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김점동(박에스더)
역사 속의 인물을 소개하는 마지막 열 번째 시간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의사였던 김점동(박에스더)님에 대한 것이다.
고종 14년(1877) 서울에서 태어난 그녀는 1891년 미국인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으며 '김에스더'라 불리게 되었다.
김점동은 1887년 열 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이화학당에 입학하였는데, 특히 영어에 재능이 뛰어났다고 한다. 덕분에 1890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뒤, 보구여관에서 일하던 여의사 로제타 셔우드의 통역으로 일하게 된다. 이 보구여관은 이화학당 내에 개설된 최초의 여성 전문병원이었다. 당시 사회는 칼을 들고 몸을 째어 수술을 하는 서양의학 자체에 대한 불신은 물론, 여자의 몸으로 남자 의원에게 몸을 보이는 것도 꺼리는 시대였다.
그러나 직접 로제타의 옆에서 사람들이 치료받는 모습을 보던 김점동에게는 그런 사회상이 안타까웠다. 1892년 로제타가 캐나다의 의료 선교사인 제임스 홀과 결혼하는데, 이때 홀의 밑에서 일하던 청년 박유산과 만나게 된다. 1893년 박유산과 결혼한 김점동(김에스더)는 남편의 성을 따라 '박에스더'로 불리게 된다.
점차 자신도 의사가 되겠다는 다짐이 굳어지던 그녀는 1895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리버티공립학교에 입학한다. 로제타의 친정이 근처였기에 그의 도움은 물론 스스로도 병원에 취직하여 일을하면서 생활비를 마련했고, 그 와중에도 라틴어와 물리학, 수학 등을 공부하여 1896년에는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4년 뒤 대학을 졸업하면서 정식으로 의사가 된다.
당시만해도 서양의학을 공부해서 정식으로 의사가 된 사람은 미국에서 최초로 자격증을 딴 서재필과 일본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김익남뿐이었다. 이런 그녀의 곁에는 자신의 아내를 위해 농장 막노동과 식당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남편 박유산의 헌신이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는 아내의 졸업 2달 전 폐결핵으로 죽게 된다.
김정동은 남편의 장례를 마치고 1900년 고국으로 돌아오는 데, 신학잡지인 <신학월보> 창간호에 그 내용이 실렸다.
“부인 의학박사 환국하심. 박유산 씨 부인은 6년 전 이화학당을 졸업한 사람인데, 내외가 부인 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 씨를 모시고 미국까지 가셨더니 공부를 잘하시고 영어를 족히 배울뿐더러 그 부인이 의학교에서 공부하여 의학사 졸업장을 받고 지난 10월에 대한에 환국하였다.(중략) 미국에 가셔서 견문과 학식이 넉넉하심에 우리 대한의 부녀들을 많이 건져내시기를 바라오며 또 대한에 이러한 부인이 처음 있게 됨을 치하하노라.”
<신학월보> 창간호
귀국한 그녀는 보구여관에서 책임 의사로 활동했는데, 로제타의 통역으로 일하던 그녀가 바로 로제타가 의사로 일하던 그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이후 로제타가 자신의 죽은 남편을 기리기 위해 평양에 기홀병원을 세우자 그곳으로 가서 의료 활동을 계속하였다. 기홀병원에 부임한 첫해에만 약 3000여 명의 환자를 진료했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던 김점동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평양 광혜여원에서도 진료를 보았고, 황해도와 평안남도를 돌아다니며 무료 진료를 보기도 하였다. 뿐만아니라 기홀병원 부속 맹아학교와 간호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여전히 여자 의사, 그것도 서양의학을 배운 여자 의사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수술을 통해 환자를 낫게하는 그녀의 모습은 점차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게 되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돌보던 김점동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는 못하였다. 바로 이국 땅에서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폐결핵이 그녀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뒤늦게 그녀의 병을 알게된 선교사들이 그녀를 베이징으로 요양을 보내기도 했지만,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1910년 4월 13일 자신의 둘째 언니 집에서 사망하고 만다. 당시 35살의 젊은 나이였다.
약 16년 후(1926) 로제타의 아들인 셔우드 홀이 한국으로 들어와 해주구세병원의 원장으로 부임하는데, 홀은 1928년 결핵 퇴치를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결핵 요양병원인 해주구세요양원을 건립한다. 또한 1932년에는 해주구세요양원의 이름으로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바로 자신의 어머니 곁에서 늘 함께했던 이모와 같았던 김점동의 죽음에 그또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 태어나 대한제국을 거쳐 경술국치 직전에 세상을 떠난 김점동.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학당에서 영어를 배우고, 의사의 통역관이 되었다가 스스로 의사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돌보다 스스로는 돌보지 못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김점동. 남녀를 떠나 서양 의학을 배운 3번째 의사이자 여성으로써는 첫번째 의사였고, 그 의술을 행함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그녀의 이름을 우리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역사에는 분명 남들과 비교하기 어려울만큼 큰 업적을 세우고도 알려지지 못한 수많은 영웅들이 있다. 비록 열 분만을 선정하여 전달했지만 이것은 순전히 필자의 주관적 잣대에 근거한 것일뿐이다. 이렇게 찾아보아면 나오기라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찾아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영웅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바로 이런 분들이 있기에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숨쉬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