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

사라진 기억, 오래된 현재-평화사진관, 아리랑사진관

by 김보리

아버지가 작고하기 3년 전, 우리 형제들은 사진관을 찾았다. 성인이 된 형제들의 사진을 가지고 싶다는 아버지의 소원 때문이었다. 나는 평소 하지 않던 화장까지 해가며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깨끗한 옷을 입고 나섰다. 사진기사의 화려한 플래시가 터지며 나는 살짝 눈을 감았던가, 사진기사의 다시 찍겠다는 말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본정통거리 끝에 위치한 평화사진관은 파란색 간판에 하얀 글씨가 정갈하게 적혀 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좌측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고, 벽에는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들이 걸려 있으며, 안쪽에는 촬영실이 있었다. 성이현 사장이 난로 앞에 앉아 나를 바라봤다. 커피 한 잔 마시겠냐며 물어보는 성이현 사장의 얼굴에 시간의 고단함이 묻어났다. 평화사진관은 성이현 사장의 부친 1926년생 고(故) 성기요 씨가 1960년에 사업자등록을 하고 개업했다. 일본인에게 사진을 배웠던 성기요 씨는 개업 전부터 출장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78세까지 현역 사진기사로 활동했다.


당시 도레미사진관 이후 평화사진관이 예산읍내 두 번째 사진관이었다. 삼산약국 근처에 있다가 주차장 밀 골목으로 이전, 2021년 4월에 현 위치로 이전했다. 1956년생 성이현 사장은 삼십 대 중반부터 부친과 함께 사진관을 운영했다. 각 초중고와 유치원 앨범 제작으로 매년 정신없이 바빴던 시간이었다. 부친에게 사진기술을 배운 것이 아니라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사진기사로부터 기술을 배웠다. 지금도 아버지 이름을 떠올리거나 학교 앨범을 기억하며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이야기를 하던 중 한 노년의 여성이 여권 사진을 찍기 위해 들어왔다. 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 들어선 여성은 70대 초반으로 보였다. 어색하게 거울을 보며 머리를 가지런하게 만지며 사진기 앞에 섰다. 몇 번의 셔터가 눌러지고 성이현 사장이 바로 그 자리에서 인화를 해줬다. 여성은 자신의 사진을 보는 일이 민망한 지 얼굴의 주름을 지워달라고 주문했다. 간단하게 리터칭 몇 번만으로 주름을 펴고, 우는 얼굴을 웃게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1970년대에도 사진 기사들이 필름에 리터칭을 했다고 한다. 연필을 아주 가느다랗게 깎아 필름 위에 정말이지 한 땀 한 땀 수정한 것이다. 오직 전문 기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얼굴의 주름이 펴졌는지 이번에는 사진 한 장을 골라 영정사진으로 사용하겠다며 좀 크게 인화해 달라고 주문했다. 영정사진을 준비하기에는 이른 것 같아 보였다. 여성의 얼굴은 노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너무 젊어 보였기 때문이다. 손님의 주문에 성이현 사장이 편한 시간에 찾으러 오라는 말을 남겼고 여성은 좀 멋쩍은 얼굴로 인사를 하며 사진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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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사진관에서 사진기사로 1년 정도 근무했던 아리랑사진관 장 영 사장은 1964년 칠성전업 사거리(현재 LG디지털가게)에 사진관을 개업, 2002년에 폐업했다. 장 영 사장은 열아홉 살에 서울로 상경, 스물한 살까지 사진기술을 배웠다. 스물두 살에 혼인을 한 뒤 스물네 살에 사진관을 개업한 것이다. 당시 아리랑사진관 주변에는 양복점, 이발소, 구멍가게, 세탁소, 유리가게, 부인병원, 시계점, 라디오방 등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골목이었다.


비디오가 처음 등장하던 때 시골 환갑잔치 비디오촬영을 갔었다. 환갑을 맞은 할아버지가 촬영을 하고 있는 장 영 사장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할아버지가 사진을 들어 자꾸 귀에 가져다 대었다. 왜 그러시느냐 물었다. 오늘 소리 나는 사진을 찍는다고 했는데 사진에서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장 영 사장은 비디오를 재생하려면 기계가 있어야 하니 자녀에게 얘기하라고 했다고 한다.


1970년대만 해도 읍내에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많았다. 기념일을 남기고 싶은 젊은이들이 사진관을 찾았다. 사진 한 장에 3000원 정도 받던 시절이었다. 장 영 사장은 사진관에서 서예학원도 경영했다. 방학이면 50여 명의 학생들이 찾아왔고 학생들에게 서예 가르치는 일을 12년간 하기도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 부지런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며 자신으로 인해 피해 본 사람 없으니 그동안 잘 살았다고 말하는 장 영 사장이다.


각 학교 졸업앨범을 찍느라 정신없었다는 성이현 사장의 말을 듣고 나도 오랜만에 앨범을 열었다. 그리고 오래된 흑백사진 한 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중학교 졸업사진이었다. 흑백사진 속 학생들은 학교를 배경으로 일렬종대로 줄을 맞추어 서 있고, 담임선생과 교장, 교감 선생이 앞에 앉아 있다. 학생들은 카메라를 동시에 바라보며 웃음기 없는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고등학교로의 진학이 가져오는 무거움이 그들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어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미간을 찡그린 채 잔뜩 찌푸리고 험상궂은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졸업식에 화가 났던 것일까. 분명 그러지는 않았을 텐데 무엇이 저리도 열여섯 살 소녀들의 마음을 응어리지게 했을까 싶다.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보며 마음속 심연의 세계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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