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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Nov 17. 2022

열 번도 넘는 호흡으로 끊어 읽어야 했던

홍은전 작가의 [그냥, 사람]을 읽고


평소와 달리 이 책은 완독 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독서의 흐름이 끊기는 것을 싫어해서 책을 펼치면 그 자리에서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달리는 걸 나름의 신념으로 삼는 내가,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러지 못했다.


홍은전 작가가 쓴 <그냥, 사람>이라는 이 책은 , 5가지의 목차로 구성되어 각 목차마다 짧은 글들이 담겨 있는 칼럼 모음집과 같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수록된 짧은 이야기들은 책 페이지를 기준으로 2장에서 3장 정도의 적은 양임에도 난 그녀가 풀어낸 하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추고, 책을 잠시 덮은 채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야기들이 정말이지, 숨이 막힐 정도로 처절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고도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신대야만 했던 부모의 이야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20년 동안 바깥에 나가보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 세상에 외면받아 버려지고 고립되어 유서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동물로 태어나 인간만을 위해 이용되다 분쇄기 사이로 사라지던 생명들...



그녀는 책 속에서 노들 장애인 야학 교사로 활동하며 마주친 상황들에 이렇게 말했다.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은 내가 아는 것이었지만, 또한 온통 내가 모르는 것들이었다고’


나에게도 그녀가 책을 통해 외치는 이 세상이 실은 내가 알던 모든 것들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에 회피하여 온통 모르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여러 번의 호흡으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지금, 더는 회피하지 않기로 결심했기에 나를 포함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책의 소개글을 시작해본다.



홍은전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책의 저자인 홍은전 작가는 종로에 위치한 노들 장애인 야학에서 13년 동안 교사로 활동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냥, 사람>을 비롯하여 <노란 들판의 꿈>,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등 여러 가지 책들을 썼다. 또한 한겨레신문사에서 칼럼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가 이 글을 통해 그녀에 대해 소개하고 싶은 말은 그녀는 독자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참된 문필가라는 것. 그녀가 바라본 세상을 훔쳐보아 나는 비로소 세상의 테두리에 박힌 (어쩌면 우리가 밀어 넣은) 그들에게 평생 지고 갈 부채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수십 개의 짧은 이야기들로 묶여 있기에 이하에서는 감히 가슴에 와닿았던 글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1.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다 그리고 인간의 끝, 인간의 최전선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다]


진도로 떠나라는 막말에도, 보상금 얼마 받았느냐는 비아냥에도 속 시원히 대거리할 수 없다.
대신 떡을 해서 주민들을 찾아간다.
정치하는 놈들 다 똑같다고 욕하면서도 귀찮은 일에는 휘말려 들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혐오스럽게 짓지 않을게요”                                             

-<그냥, 사람> 속에서



작가가 만난 호성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월호라는 단어에 피로감을 느끼는 세상을 떠올렸다. 안산 화랑 유원지에 세월호 추모공원 조성을 하기 위해 발 벗고 뛰어다니는 호성 어머니는 그거라도 해주고 싶다는 엄마의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버텨낸다. 더 이상 현관문을 열고 돌아오지 못하는 아들의 죽음을 알아달라는 외침에는 멸시와 냉소가 쏟아지고, 추모공원이라도 지어주고 싶다는 마음에는 이기적이고 지겹다는 칼날이 박힌 말들이 쉽게도 날아온다.


더 가슴 아픈 것은 그런 상대방에게도 부모는 죄인이 된다는 것이다. 유골을 등에 업고 머리를 조아리는 그녀를 보면서 타인의 상처에 대한 유통기한을 왜 일면식도 없는 제 3자가 정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똑똑히 알아야 한다.


상처 주는 사람들은 그들의 상처를 모른다.



[인간의 끝, 인간의 최전선]


제가 어렸을 때 촌에서 자랐는데, 송아지를 먼저 팔면 어미 소가 밤새도록 웁니다.
일주일, 열흘 끊이지 않고 웁니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고 끊어질 듯이 웁니다.
그러면 송아지를 팔았던 우리 삼촌이 그다음 날 아침에 담배 하나 피워 물고 더 정성껏 소죽을 끓였습니다. 저 소는 왜 우냐고 타박하는 이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짐승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냥, 사람> 속에서



방송인 김제동이 농성 중인 유가족을 찾아 얘기한 말을 작가는 책에 담았다.


우리가 가져야 할 타인의 아픔을 대하는 태도.


이웃뿐만이 아니다. 세월호라는 말 자체를 부정적인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모든 사람들, 이에 발생되는 조금의 불편함으로 너무나 쉽게 혐오하도록 매도되는 대중들.


그래 그럼에도, 감성팔이일 뿐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그들에겐 적어도 매서운 눈짓이라도, 비수 같은 말이라도, 내뱉지 말아 달라 부탁한다.




2.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버튼에 대한 감각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2012년 그가 장애등급 심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가 물었다.

50미터 이상 걸을 수 있습니까.

송국현이 목울대에 잔뜩 힘을 주어 대답했다.

웅.

혼자 밥을 먹을 수 있습니까.

웅.

그것은 그의 자부심이었다.

그는 장애 3등급 판정을 받았다.                                                                                      

-<그냥, 사람> 속에서


당시 장애등급제 기준에 따르면 3등급인 그에게는 긴급지원 복지시스템은 시행될 수 없었고, 등급심사센터에서는 그의 장애등급을 조정해주지 않았기에, 그는 사흘 뒤 혼자 있던 집에 불이나 그렇게 죽었다.


