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기억 오래된 현재-예산시장과 역전시장
1926년에 개설된 예산오일장은 매월 5일과 10일에 장이 열린다. 이와 함께 1981년 예산상설시장으로 개설, 2002년 시설현대화사업이 진행됐다. 예산장터는 원래 장대리라 부르던 쌍소나무배기에 있었다가 지금의 장터로 옮기게 되었다. 1970년대 초반 예산천을 복개하면서 지금에 이른다.
현재 국밥집이 자리한 앞이 우시장이었다. 현재 국숫집이 있는 부근에는 소전, 예산천 맨 아랫다리에 돼지전, 현재 공주대 가는 방향으로 염소와 닭을 팔았다. 우시장을 중심으로 순대국밥, 소내장탕, 국수, 막걸리 등을 팔았다. 달나라이용원 앞 동은미용실 앞으로 다리가 1개. 자금성 앞, 제주갈치집, 농협은행 앞, 제생당한의원 앞, 서일농약사, 쌍송배기 총 7개의 작은 나무다리가 있었다. 잡곡, 쌀, 계란 등을 말마차에 끌고 와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이완규의 ‘70년 전 예산 그때 그 시절’에 따르면 본정통 사거리를 기준으로 동쪽 예산극장 맞은편 근처에 미곡상회와 싸전이, 삼성식당 맞은편 고기전(육간)은 함석장옥 10칸을 지어 1호점에서 7호점까지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팔고, 8호점에서 10호점까지는 개고기를 팔았다. 쌍소나무 옆으로 흐르는 예산천을 따라 나무전과 숯전이 형성되었고, 숯전 아래쪽에 생선전이 있었다고 한다. 예산천 근처에는 여관 집단지역이 있었다. 예산천 양쪽 도로는 목조다리로 연결되었으며 나무전, 숯전, 생선전 아래쪽 개천 한쪽에는 재봉틀을 놓고 조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조끼전 10여 호가 집단으로 있었다. 개천 건너편에는 건어물전, 제수용품전 및 창고집 앞에는 대추전(밤, 대추, 감, 은행, 사과, 배 등 과자류와 사탕)과 한약방, 주단 포목전으로 형성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신흥동에서 예산시장으로 가는 길목, 순댓집이 있다. 최창금 씨가 운영하는 순댓집은 간판도 없다. 천막을 치고 나무로 툭툭 이어 만든 의자와 작은 탁자 몇 개가 전부다. 40년 전부터 순대를 직접 만들어 팔고 있다. 선지 양에 따라 순대 맛이 결정된다며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직접 만든 순대는 그야말로 야들야들하고 잡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순대 이외에도 족발과 돼지꼬리를 삶아 판매한다. 족발을 사러 온 단골손님에게 이왕이면 큰 놈으로 줘야지, 라고 말하자 손님이 피식 웃는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천막을 치고 노점에서 장사를 시작했다가 지금은 바로 옆 막걸릿집을 주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막걸릿집에서 사용하던 시멘트로 만든 둥근 식탁이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는 연탄을 넣을 수 있어 석쇠에 고기나 닭똥집, 참새구이 등을 구워 먹었을 것만 같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 좁은 골목길에는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순댓집 바로 앞으로 국밥과 족발집, 그 옆으로 만복래 식당이 있었다. 만복래 식당은 예산교회 앞 작은 방이 딸린 선술집에서 시작했다. 홍어, 아귀, 모래무지, 미꾸리 등 손님들이 가지고 오는 재료들을 직접 손질해 막걸리와 함께 팔면서 입소문이 났다. 이후 순댓집 옆에 가게를 얻어 본격적으로 장사를 했다. 20여 년 장사하다 현재 예산정형외과 근처로 이전했다가 10여 년 전에 문을 닫았다. 예산군에서 진행한 추억의 골목길에는 선술집에서 국밥과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이 그려진 벽화와 오래된 간판이 조성되어 있다. 그 골목길을 지금까지 유일하게 지키는 곳은 최창금 씨의 순댓집만 있다. 지금도 최창금 씨의 손맛이 깃든 순대를 잊지 못하는 손님들이 이름 없는 최창금 씨 순댓집을 찾는다.
오가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장날이 되면 직접 지은 농산물을 가지고 나와 파는 할머니들이 있다. 시장 화장실 건물 가장 양지바른 곳에 줄지어 앉은 10여 명의 할머니들 중 신양면에서 온 할머니는 서리태와 시래기, 잡곡 등을 팔았다. 시래기를 삶았는데 혼자 사니 너무 많아 가지고 나왔다는 할머니가 맛나, 한 봉지 이천 원이라며 주름진 손을 건넨다. 옆에 앉은 할머니는 오랜 흥정 끝에 가지고 온 시래기 한 보따리를 모두 팔았다. 또 그 옆에 앉은 할머니가 나머지 뒷정리를 도와주며 구시렁거린다. 뭘 그렇게 흥정을 해싼댜, 이거 하나 만드는 게 올매나 힘든지 모르는겨, 라고 말이다. 날이 너무 추우면 안 나온다는 할머니들은 추운 날씨로 손이 곱으면서도 꼬깃한 돈을 차곡차곡 개켜 바지주머니에 넣는다. 만원, 이만 원 하는 돈이지만 손주들 용돈 주고, 장에 나와 아는 이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재미에 장에 나온다. 문득 이 할머니들이 작고하고 나면 그 빈자리를 누가 대신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전시장은 1956년에 개장했다. 당시 고차봉 씨와 조정갑 씨 등이 중심이 되어 시장설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장옥 건립을 위한 기금을 마련했다. 당시 시장터는 밭이었고 그 주변은 논이었다. 주교2리 주민들이 교육청 앞 산을 파내어 시장으로 옮겨 논과 밭을 메웠다. 쇠막대기를 연결해 철길을 만들고 손수레에 흙을 실어 옮겼다. 당시 시장건물은 나무기둥에 함석지붕을 얹은 형태였다. 추진위원회에서 미국산 제품을 담았던 깡통을 펴서 네모나게 잘라 한 장 한 장 이어 붙여 장옥 지붕을 완성했다. 초창기에는 상인들이 몰려와 장옥 안에 전을 펼치는 형태의 주인 없는 공간이었다. 이후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장옥터를 시장번영회에서 분양받아 자신의 가게를 시작하게 되었다. 역전시장은 장옥을 중심으로 매월 3일과 8일에 장이 열리고 있다.
현재 건물은 2000년경 다시 지으면서 건물 앞 도로도 확장되었다. 현재 건물 중앙부가 옛 장터 자리였는데 장소가 협소해 확장하게 되었다. 옛 장터를 중심으로는 신양면, 대술면 등지에서 온 할머니들이 보따리 몇 가지를 놓고 장사를 하며, 도로 양 옆으로 생선과 먹을거리 등이 판매되고 있다.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할머니들이 묵은 나물을 삶아 바구니에 소복하게 담아 놓고 앉아 있다. 신양면에서 온 두 할머니가 사이좋게 앉아 시래기를 사라고 말을 건넨다. 아주까리, 뽕잎, 고구마줄기, 토란대, 시래기 등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날이 추우니 옷을 겹겹이 입고 무릎담요를 덮고 앉아 있어도 매서운 바람을 이기지 못한다. 뜨끈한 잔치국수를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 할머니들 입가에 옅은 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득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이 생각났다.
열무 삽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