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문학콘텐츠연구소 Apr 15. 2022

형제의 나라 불가리아.2-(2)

2. 부여의 기상을 간직했던 불가리아(2)

2. 부여의 기상을 간직했던 불가리아(2)


3) 언어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불가리아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일찍이 고조선 연방 서변 국경을 지키는 병력에 ‘불리지’(不離支)라는 고조선 후국 부여 기마민족 군단이 있었다고 했다. 신채호 선생은 ‘불리지’와 ‘불령지’(不令支, 고중국 발음은 ‘부리ᅌ지’)는 동일한 나라의 다른 한자 차음 표기이며 고조선 후국 부여족 무장이 거느린 기마부대족으로, 정복하는 지방마다 자기 부족의 ‘불’(弗, 不)을 넣어 이름을 짓는 특징을 가졌다고 기록했다.

BC 664년 고중국 동주(東周) 제(齊)의 환공(桓公)이 조(曹), 허(許), 연(燕), 진(晋), 노(魯) 등과 연합군을 편성하여 고조선을 공격해서 고조선-동주 전쟁이 일어났다. 그때 불리지(=불령지)는 고죽·산융(훈족)·불도하 등과 함께 고조선 연합군을 편성해서 제환공의 고중국 연합국과 싸워 물리쳤다. 불리지가 고조선 문명 후예임의 명백한 증거이다.

불리지의 뜻은 고조선어의 음차로서 ‘부르+지(치)’인데 ‘부르’는 부여족을 의미하고, ‘지(치)’는 장관·장군·가(加)의 뜻이다. 고구려 연개소문의 직책이 莫離支(막리지)인데, 신채호 선생에 따르면 마리치[마리(首, 머리+치(相)]로서 ‘머리 장관’(=首相)의 뜻이다. 즉 불리지는 ‘불가’(부여족 加)와 동일한 뜻이다.

BC 108년 고조선 멸망 후 ‘불리지(=불가족)’는 반농반목(半農半牧)의 후국으로 존재했다. 농경에 묶여 떠날 수 없는 소수만 남고 유목민들은 모두 북방으로 후퇴했다. 이후 ‘오호(五胡) 16국’ 시대에 반격하여 ‘한’(漢, 전한)을 멸망시켰지만, 다시 후퇴하여 서방으로 이동해 카프카스 지방으로 들어가 정착했다. 이때부터는 한자문화권을 벗어나서 ‘불가(르)’족으로 불리었다.

결국 정리하자면 불가리아 제국이 성립하기 전까지 부여인들은 고조선 세력권에 속한 기마민족이었으며, 동주 연합에 맞서 고조선의 편에서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고조선 멸망 후에 유럽으로 넘어가 불가리아를 세우게 된 것이다.


4) 불가리아에 남아 있는 부여족의 유산

아스파루흐 칸은 초기 수도를 플리스카로 정했다(이후 소피아로 변경). 최근 불가리아 고고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플리스카의 성벽은 2중으로 되어있다. 외성은 21㎞의 긴 장방형 토성(土城)을 쌓고 주위엔 환호(環濠)를 파서 사람과 말이 건널 수 없게 했다. 내성은 돌로 석성(石城)을 쌓아 그 안에 궁전과 ‘보야’(boyar·부여의 변음인 듯)라고 하는 귀족층의 거주지와 주요 시설을 두었다. 전형적 부여식 성곽이었다. 

석성(내성) 안의 ‘아사달’(Asar-dere)이라 호칭된 구역에서는 고급 도자기·철기·유리 제조 유적이 발굴됐다. 수공업이 크게 발전한 증거이다. 외성 밖의 농촌에는 동로마 통치하의 속주로 살던 소수 원주민 트라키아족과 다수의 슬라브족이 거주했다. 주목할 것은 내성 왕궁과 귀족층 지역을 ‘아사달’로 호칭한 사실이다. 이것은 건국기의 불가리아 제1제국이 자기의 뿌리를 고조선·부여로 간주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천문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astrology'이다. 영국의 천문고고학자 니덤Joseph Needham (1900-1995)은 그 말의 어윈이 'astro'이고 바빌로니아의 여신 아스타르테 Astarte에서 기원했다고 했다. 천문학의 본뜻이 '아스타르테'라는 것인데, 아스타르테는 곧 금성의 다른 이름이다. 주목되는 것은 아스타르테라는 발음이 단군조선의 아사달阿斯達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천부경 81자 바라밀》, 박용숙



그리고 전 회차의 글에서 잠깐 이야기했듯 불가족은 '단군'을 섬겼다. 


이 대신(大神)의 이름은 때로는 "천공” 혹은 “천상계”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사모예드 족의 눔 (Num), 퉁구스 족의 부가 (Buga) 혹은 몽고족 (Mongols)의 텡그리(Tengri : 부르야트 족[Buryat]의 텡게리[Tengeri], 볼가 타타르 족[Volga Tatars]의 탱게레[Tángere], 벨티르 족[Beltir]의 팅기르[Tingir], 야쿠트[Yakut]의 탕가라[Tangara] 등)가 바로 그런 신들이다.

                                                                                             《샤머니즘》, 미르체아 엘리아데


'단군'이란 말이 텡그리가 됐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고대 언어에서 동화와 탈락 등의 음운 변화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가리아제국의 지배층은 고조선식 고인돌 무덤을 사용했다. 

토닌(Dimitar Tonin)씨가 현재의 불가리아에서 지표조사 보고한 것만도 무려 1140여개나 된다. 이 고인돌은 철기시대의 것이어서, 입구에 돌을 잘 다듬어 사각형의 상징적 출입문을 만든 발전된 특징이 보인다. 기본구조는 그들 조상의 고조선문명 고인돌 양식을 계승했다. 불가리아 제국을 동방의 불가르(불리지)족이 민족 이동해 들어가 세웠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작가의 이전글 형제의 나라 불가리아.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