홍은전 작가는 노들 장애인 야학에서 교사로 근무한 사람이기에 이 책은 장애인들이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잔인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필자 역시도 이 책을 보고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내가 이 사회에 얼마나 큰 수혜자이며, 그동안 내가 외면했기에 불러온 재난이 그들의 삶을 짓뭉개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삶은 철저히 지워져 있어 비장애인들의 삶 속에서는 아예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스스로가 이 잔인한 구조의 수혜자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살아간다.



2018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등록된 장애인 10명 가운데 9명은 후천적 원인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친구가, 애인이, 심지어 나조차도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은 허무맹랑한 저주가 아니라는 뜻이다.


책 속에 나온 송국현 씨 역시 스물넷에 뇌출혈로 우측 편마비와 언어장애를 입었다. 그럼에도 사회는 장애인들을 마치 외계인인 마냥 철저히 분리하여 고립시킨다. 절대 자신과는 상관없는 존재들인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냉정히 골방 속에 처박힌다.



너무나 늦었지만 이제야 외쳐본다.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길 바란다고. 조금 늦더라도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함께 버스를 타고, 함께 신호등을 건너길. 혼잡한 번화가의 식당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주칠 수 있기를. 비록 누군가에겐 상처를 입고 불편함을 주더라도 그들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고 뜨거운 감자가 되기를.



내가 될 수 있는 그들이, 그들이 될 수 있는 나와 함께 살아가길 바란다.






[버튼에 대한 감각]



전쟁에서도, 교통사고에서도 살아남은 한 위대한 생명이 고작 이 작은 버튼에 닿으려다 무너졌다는 사실에 심장이 아프다.
호출 버튼 누르기.
그것이 한경덕 씨가 지상에서 한 마지막 행동이지만 아직 아무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냥, 사람> 속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과 왼팔이 마비된 한경덕 씨는 신갈역 지하철 계단을 오르기 위해 리프트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추락해 죽었다.


장애인 리프트 사고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도 리프트 추락 사고로 한 사람이 사망했고 장애인들만의 폭탄 돌리기처럼 17년간 이곳저곳에서 계속되어 왔다.



이쯤 책을 읽다 보니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 삶은 처절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처절하게 죽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외치는 말은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말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불이 났지만 도망가지 못해 죽고 계단을 오르려다 죽고 버스를 타려다 죽는 그들에게 이 사회가 진 빚을 도대체 어떻게 갚아야 하나.


감히 위로와 동정의 시선을 가지고 살았던 나를 반성한다. 그들의 말들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했는지 헤아려 보다 깊은 존경심이 들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걸고 목숨을 담보로 사회에 말을 걸고 있다.



이 목소리에 우리는 회답할 의무가 있다.







3. 좋은 사람, 좋은 동물 그리고 도살장 앞에서







[좋은 사람, 좋은 동물]



명색이 고통을 기록하는 활동가인데,
두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후에야 내가 듣고자 했던 고통엔
오직 인간의 자리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삽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냥, 사람> 속에서




[도살장 앞에서]



짐승이란 권리 없는 존재였고, 인권은 항상 그들을 딛고 올라서는 것이었다.
그들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도살장 앞에 섰을 때 에야 깨달았다.
그날, 살아있는 돼지를 처음 보았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분리되었고 마취 없이 성기를 잡아 뜯기고 꼬리가 잘린 돼지를.
똥오줌으로 가득 찬 좁은 축사에서 쓰레기 같은 음식과 다령의 항생제를 먹으며
오직 살이 찌는 기계로 6개월을 산 돼지를,
온몸이 피부병과 상처인 배고픈 어린 돼지가 감자 세 알을 다 먹지도 못한 채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나는 바라보았다.
그에게 세상은 한 치의 과장도 없는 지옥이고 아우슈비츠였다.
나는 멀미가 날 것 같았다.                                               

-<그냥, 사람> 속에서


나에게도 목숨만큼 사랑하는 반려견 토리가 있다.


삼 년 전쯤부터 유기견 봉사 활동을 다니면서 입양했던 강아지인데 눈망울이 정말 사랑스럽다. 슬픈 일이 생겨 침대에 앉아 울고 있으면 옆에 와서 눈물을 핥아주고 집에 돌아오는 매일매일 신발장 앞으로 뛰어나와 내 품 속으로 안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뜨끈한 엉덩이를 내 허리쯤 붙이고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면 그 순간만큼 세상이 안온하다고 느껴질 때가 없다.



유기견 보호소에 봉사를 가서 만난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개고기 식용 도살장에서 구조되어 보호소로 넘어온 유기견들을 차에서 꺼내 안고 보호소 시설 안으로 옮기는 일을 했던 날이 있었는데,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다가도 시설 안으로 들어가는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안아주면 그 예쁜 검은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떨림을 멈추던 아이들을 기억한다. 그런 시간이 쌓여 나는 강아지 애호가가 되었고 사랑하는 반려견을 입양하게 된 것이다.





책 속에 홍은전 작가 역시 사랑하는 반려묘 카라와 홍시를 입양하고 나서 동물권에 대한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에 멈추지 않고 서울 애니멀 세이브에서 개최하는 비질이라는 활동에도 참여한다. (비질은 도살장을 찾아 공장식 축산이 가린 폭력을 직면하고 기록하는 활동이다.)

그렇게 그녀가 풀어낸 신념의 발자취를 보면서 나 역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도 내 옆에 앉아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녀석의 눈 망을 과 그녀가 비질에서 본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돼지의 눈망울이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바라본 세상을 훔쳐볼 기회를 준 홍은전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나와 같은 떨리는 부끄러움을 대면할 사람들을 찾는다. 꼭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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