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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Nov 17. 2022

기울어진 시각 속에서 공생하기

전혜원 기자의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을 읽고•••


"노동권" 문자 그대로 노동자를 위한 기본적인 권리이다.



하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 노동권을 둘러싼 이슈를 접할 때면, 그 소식을 대면하는 대중들에게 두 가지의 색안경을 주고, 어떤 색의 색안경에 비추어 노동권을 왜곡해 볼지 당장 선택하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왕왕 받곤 했다.




하청의 하청을 반복하여 원고용주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명백한 산업재해들, 도급이나 파견의 겉껍질을 쓰고 새롭게 발생한 여러 고용형태와 고여 있는 법 사이의 괴리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직들, 전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속도로 가속화되는 고령화 사회와 그럼에도 현실적이지 않은 조건만을 내세우는 귀족노조들.




그 중에서 정말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노동은 어떤 것일까?




오늘 소개하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그 어떤 색안경도 들이밀지 않은 시선으로 노동을 이야기한다. 진정으로 알아야 하지만 색안경을 통해선 보이지 않았던 노동권,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프롤로그 - 노동이 신성하다고요?




이 책의 저자인 전혜원 작가는 <시사in> 이라는 언론사에서 2013년부터 기자로 일했으며 주로 노동기사를 담당했다. 나는 이 책이 여타 다른 책들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가장 큰 이유를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색안경을 끼지 않은 시선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전혜원 작가가 쓴 책의 프롤로그에 잘 나타나 있다.



한국사회의 많은 주제가 그렇지만 유독 노동을 전하는 기사는 양극화 되어있다.
경제지나 보수언론은 익명의 재계관계자를 인용해 밑도 끝도 없이 노조 혐오를 부추긴다.
최소한의 반론 취재도 찾아볼 수 없다.
반면에 진보 언론은 노동자를 선량한 피해자로만 그리는 경향이 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정규직과 취업준비생의 반대에 부딪힐 때, 청년들의 이기심을 훈계하거나 자회사가 용역보다 못하다는 비정규직 쪽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식이다. (...)

나는 좀 갈증이 있었다.
훨씬 논쟁적이고 풍부한 이야기들이 공론장에 많이 나와야 한다고 믿었다.(...)

진보 언론의 노동기사에는 감성 팔이라는 댓글이 종종 달린다. 민주노총은 사회악이라는 둥 노조에 강한 반감도 드러낸다. 누군가는 댓글 따위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만, 어쩌면 그런 댓글 들이 진보언론이 문제를 직시하려 하지 않는 점을 꿰뚫어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이 프롤로그를 읽고 어떻게 이 책을 펼쳐보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 역시도 갈증이 있었다.



헌법상 명시된 노동권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파업자들을 이유 없이 폄하하던 뉴스기사들과, 미래세대나 청년세대의 삶은 나 몰라라 한 채 자신들의 이익만을 외치는 그들에게 좀 질려있던 탓이다.



나는 노동을 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세상이 그에 가까워지는 형태의 물살을 타게 되길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목소리를 전해주고 손을 잡아주고 싶다. 그와 동시에 편향되진 않은 시선으로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사회에서 합의점을 찾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와 같은 갈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펼쳐 들 준비는 모두 마친 것이다!



책은 총 9가지의 목차로 나뉘어 있고 실제 노동현장에 있던 사건들을 담았다. 이하에서는 그 중 두 가지의 주제를 가져와 보았다.





1. 종속적 자영업자의 시대 –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는 진짜 사장님일까?





본사와 계약을 맺은 가맹점주는 본사 경영 노하우인 세븐일레븐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
임차료와 인테리어 비용을 부담한 이씨는 편의점 매출이익의 65%를, 본사는 35%를 가져간다.
8000만원 가까운 돈을 들여 차린 9평짜리 편의점에서, 이씨는 하루 9시간씩 주 5일 일해 월 110만원을 번다. 이 씨는 9시간 동안 3분간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 외에는 편의점 매대를 떠나지 못했다.        


우리는 흔히 노동시장의 주체들을 전통적으로 사용자에게 고용되어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제공받는 임금노동자와, 스스로의 자본을 통해 자율적으로 일을 하는 자영업자로 구분했다.


즉 근기법이나 노조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근로자성의 여부를 종속성을 기준으로 판단해 온 것이다.


하지만 노동시장이 복잡해지고 여러 형태의 유형이 발생하면서 그 구별기준을 통해 다 담아낼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책 속에 나타난 이성종씨는 세븐일레븐 서울 동대문구청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이다.


우리도 보통 편의점의 점장님이 사용자의 관리 감독 하에 노무를 제공하는 근로자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자신의 의지대로 근무를 하는 온전한 자영업자로 보이는가? 라는 질문엔 또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다. 이유가 무엇일까?





현재 대법원은 흔히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요소로 인적 종속성과 경제적 종속성을 들고 있다.


이 씨가 운영하는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의 본사는 결제단말기를 통해 매장의 영업 여부를 2시간 마다 체크하고 무단으로 영업을 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 시킬 수도 있다. 심지어 일주일에 한번 본사 직원을 내보내 매장을 체크하기도 한다. 너무나 명백하게 인적 종속성의 요소가 충만해 보인다.


이번에는 경제적 종속성의 요소를 살펴볼까, 이 씨는 세븐일레븐 본사가 제공하는 제품만 판매할 수 있고 제품의 판매가격도 모두 본사가 정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지 않다고도 볼 수 없어 보인다.


