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기억, 오래된 현재-예산여관, 덕흥여인숙
황금여관이 위치한 골목에 들어서니 기역자로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공사로 인해 지저분해진 골목길에 쪼그리고 앉아 비질을 해서 쓰레받기에 담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월세방 있습니다’라고 적힌 대문을 가리키며 이곳에 사시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하숙도 하셨냐고 물으니 여인숙을 했다고 한다.
1930년생 윤동환 씨와 부인 1935년생 최천순 씨는 1974년 덕흥여인숙을 운영했다. 윤동환 씨는 대흥면 출생으로 한국전쟁 직후 예산경찰서에서 근무하다 병가로 퇴직했다. 사직동에서 군수 관사 밑에 집을 세 채 건축해 두 채를 팔고 나머지 한 집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마침 신흥동 일본 관사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관사 지붕만 남겨두고 여인숙 구조로 변경했다. 덕흥여인숙의 시작이었다.
덕흥여인숙 내부는 197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하늘색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으로 우물이 있고, 좌측으로는 창고와 세면실이 있으며, 그 옆으로 장작을 피워 사용하는 가마솥이 있다. 세면실 앞으로는 돌로 만든 빨래판이 붙박이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1974년 어느 여름의 시간에 멈추어진 것 같았다.
본채 옆으로 작은 건물을 지어 방을 더 내었다. 방문 앞으로 작업화와 운동화들이 보인다. 본채로 들어서면 오래된 신발장과 나무문들이 있다. 총 10개의 방이 줄지어 있다. 여인숙이니 식사와 빨래는 각자 해결한다. 그래도 여인숙 전체 청소와 빨래 등은 최천순 씨가 지금도 직접 하고 있다. 1997년 여인숙을 정리하고 지금은 월세방으로 내어주고 있다. 현재도 10년 넘게 덕흥여인숙을 이용하는 단골이 거주한다. 별도의 전기와 수도요금을 받지 않고 보증금 없이 월세만 받는다.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탓에 아직도 간판 없는 덕흥여인숙을 방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36년 충남여객이 발족되고 현재 하나은행 자리에 ‘차부’라 부르는 버스정류장이 생기면서 터미널을 중심으로 숙박업소들이 들어섰다. 예산을 오가는 장사꾼들과 건설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여관이나 여인숙에 잠시 머무르며 고단함을 풀어냈다. 또한 1922년 장항선이 개통되면서 역 일대에도 숙박업이 발달했다. 1930년대 일본인이 경영하는 예산관, 아사히, 에비스야여관 등 세 곳이 운영되었고, 한국인이 경영하는 남일여관, 예일여관, 예청여관, 덕창여관, 대창여관, 유구여관, 삼선여관 등이 있었다. 이중 예산관은 1991년 9월 10일까지 ‘예산여관’이라는 상호로 영업을 했다. 1991년 동아일보 9월 11일 자 기사에서는 예산여관 화재에 대해 다루고 있다.
11일 오전 2시 30분쯤 충남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예산여관(주인 엄윤경)에서 투숙객의 촛불부주의로 불이 나 서울 방송 드라마 촬영팀 이재정 씨(45·여·연극배우)가 불에 타 숨지고 2층 여관건물을 태워 2천만 원의 재산피해(경찰추산)를 낸 뒤 2시간 만에 꺼졌다. 여관주인 엄 씨에 따르면 10일 오후 11시 50분쯤 예산읍 일대가 정전이 돼 객실에 촛불을 나누어 주었는데 11호실에 투숙 중이던 김 모 씨(23·의상 대여업자)가 부주의로 촛불을 넘어뜨려 불길이 벽에 옮겨 붙었다는 것이다. 불이 나자 서울방송 <분례기> 드라마 촬영팀 등 투숙객 32명이 긴급 대피했으나 이 씨만 불길을 피하지 못해 변을 당했다.
나의 어머니 또한 20여 년을 여관업에 종사했다. 내가 열두 살 무렵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어머니가 생계 전선으로 뛰어든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여관 건물에 세로 들어가 1층은 여관, 2층은 우리 가족이 거주했었다. 1년 뒤 어머니는 자식들의 교육적 환경을 위해 주택을 구해 이사를 하고 2층도 여관방으로 사용했다. 여관업을 하면서 우리 형제들은 정서적으로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게 성장했다. 2층 넓은 옥상 겸 마당에서 빨간 다라이를 놓고 나와 남동생은 목욕을 즐겼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머니가 직접 구운 카스텔라에 촛불을 밝혔다. 정작 여관업을 정리한 것은 큰언니가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사돈과 친척들 보기에 숙박업을 하고 있는 당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여관을 종종 이용한다. 부러 예약하지 않아도 되고, 어느 곳을 가나 여관은 있기 마련이다. 여관을 열고 들어가면 으레 작은 사무실 창문을 통해 방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묵을 것인지, 잠깐 있다 갈 것인지를 묻는다. 묵을 거라고 하면 일회용 칫솔과 방 열쇠를 내어준다. 덧붙여 아래위를 빠르게 훑어보는 것도 주인장은 잊지 않는다.
여관방은 거의 대부분 단출하다. 침대와 텔레비전, 음료수를 보관하는 소형냉장고가 전부다. 어두침침한 조명과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두껍고 무거운 커튼이 내려져 있지만 어차피 여관은 하루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니던가. 따뜻한 물에 피곤한 몸을 씻어내고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 있으면 온몸이 저절로 노곤해진다. 오늘의 묵은 짐을 풀어내고 내일 만나게 될 저마다의 사연을 상상하며 잠이 든다. 꿈도 꾸지 않는 숙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