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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콘텐츠연구소 Apr 19. 2022

형제의 나라 불가리아.3

3. 유물로 살펴보는 부여의 흔적

3. 유물로 살펴보는 부여의 흔적


지금까지 여러 방면에서 초기 불가리아 제국을 세운 것이 발칸 반도로 이동한 부여족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불가리아의 유적 답사를 통해 유물들을 살펴보고 돌아온 이성한 한의사의 글(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3565)을 통해 이러한 사실에 대미를 장식할까 한다.

제일 처음 같은 동방민족이었던 아발족의 영향을 벗어나 불가족 연합을 이끌었다는 쿠브라트(형제의 나라 불가리아.1 (4) 부여의 고추가와 불가리아 고추불가제국 참고)는 쿠트릴구르(Kutrigur)와 우티구르(Utigur)를 통일하여 온오구르를 세웠다. 이때 지명에 붙은 구르, 구리, 그르는 모두 골짜기를 의미한다. 그것이 마을 이름일 때는 고을이고 국가 이름일 때는 高麗로 음차한다.

이름을 통한 유추는 이쯤하고 그럼 본격적인 유물 살펴보기를 해보자.

이 사진은 불가리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초기 불가리아인의 모습으로 불가리아 초기 유적지에서 발굴된 인골을 복원한 것이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서양인 보다는 동양인에 해당하는 얼굴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에 따르면 결국 동양인 중에서도 부여에 해당한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불가리아 박물관에서 발견된 쿠브라트의 유물이다. 

그리고 이것은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환두대도이다. 손잡이 끝에 둥근 고리가 달린 이 독특한 모습은 서양의 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이다.


불가리아 유적지에서 발견된 목걸이(왼쪽)과 발해 유적지에서 발견된 목걸이를 보자.

색감이나 형태가 무척이나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동경이라고 부르는 거울 역시 그러하다.

불가리아 왕의 무덤에서 나온 동경과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동경을 비교해보면 어느 쪽이 무령왕의 무덤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허리띠 역시 흡사하다. 노란색 바탕 작은 네모 안의 것이 불가리아의 것이고, 회색 바탕 큰 네모 안의 것이 발해인의 것이다. 물론 발해쪽의 허리띠가 보다 발전된 형태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윤곽이나 버클 부분이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신라 계림로 14호분에서 발견된 황금보검이 그 주인공이다.

보기에도 동양적이지 않고 서양의 향기를 풍기는 이 보검은 어떻게 신라인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던 것일까?

지난 2010년 방영한 '역사스페셜―계림로 14호분 황금보검의 비밀' 편에서 자세히 다루어진 이 보검의 원류를 찾던 제작진은 불가리아로 향했다. 그리고 트리키아인들의 무덤에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트리키아인들이 기마민족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작진은 그곳 박물관에서 동물의 뿔을 형상화한 술잔이나, 청동솥 등 신라 혹은 가야와 유사한 유적품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황금보검과의 연관성을 찾아내지 못한 제작진은 다시 불가리아의 바르나 박물관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도 황금보검의 원형을 찾지는 못했으니 황금보검에 사용된 석류석(가넷 - 우리나라에서는 발견되기 어려운 보석)을 이용한 다양한 장신구와 황금보검에 사용된 상감기법을 활용한 장신구들을 만날 수는 있었다.


또한 흑해의 로만글라스와 신라에서 발견된 로만글라스의 유사성도 확인되었다.

결국 발칸 반도로 이동한 부여족은 불가리아를 세운 뒤에도 어떤 식으로든 고구려, 백제, 신라 등과 끊임없이 교류를 주고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통해 우리는 불가리아가 우리와 형제의 나라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현재 슬라브족 중심의 불가리아가 아닌 그 이전의 부여족의 불가리아란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신라가 중국의 힘을 빌어 삼국을 통일하며 반도 북쪽의 소유권을 잃어버리고,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 심취한 조선이 스스로의 역사를 부정하고, 일제강점기 아래서 36년 동안 우리 민족의 역사를 빼앗기면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지니고 있던 역사의 상당한 부분을 스스로 버리거나 강제로 빼앗긴 것은 아닐까?


대륙을 횡단하여 새로운 대륙에 닿았음에도 부여라는 이름을 지키려했던 조상들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상념에 잠길까?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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