다시 말해 허울뿐인 자영업자이지 실은 이 씨가 행사할 수 있는 그렇다 할 영업상의 재량권이 전무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행법상 근로자가 아닌 가맹점주의 사장님들은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행사 할 수 없다. 사용자처럼 보이는 본사에게 협상 테이블로 나와 달라 요구하며 사측을 끌어낼 수 없고 그걸 제재할 강제성 역시 없다.


결국 이런 상황 속에서 매년 물가상승에 비례해 최저시급을 올려달라는 아르바이트생들과 가맹점주 사장님들 간의 밥그릇을 둔 피 튀기는 싸움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장님과 아르바이트생 간의 분쟁 속에서 명확한 강자와 약자는 구별되지 않는다. 밥그릇을 놓고 벌이는 싸움에 양보만을 운운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진정한 해결책을 위해서는 더 이상 낡고 오래된 현행법상의 노동 시장 구조로는 부족하다.



이젠 우리 노동시장이 끌어안지 못한,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여보내야 한다.





2. 한국노동의 딜레마- 노조여, 세상을 바꾸려면 호봉제부터 바꿔라







60세 넘어 국민연금 수급 연령까지 일을 하되, 꼭 현대차에서 계속 일해야 하는 건 아니다.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자들이 자신은 퇴직할 테니 청년을 채용하라고 요구하면서
대신 다른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에서 일할 기회를 달라고, 그리고 이를 위한 교육이나 훈련을 국가가 제공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그들은 노후 빈곤이 우려되는 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수십년동안 안정적인 임금을 받아 온 중산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혜택을 누린 사람들 보다는 이제 시작하는, 혹은 아직 시작하지도 못한 청년들의 상황과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2021년 현대차, 기아차, 한국 GM등 완성차 3사 노조 위원장이 정년 65세 법제화를 요구했다.

그 이유는 국민 연금 수령 시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나이가 현재 만 62세에서 2033년 만 65세로 단계적으로 늦춰질 예정이다. 즉 이로써 현재 정년인 만 60세를 기준으로 약 4~5년간의 공백상태가 필연적으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이런 대기업의 대형 기업별 노조에 소속된 근로자들은 좀 나은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근로자들의 평균 퇴직 나이는 2019년 기준으로 49.4세이다. 이미 퇴직과 국민연금 수령가능 시기 사이에 10년간의 공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예상대로 찾아온 결과일 수 있지만 2016년 이미 대한민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들 중 1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사정들을 살펴보면 노조의 대표자들이 정년연장을 단체교섭의 1순위 대상으로 두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게 문제다.

우리나라는 현재 약 60~70% 의 회사들이 연공급제로 임금을 지불하고 있다. 즉 근로자들의 근속연수를 기준으로, 성과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재직 기간이 길어지면 임금도 함께 늘어나는 방식의 연공급 임금형태를 사용한다.

이 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정년이 연장되면 회사의 지불능력이 그들을 감당 할 수 없는 구조에 맞닿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정년 연장은 청년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데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그들의 일자리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지만, 기업의 지불능력은 한정된 자원인데 그것을 나누어 가지는 근로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논의를 어디로 가져가야 해결 할 수 있을까. 절망적인 노인 빈곤율과 가속화되는 고령화 사회 속에서 그들의 불안함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발을 내딛는 청년들의 기회에는 피해가 최소화 되어야 한다.



결국 그 답은 연공급제에 있다. 노동조합에서는 생계비 유지설에 따라 퇴직 직전인 장년층에 소비의 양이 가장 크다는 이유로, 다른 성과나 능력 없이도 높아지는 임금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연공급제를 선호한다. 그리고 그 전에는 이들의 주장에 타당한 근거가 있었다.

연공급제의 특성상 신입사원인 경우에는 실제 제공한 노동의 대가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는 대신, 이후 생산성이 떨어지는 장년층에 가서 이것을 보답 받는 형식의 운영체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계산되어 있던 기존의 구조와 달리 정년을 늘리고, 또 노인비율이 청년인구에 비해 훨씬 빠르게 늘어나는 인구구조에 의해, 현실적으로 연공급제는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합의책이 아니게 되었다.




자 이제는 직무급에 집중해야한다. 직무급이란 직무의 가치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는 것이다.

어떤 회사에 다니고 재직기간이 얼마나 기냐의 기준이 아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또 내가 수행하는 그 직무의 가치는 어느정도인지의 기준으로 운영되는 임금체계이다.

특정적인 거대한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지가 아니라 현재 내가 어떤 정도의 가치가 되는 일을 하는가의 기준으로 보상을 받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된다면 청년들은 소수의 일자리만을 두고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어디에 있든 내가 수행하는 직무의 가치대로 대우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직무급은 이직의 사다리를 만들어 주기에도 적합하다.

또한 정년을 앞둔 장년층에게도 비록 그 전만큼의 임금은 아니더라도 국민연금 수급시기와 퇴직 사이의 고용불안의 간극에서 더 많은 대안책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노조 역시 정부에게만, 기업에게만, 해결방안을 내어달라 주장하기보단 모두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노동의 정의를 찾는 게 먼저여야 할 것이다.




일전에 노동법을 배울 때 존경하던 은사님께서 노동법이 만들어진 이유는 절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였던 노동자들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따라서 노동법을 바라보는 눈은 어쩔 수 없이 기울어진 시각이어야 하며, 그게 노동법 제정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그 말에 필자 역시 동감한다.

노동법은 약자인 노동자를 위한 법이고 그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촘촘하고 민감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보다 한걸음 나아가 더 많은 세대들의, 사람들의, 사각지대의 노동자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노동의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의 물살을 타야 하는 지 독자들에게 사회의 현실을 꾸미지 않고 던져준다. 그 이후의 발걸음은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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