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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콘텐츠연구소 Aug 10. 2022

우리 역사 속의 범죄자들.5.정남규

5.쾌락추구형 살인마, 정남규

5.쾌락추구형 살인마, 정남규


어느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권리따위는 없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것 자체가 너무나 즐거워 살인 자체에 중독되는 족속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정남규이다.


1969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난 정남규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인천으로 이사를 간다. 졸업 후 직장에도 들어갔으나 적응을 못했고, 이후 군에 입대하여 하사로 전역을 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별다른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절도 등의 범죄를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이는 정남규가 어린 시절 겪었던 학대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한 그는 동네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으며, 고등학생일 때도 학교 폭력을 당했고, 자취방 옆에 살던 아저씨에게 다시 성폭행을 당했다. 이는 군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군대에서도 온갖 가혹행위를 당했고 성폭행 역시 당했다고한다.


이런 환경 속에 정남규는 사회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갔고, 결국 범죄의 길에 접어들어 1989년에는 특수폭행으로 징역 2년 6개월(집행유예), 1994년엔 절도로 징역 8개월(집행유예), 1996년에는 성폭력으로 징역 2년 6개월, 1999년에도 성폭력으로 징역 2년, 2002년에는 절도로 징역 10개월 등의 처벌을 받았다.


물론 가난과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군대내 가혹행위 등 그의 인생이 암울했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는 범죄와 처벌에도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는 의지 없이 사회에 대한 증오심만을 더 키워 마침내 연쇄살인마의 길로 접어든다.


                                              출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쳐


후에 밝혀진 것을 토대로 정남규의 사건 일지를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2004년 1월 14일, 부천시 원미구 소사동:  놀이터에서 놀던 윤모 군(13세, 남)과 임모 군(12세, 남)을 칼로 위협해 근처 춘덕산으로 데려가 성추행 후 스카프 등으로 목을 졸라 살해. 시신은 실종 16일 만인 1월 30일, 아이들의 집에서 3km 떨어진 춘덕산 정상 부근에서 옷이 대부분 벗겨진 채로 발견. 이 사건은 미궁에 빠질 뻔했으나 정남규가 체포된 후 그의 자백으로 범행 사실이 드러남.


2004년 1월 30일, 구로구 구로동:  한 빌라에서 원모 씨(44세, 여)를 수차례 찔러 중상.


2004년 2월 6일,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길을 지나던 전모 씨(24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 이 사건은 유영철이 자백한 후 무죄를 선고받은 뒤 한동안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었다가 정남규가 체포된 후 그의 자백으로 범행 사실이 드러남.


2004년 2월 10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우유 배달부 손모 씨(28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


2004년 2월 13일, 영등포구 신길5동: 골목길에서 서모 씨(30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중상 입힘.


2004년 2월 25일, 영등포구 신길2동: 골목길에서 홍모 씨(29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중상 입힘.


2004년 2월 26일, 신림4동: 신림시장 골목길에서 출근하는 할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던 박모 양(17세, 여)을 골목길에서 흉기로 10여 차례 찔러 중상.


2004년 4월 8일, 신길4동: 귀가 중이던 피해자 정모 씨(25세, 여) 흉기로 수차례 찔러 중상 입힘.


2004년 4월 22일, 구로구 고척2동: 여대생 김모 씨(20세, 여)를 따라가 집 앞에서 흉기로 무참히 찔러 살해.


2004년 5월 5일, 동대문구 휘경동: 최모 씨(22세, 여)를 따라가 흉기로 수차례 찔러 중상 입힘.


2004년 5월 9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남문에서 귀가 중이던 김모 씨(24세, 여)를 흉기로 10여 차례 찔러 살해.


2004년 8월 4일,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 주택에 침입해 안모 씨(50세, 남)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 입힘.


2005년 4월 6일 오전 1시 30분경, 안양시 만안구 안양5동 주택에 침입해 강모 씨(71세, 여)와 한모 양(13세, 여)를 둔기로 내리쳐 부상을 입히고 방화.


2005년 4월 18일, 금천구 시흥3동: 빌라에 침입, 잠자고 있던 모자(46세, 12세)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 입힘. 


2005년 5월 30일, 군포시 산본동: 우유 배달부 김모 씨(41세, 여)를 흉기로 찔러 살해.


2005년 6월 4일, 광명시 철산동: 주택에 침입해 김모 씨(36세, 여)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 입힘.


