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삼국지연의> 속 리더에게 배우다.2

2. 인상적인 몇가지 장면 - 위나라편

2. 인상적인 몇가지 장면 - 위나라 편


1) 영교아부천하인, 휴교천하인부아(寧敎我負天下人, 休敎天下人負我)



“차라리 내가 세상 사람을 저버릴지 언정,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저버리게 하지 않겠다.”

- 조조


동탁을 암살하는 데에 실패한 조조는 진궁과 함께 달아나던 중 아버지의 친구인 여백사의 집에서 머물다가 그 가족들이 자신을 동탁에게 넘기려 한다는 오해를 하고, 그들의 가족을 모두 죽이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오해했음을 알고 난 뒤에 다시 도망치던 중 술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여백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마저 죽이고 만다. 그때 왜 여백사까지 죽였느냐고 묻는 진궁에게 조조가 한 대답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조조 본인의 가치관이 드러난 말로 볼 수 있는데, 자신은 큰 일을 해낼 사람이기에 남들을 희생시킬지 언정 스스로를 희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기중심적 가치관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큰 일을 위해 작은 희생(자신이 아닌)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조조의 성격이 드러난 부분이기도 하다.


2) 계륵(鷄肋)

한중이란 지역을 두고 유비와 전투를 벌이던 조조의 군대는 지루한 싸움에 지쳐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반찬으로 닭갈비를 먹고 있던 조조에게 하후돈이 ‘오늘 밤 암호는 무엇으로 할까요?’라고 묻자 조조는 ‘계륵(닭갈비)’이라고 대답한다. 이 소식을 들은 부장 양수는 자신 휘하의 부하들에게 철군을 준비시키고, 그를 찾아온 하후돈에게 ‘닭갈비는 버리기는 아깝지만 딱히 먹을 것도 없는 것인데 지금 한중이 그렇다’며 조조가 암호로 계륵을 선택한 것은 곧 철군할 것임을 은연 중에 드러낸 것이라고 알려준다. 이 말을 들은 하후돈 역시 부하들에게 철군을 준비시키고, 진영이 어수선해지자 그 사실을 파악한 조조는 양수를 죽이고 만다. 양수의 예측이 맞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부하 장수가 알아챘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결국, 다음 날 전투에서 유비 군에게 크게 패한 조조는 철군을 명령하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양수의 장례를 크게 치뤄주었다. 이처럼 조조는 자기중심적 가치관을 지닌 인물이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금새 깨닫고 반성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3)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본래는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입신양명 어후세 효종야’라고 하여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고, 몸을 세워 도를 행하고 후세에 이름을 날림으로써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의 끝이다.’라는 <효경>에 실린 공자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이 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것은 <삼국지연의> 속 하후돈이었다. 그는 여포의 부하인 고순과의 싸움 중 함정에 빠진 채 고순의 부장이었던 조성이 쏜 화살에 한쪽 눈을 맞자, 부모님께 물려받은 소중한 눈을 버릴 수 없다며 그 눈을 화살째 뽑아 씹어 삼킨 뒤 조성을 베어버린다. 바로 소설 속 이 장면을 통해 <효경>에 실렸던 ‘신체발부수지부모’란 말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이다.


4) 칠보지재(七步之才)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 대는가[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 조식


위나라의 조조는 문학적 소질도 뛰어났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런 그의 문학적 재능을 물려받은 것이 바로 셋째인 조식이었다. 조조는 자신을 닮은 조식을 무척이나 아껴 맏아들인 조비를 대신해 자신의 후계자로 조식을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후계자 싸움을 걱정한 대신들의 강한 반대로 포기하기는 했지만 이런 조조의 조식 사랑은 조식에 대한 조비의 질투와 증오로 이어지게 된다. 조조가 죽고 위왕이 된 조비는 동생 조비를 불러들여 ‘네가 글을 잘 짓기로 소문이 났으니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지어 보아라. 만약 그렇지 못하면 큰 벌을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조식은 바로 일어나 걸음을 옮기며 위과 같은 시를 지어 읊었다. 여기서 콩대는 형인 조비를, 콩은 아우인 자신을 은유한 것으로 ‘한 뿌리에서 나온 가지와 같이 함께 부모의 핏줄을 타고 났는데, 왜 이렇게 죽이지 못해 하는가?’하는 뜻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결국 조비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조식을 풀어 주었으며, 후세 사람들은 이 시를 ‘칠보시’라고 부르고, 일곱 걸음 만에 이런 시를 지어낸 조식을 ‘칠보지재’라 부르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봉읍지에서 조식은 울화병으로 죽었다고 전해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