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기억, 오래된 현재-달나라이용원
어릴 적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의 머리를 손수 다듬어주셨다. 집 마당에 의자를 놓고 네 형제가 번갈아가며 어머니에게 머리를 맡겼다. 목에 보자기를 두르고 눈을 감으라는 말에 두 눈을 꼭 감았다. 전문 미용사가 아니니 어머니의 가위질하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도 덩달아 부들부들 떨며 눈을 꼭 감았다. 가위가 슬쩍 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며 쓱싹쓱싹 소리를 내었다. 눈썹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눈을 뜨면 일자로 반듯하게 잘린 앞머리가 내 눈앞에 있었다.
그때만 해도 미용실이나 이발소에 가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부러 돈을 내고 가야 하는 곳이니 어쩌다 특별한 일이 있는 날이나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어린 시절 특별한 날이라고는 기껏해야 졸업식이나 입학식 정도다. 그래도 어머니에게 투정 한 번 부리지 않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지금은 가끔 앞머리 정도를 집에서 내가 직접 자르기도 한다. 앞머리 자르자고 미용실에 가기가 번거로운 것이다. 한 번은 삐뚤빼뚤 제각각으로 되어 결국은 전문 미용사의 도움을 받았다. 거울 속의 내 앞머리는 몽실언니 같았다. 물론 그 뒤로는 귀찮더라도 반드시 미용실을 간다.
권정생 선생의 <몽실언니>는 한국전쟁을 전후를 배경으로 한 소년소설이다. 아버지는 돈 벌러 떠나고, 어머니는 도망가며, 남동생은 죽고, 할머니에게 구박받는 그 시대 소녀 언니의 모습이다.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몽실언니와 동생들의 머리 스타일은 그 시대 소년소녀들의 모든 모습이었다. 여자아이들은 눈썹이 보일 정도의 앞머리에 귀 끝이 보일 듯 말 듯한 단발머리를, 남자아이는 거의 대부분이 까까머리였다. 쾌적한 주거환경이 제공되지 못했던 탓에 머리를 감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치러졌고 머리에는 이가 자신의 집처럼 서식했다. 서로가 서로의 머리에서 이를 잡아주는 풍경은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60여 년 동안 사람들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있는 달나라 이용원 이승순 사장은 1950년생으로 1968년 2월 5일 열아홉 살의 나이에 충남 최연소 이용사 면허증을 취득했다. 이승순 사장은 예산읍내 시장 안쪽에 있는 충남이용기술학원에서 기술을 익혔다. 1년이 안 되어 충남이용기술학원은 남신이용원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남신이용원에서 보조로 일하며 월급 1500원을 받았다. 이발요금이 50원 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1979년 달나라이용원을 인수했다. 1962년에 문을 연 달나라이용원은 김교문 씨가 운영하다가 1972~75년에는 김정갑 씨가, 이후 박용서 씨가 1979년까지 운영하다 이 사장이 인수해 지금에 이른다.
당시만 해도 하루 16시간에서 20시간 정도를 일했다. 물을 길어다 사용하고, 가죽피대에 면도칼을 갈아 사용했으며, 가위를 숫돌에 갈아 이용했다. 기술자 밑으로 머리를 감겨주는 시다, 면도를 해주는 함바, 고데를 해주는 히야개가 있었다. 연탄불에 올려 사용하는 불고데기를 이용했었는데 고데를 하고 간 손님이 고데 풀어지는 것이 아깝다며 한 달 동안 머리를 안 감고 다시 이용실을 찾았다. 그날은 하루 종일 이를 잡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예산군 이용원은 150곳이었으며, 예산읍내는 35곳이었다. 1980년대부터 점차 줄어들어 현재 예산읍내 이용원은 15곳이 운영되고 있다. 이용원의 최대 전성기가 1960~70년대까지인 것이다. 당시 머리를 길게 길러 염색을 하고, 판타롱 바지에 몸에 붙는 셔츠 정도는 입어줘야 멋쟁이라 불렀다. 달나라이용원에서는 양귀비를 이용해 염색을 했다. 양귀비 염료를 연탄불이나 석유곤로에 끓여 사용했는데 햇빛 아래에서 보면 파란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염색을 하려면 한나절은 잡아야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1960년대 현재 예산군청 자리에 있는 예산농업학교에는 군 입대를 앞둔 장병들이 집결해 예산역으로 이동했다. 장병과 가족들은 인근 숙박시설에서 잠을 자고 입대 전날 이용실에 들렸다. 장병들은 그야말로 머리를 빡빡 밀고 갔다. 지금은 기계식 바리깡이지만 당시만 해도 손으로 미는 바리깡이어서 하루 3~50명 정도 장병 머리를 밀다 보면 손에서 쥐가 나기도 했다고 한다. 가끔 숙박시설이 부족할 때면 이승순 사장은 예산4리 마을회관이나 자신의 집에 장병들을 재우기도 했다. 그중 충북에 거주하던 한 장병은 휴가를 나와 이 사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이용원을 중심으로 장터와 상가들이 집중되어 있다 보니 별별 사건사고들도 많았다. 한 번은 소 장사가 술을 마시고 와서 저녁에 이발을 하고 갔는데 귀퉁이에 신문지로 돌돌 만 뭉치가 있었다. 알고 보니 소 장사하고 700만 원이 든 뭉치였다. 다음날 소 장사가 와서 찾아가면서 500원짜리 막걸리 한 잔을 얻어 마셨던 기억이 있다. 또 한 번은 예식장 손님이 롤렉스시계를 놓고 갔다. 다음 날이 되어도 시계를 찾아가지 않았다. 이 주 뒤 전화가 왔지만 이 사장은 경찰 입회하에 신분을 확인하고 돌려주었다.
오랜 세월 이용원을 하다 보니 단골손님들도 많다. 50년 단골은 기본이며 백종원 조부 백창현 씨도 10년 단골이었다. 달나라이용원 내부는 깔끔하다. 손님용 의자와 세면대, 서랍장과 소파 이외 불필요한 가구들은 없다. 다만 이용원 입구 이용사 면허증만이 시간의 빛바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