 오래된 나무책상이다. 추운 날씨였는데도 유빈이는 운동화를 벗어 놓고 작고 앙증맞은 발을 나무 의자 걸이에 올리고 반듯하게 앉아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가끔은 등을 돌려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낯선 이방인인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1시간 남짓 진행된 미사가 마무리되고 성당의 공지사항과 교우들 간의 인사말이 오갔다. 안토니오 신부가 나를 소개했다. 모두가 박수로 나를 맞아주었다. 미사가 정리되고 문을 열고 나오는데 안토니오 신부가 서둘러 나를 붙잡았다. 식사를 하고 가라고 했다. 그냥 가는 줄 알았나 보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성당과 신명유치원을 둘러보려고 나온 참이었다.


신명유치원 내부는 아담했다. 원아들의 공간이었던 곳에는 나무 냄새가 가득했다. 아는 이에게 목공작업에 필요한 공간으로 내주었다. 복도 양 옆으로는 유치원에서 사용되었던 책상과 의자들, 비품들이 쌓여 있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묵은 먼지 속에 묻혀 사라지고 있었다.


예산성당이 다시 문을 열기 전까지 비워져 있던 성당과 유치원 외부는 풀로 무성했었다. 성공회대학교 대학원생들과 함께 잡초를 제거하고, 오래된 묶은 먼지를 닦아내고 흰색으로 페인트를 하고, 신부 사제관을 마르코책방으로 만들었다. 공간이 다시 재생되면서 성당을 개방해 바자회도 하고 마을회의도 하며 문화모임도 한다. 교우들도 하나둘 씩 모였다. 전도 한 번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안토니오 신부는 마르코책방이라는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주민들과 함께 하는 신명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2017년 문을 닫은 신명유치원 건물은 올해 안으로 허물고 작고 아담한 정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5년에 한 번씩 발령을 받지만 조금 더 나은 조건을 조성해 주고 자신은 더 척박한 성당을 찾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안토니오 신부는 말한다.


식사하세요,라는 말이 들린다. 아일랜드 식탁 위에 교우들이 하나 둘 가져온 반찬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멸치볶음, 계란말이, 깻잎장아찌, 무나물, 김장김치, 제육볶음, 된장국, 김, 동치미 등 혼자서는 먹기 힘든 칠첩반상이 차려진다. 특별한 기도 없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식사를 했다.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전도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젊은이, 아이, 장년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이웃처럼 그 순간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었다. 미사 마지막 안토니오 신부의 강론이 떠올랐다.


“세상의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꿈을 잃은 청춘들과, 빈곤에 내몰린 노인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 전쟁이 없는 평화를 추구하는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길을 가야 할까요. 변화는 이미 나의 내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림5-1.jpg


그림5-2.jpg




성공회는 1917년 김바오로 전도사에 의해 시작되면서 예산리 136번지에 3칸 초막을 들여 목회 근거지로 삼았다. 1925년 5월 예산리 466번지에 집을 매입해 성바오로성당으로 축성했다. 성공회성당에는 사제가 상주하지 않았고 천안 부대동성장의 사제가 순회 미사를 드렸다. 1928년 5월 1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예산성공회에서 신명유치원 설립 기성회를 만들어 부설 유치원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감리교회와 경쟁이 붙었다고 한다. 최종적으로는 성공회에서 좋은 인수조건을 제시함으로써 경영권을 양도받게 되었다. 신명유치원은 1927년 6월 10일 예산성공회 김영혁이 설립했다. 당시 원아수는 42명이었으며 원장은 김진섭이다. 1943년 일본에 의해 성당이 폐쇄되고 신명유치원의 경영권도 몰수됐다. 해방 후 1969년 박승시 신부가 부임하면서 성당이 다시 시작되고 이듬해 신명유치원도 개원했다. 2005년 충남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1928년 신명유치원 원아수는 57명, 학급수는 3학급, 교원은 4명이었다. 신명유치원 개원 전 공립보통학교 수가 적어 각 면 단위별로 강습소나 야학이 운영되었다. 총독부관보 자료에 따르면 1917년 10월 15일 대한성공회에서 임성면 예산리에 성공회강습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신명유치원은 2017년 폐원했다. 현재 대한성공회 예산성당 건물은 한옥 성당을 허물고 1975년에 다시 건립했다. 신자가 줄어들면서 2017년 또 한 번 폐쇄되었다. 그러다 100주년이 된 성당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한 심규용 안토니오 신부는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생들과 100주년 저녁기도를 드리고, 재건 프로젝트 ‘일어나요 예산교회, Again 1917'을 시작했다. 심규용 신부는 2019년 2월 17일 예산성당으로 발령을 받았고, 폐쇄 2년 만에 대한성공회 예산성당은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