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랴

사라진 기억, 오래된 현재-예산정미소와 신풍방앗간, 광명방앗간

by 김보리

명절이 되면 가장 바쁜 곳 중 하나가 방앗간이다. 설날이면 가래떡을 뽑아내고, 추석에는 송편을 만들기 위해 부산스러웠다. 들깨를 수확하면 방앗간에 가지고 와 기름을 짜서 동생네 주고 딸네도 보냈다. 고추를 따고 나면 방앗간에 들려 고춧가루로 빻아 김장김치를 하고 남은 고춧가루는 두고두고 먹었다. 이제 모두 옛날 사라진 기억이 되었다. 농사짓는 어르신들 몇몇만이 방앗간을 찾아와 기름을 짜고, 고춧가루를 빻아간다. 설 대목을 앞두고 찾아간 방앗간 주변은 고요하고 한적했다.


예산정미소는 1923년 11월에 박성래, 김용원, 김정희가 설립, 정미소와 운송을 겸했다. 1926년 9월 2일 자 동아일보에서는 예산정미소에 대해 십이마력의 발동기를 장치하고 현미는 연 2만5000 석 이상, 백미는 연 3000천 석 이상을 제산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90년대 초반 문을 닫았다.


그림10-3-1.jpg



들기름 짜는 고소한 냄새를 따라 신풍방앗간에 들어섰다. 예산읍 예산리에 위치한 신풍방앗간은 1943년생 김영욱, 1948년생 이우순 씨 부부가 1983년경 문을 열었다. 방앗간 옆으로는 신풍상회가 있다. 담배, 주류, 문방구 등을 겸한 신풍상회를 먼저 개업했다가 방앗간을 겸했다. 상회와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예전에는 자고 일어나면 번쩍번쩍 돌아다녔는데 이제 인간만 버릴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이우순 씨의 말에 세월의 아쉬움이 묻어난다. 마침 단골손님이 들기름을 짜러 왔다. 이우순 씨가 30년 된 기름 짜는 기계를 돌린다. 마지막 뒷정리는 김영욱 씨가 한다. 오늘의 첫 손님이자 마지막 손님이 가자 이우순 씨가 목욕탕에 간다며 주섬주섬 목욕용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림10-3-2.jpg



예산읍 주교리에 위치한 광명방앗간은 아이스게끼를 만드는 공장을 1945년생 홍중근, 1950년생 장정숙 부부가 매입해 방앗간으로 문을 열었다. 벽돌공장을 운영하다 방앗간으로 전업하면서 삼 형제 모두 공부시켰으니 그거로 되었다고 말하는 부부는, 지금은 집에만 있기 심심해 방앗간에 나온다고 한다. 들기름을 짜러 온 한 할머니가 깻묵을 보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름을 짜고 나온 깻묵을 가져가 절구에 빻아 눌러 밥에 비벼 먹으면 별미였다. 깻묵에 남아 있는 기름이 껄끄러웠던 보리밥의 맛을 부드럽게 해 주었을 것이다. 먹을거리가 흔해진 요즘 깻묵은 퇴비나 사료에 사용된다. 벽에 걸려 있는 사름통이 보인다. 사름통은 낟알을 사래질한 다음에 싸라기를 따로 흔들어 떨어뜨리는 데 쓰는 통을 말한다. 기름때 묻은 사름통과 기름 짜는 기계와 노부부만이 방앗간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방앗간을 나와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방앗간 앞으로 참새 다섯 마리가 무언가를 쪼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 옆을 지나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득이 되거나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설 대목이 다가오는 1월, 이제는 가래떡을 뽑으러 오는 손님도 없는데 참새만이 곡식의 흔적을 쫓아가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