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나대용
우리 민족에게 '거북선'은 무척 존귀한 물건이다. 최초의 철갑선이란 과학적 가치를 제하더라도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수군을 물리치는 데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역사적 가치만으로도 거북선은 우리 민족에게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사실 '거북선(龜船)'이라는 이름은 태종 이방원 때에 이미 등장한다.
“왕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이 왜선으로 꾸민 배와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1413)
“거북선이 매우 견고하여 적선이 해치지를 못한다”(1415)
<조선왕조실록>
그러나 이후 180년 동안이나 거북선에 대한 기록은 등장하지 않았고, 1592년(임진년)에 이르러서야
“거북선에 사용할 돛 베(帆布) 29필을 받다”
<난중일기> 2월 8일
그리고 거북선의 포를 처음 발사한 날은 3월 27일이며, 처음으로 전투에 참가한 것은 5월 29일 '사천해전'이었다고 한다. 왜군의 선발대인 고니시의 제1번대가 부산포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 4월 14일이었다고 하니 거북선을 만들어 화포를 실험하자마자 실전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주인공다운 아슬아슬한 등장이었다.
광해군 시절 이덕흥의 상소문에 첨부된 <귀갑선도>
이후 거북선이 보여준 다양한 업적은 여기서 하나하나 밝힐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이 거북선의 탄생이 깊이 관여했던 나대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나대용은 1556년 전라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583년 무과에 급제하며 훈련원에서 근무했는데, 1591년 전라좌수영의 군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바로 이순신을 만나 그 밑에서 '감조전선출납군병군관'으로 복무하게 되는데, 전선의 제작을 감독하고 관리하는 업무였다고 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때 나대용이 거북선을 설계하고 제작까지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 사료에서도 그러한 내용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김훈 작가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나대용을 다루면서 '그가 거북선을 만들었다.'란 구절 때문에 이렇게 알려진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다만 야사에 따르면 약 20여 명이 거북선 제작에 참여하였는데 이들을 관리 감독한 인물이 바로 나대용이었다.
특히 전라좌수영이 관할하는 좌수영, 순천부, 방답진 3곳에서 제작되던 거북선 중 좌수영의 거북선은 나대용의 관리 아래 만들어졌다. 어찌되었든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나대용 역시 좌수영의 5개 진지 중 하나인 발포의 지휘관이 되어 옥포해전, 사천해전 등에서 왜군과 맞서 싸웠다. 사천해전에서는 왜군의 총탄을 맞아 부상 당하기도 하였으며, 이후에도 당항포해전에 참전하였다.
거북선을 나대용이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였는지는 확인이 불가하지만 그가 선박의 건조에 일가견이 있었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모친상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3년 상을 치루던 중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6년의 시간을 보낸 뒤, 관직에 복귀한 그는 '창선'을 만드는 일에 발탁되었다. 이때 조선은 배에 태울 격군을 확보하지 못해 전선의 숫자를 늘리기 어려웠는데, 나대용은 125명이 필요한 판옥선이나 거북선을 대신해 42명의 격군만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창선을 개발하였다. 이 창선은 판옥선과 거북선의 장점을 취합한 것으로 몸통에 칼과 창을 빽빽하게 꽂아 만들었으면서도 가벼워서 42명의 격군만으로도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1606)
광해군이 재위한 뒤에는 곤양군수를 거쳐 남해현령으로 임명되었는데, 이때 그는 쾌속선이라 할 수 있는 '해추선'을 제작하였다. 이 해추선은 현재에도 일반적인 목선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현재에도 김이나 미역을 채취하는 데 쓰여서 채취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만 조선 시대에는 목적에 따라 '해추선, 농토선, 토선, 해채선' 등으로 불리었다.
해추선의 모형(한겨레-배목수이야기)
이러한 업적을 계기로 나대용은 당상관으로 제수되었고, 1612년 사망하여 고향인 나주 땅에 뭍혔다. 그의 생가와 무덤은 현재 전라남도기념물 26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우리에게 이순신과 거북선은 너무도 유명한 조합이다. 그러나 그 중간에 선박기술자이자 왜적과 용감히 맞서 싸운 나대용이란 장수가 있었음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라고 했을지는 몰라도 선박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실행한 인물이 바로 나대용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거북선을 타고 실제로 돌격대장을 했던 이언량이나 이기남, 박이량, 신여량 등의 용맹무쌍한 인물들 역시 기억해야할 이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