2005년 10월 9일, 관악구 봉천11동: 장애인 주거 시설에 침입해 그곳에서 자고 있던 홍모 씨(39세, 여) 등 2명을 둔기로 내려쳐 중상 입힘.


2005년 10월 19일, 봉천10동: 주택에서 변모 씨(26세, 여)를 추행 후 목졸라 살해 , 안방으로 들어가 동생 변모 씨(23세, 남)를 둔기로 내리친 뒤 불을 지르고 밖에서 젓가락을 문에 끼워 나오지 못하게 하여 중상을 입혔다.


2006년 1월 14일, 도봉구 창동: 반지하집에 침입, 자고 있던 김모 양(7세, 여)을 추행, 구타하다가 김양의 아버지가 인기척에 깨어나자 도주.


2006년 1월 18일, 강북구 수유동: 송모 씨(48살, 남)의 집에 침입해 둘째(17세, 여)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친 후 목졸라 살해한 뒤 집에 불을 질러 첫째(21세, 여), 막내(12살, 남), 총 3명을 살해했다.


2006년 3월 27일, 봉천 8동: 2층 단독주택에 들어가 잠을 자고 있던 김모 씨(25세, 여) 등 세 자매를 둔기로 마구 내려쳐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 입힘. 


2006년 4월 22일, 영등포구 신길6동: 반지하집에 침입, 자고 있던 김모 씨(24세, 남)를 둔기로 내려쳐 상해를 입혔으나 김모씨와 그 아버지까지 달려들어 격투 끝에 붙잡힘.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중상을 입힌 그가 끔찍한 것은 자신의 범죄를 위해 다음에 다루어질 유영철처럼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습하여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방송을 통해서도 잘 알려졌는데, 2004년 5월 9일 발생한 보라매 공원 사건까지는 칼을 이용해 지나가던 여성들을 무작위로 찔러 살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칼에 찔린 사람들이 죽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 뒤로는 쇠파이프나 파이프렌치 같은 둔기로 범행도구를 바꾸었으며, 길을 지나던 여성이 아닌 허름한 주택의 열린 창문 등으로 들어가 저항불능 상태의 상대방을 죽이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그는 검거되지 않고 더 많은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범행시 항상 장갑을 착용했으며, 신발의 특징을 지우기 위해 신발 밑창을 긁어내어 족적이 나오지 않게 했다. 또한, 자신의 범죄 기사를 스크랩하여 수사 상황을 꾸준히 주시하고 있었으며, 권일용 프로파일러의 사진이 실린 주간지 기사까지 스크랩하여 간직하고 있었다. 또한, 매일 꾸준히 달리기 등을 하며 살인을 위한 체력을 키우기도 했다.


검거 된 이후 단순 상해강도범으로 보고가 되었으나 권일용씨의 추궁으로 범죄 사실을 자백하였으며, 이후에도 전혀 자신의 범행에 대한 죄책감이 없었다고 한다.


권일용(프로파일러)이나 이수정(범죄심리학자) 같은 분들이 최악의 살인마로 손꼽는 정남규는 이후 조사 과정에서도 "피 냄새를 맡고 싶다. 피에서는 향기가 난다", "천 명을 죽였어야 했는데 채우지 못하고 잡힌 것이 억울하다."고 말했으며, 법정에서도 "더 이상 살인을 하지 못할까봐 조바심이 난다.",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끊겠다."며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현장검증에서는 자신에게 욕을 하고 돌을 던지며 달려들려고 하자 정남규 역시 맞서 달려들려고 하였고, 이동을 위한 차량에 타서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기까지 하여 지켜보는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정남규에게 살인은 목적이 아닌 과정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저 즐겁기 위한 놀이였다. 비슷한 시기에 그못지 않게 잔인한 연쇄살인 행각을 벌인 유영철을 라이벌로 생각하며 계속 자신이 유영철보다 낫다고 주장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 였다.


그러나 그는 2007년 4월,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뒤, 2009년 11월 서울구치소에서 목을 메어 자살을 기도하였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하였다. 그를 면담했던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정남규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살해하며 끝난 사람이다. 살인의 끝은 자기 자신이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정남규의 어두웠던 과거는 비교적 사실일 가망성이 크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인지(3차례 이상의 동성 성폭행 등) 확인은 불가능하다. 단순히 벌을 경감받기 위한 변명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그의 과거가 어쨌든 간에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던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욕구 해소를 위해 잔인하게 희생시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나 그의 범행 대상이 대부분 여자나 노인, 어린아이였다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비열한 범죄자인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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