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시작, 유영철
2002년 월드컵이라는 국가적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루어 낸 대한민국은 모두가 들뜬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를 급속도로 가라앉히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2명의(당시엔 2명인줄 몰랐지만) 연쇄살인마에 의해 벌어진 살인사건들 때문이었다.
한 명은 지난 이야기에서 다루었던 정남규이며, 다른 한 명이 이 시간 이야기할 유영철이다.
유영철은 1970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고, 다음 해에 그의 가족들은 서울 마포에 자리를 잡게 된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그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으로 인해 무척 폭력적이었고 외도도 일삼아 유영철은 아버지와 계모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초등학생이 되면서 어머니에게 가서 살기 시작했고, 중2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나름대로 가난하지만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이때, 예체능에 관심과 재능이 있었다고 하는데, 화가를 꿈꿨지만 색약으로 인해 예고 진학에 실패했고, 이후 국제공업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절도죄로 구속되면서 자퇴를 한다.
끊임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를 드나들던 그는 1990년 황씨를 만나 이듬해부터 동거를 시작하여 1992년 아들을 낳게 된다. 하지만 유영철은 끊임없이 범죄를 저질렀고, 교도소에 들락거렸다. 10년 동안 감옥에 있던 시간만 7년이었다. 그리고 2000년에 다시 성폭행으로 전주교도소에 수감되었고, 황씨는 유영철에게 이혼을 통보한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아내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던 그는 아내와 아들을 죽이려고 했다가 무차별 살인으로 계획을 변경한다. 그리고 전주교도소를 출소한 2003년, 어머니의 집에서 살면서 큰 개를 칼로 찔러 죽이는 등 살인연습을 하는데, 칼로는 잘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공사장 망치를 짧게 개조(4kg 가량)하고, 위협용 칼 (15cm 가량)을 준비하였으며, 지문을 감추기 위한 세무장갑과 코팅된 목장갑 등을 구매하고 이것들을 담을 가방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그의 끔찍한 범죄 행각이 시작된다.
2003년 9월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이모 씨(72세)와 부인 이모 씨(67세)를 둔기로 살해
2003년 10월 9일, 종로구 구기동에서 주차 관리원 고모씨(61세, 남)의 집에 침입해 고모 씨의 아내(60세, 여) 어머니 강모 씨(85세, 여)와 고모 씨의 아들(35세, 남, 지체장애)을 둔기로 34회를 강타해 살해
2003년 10월 16일 강남구 삼성동 2층 단독주택에 침입해 최모 씨(70세)의 부인 유모 씨(69세, 여)를 둔기로 살해
2003년 11월 18일 종로구 혜화동의 2층 단독주택에 침입해 집주인 김모 씨(87세, 남)와 파출부 배 모 씨(53세, 여)를 둔기로 살해. 증거 인멸을 위해 금고에 방화 – 이 사건에서 경찰은 CCTV 화면에 찍힌 뒷모습과 168cm의 키, 20~30대 후반의 남자, 그리고 족적 검색을 바탕으로 금강제화 버팔로 캐주얼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을 찾는다는 수배 전단을 전국에 배포함
2004년 4월 14일 서울 중구 황학동의 도깨비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안모 씨(44세, 남)를 안씨의 베스타 승합차로 유인해 살해
이처럼 힘없는 노약자와 장애인을 대상으로 범행을 이어가던 유영철은 경찰이 자신의 뒷모습을 바탕으로 수배 전단을 뿌리자 위기감을 느껴 범행 대상과 장소를 바꾼다. 전화방 도우미나 출장마사지사 등을 유인한 뒤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것이다.
3월 16일 전화방 도우미 23세 여성을 두 손으로 목 졸라 살해
4~5월 전화방 도우미 성명불상(20~30대) 여성 살해
5월 PC방에서 조건만남 쪽지를 보내고 있던 25세 여성을 윤락 행위로 단속한다며 위조 경찰증으로 경찰 행세를 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다음 살해
6월 2일 전화방 도우미 35세 여성 살해
6월 전화방 도우미 성명불상(20대 후반) 여성 살해
6월 9일 출장 마사지사 26세 여성 살해
6월 18일 전화방 도우미 27세 여성 살해
6월 25일 출장 마사지사 28세 여성 살해
7월 2일 출장 마사지사 26세 여성 살해. 유영철이 사귀다 헤어진 여성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 피해자는 살해된 뒤 잔혹하게 시신을 훼손당함
7월 9일 출장 마사지사 24세 여성 살해
7월 13일 출장 마사지사 27세 여성 살해
이 과정에서 유영철은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시체를 절단하여 매장했으며, 시신의 일부를 먹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시체를 보다 효율적으로 훼손하기 위해 자신의 전신 엑스레이 촬영하고 필름을 받아와 법의학, 해부학 책을 보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2004년 7월 15일 "특정 번호로 불러낸 마사지사들이 자꾸 실종된다"는 출장 마사지 업주의 신고가 유영철 체포에 큰 공을 세운다. 당시 경찰은 유영철을 '마사지사들을 납치해서 지방으로 팔아치운다는 납치범' 정도로 생각했는데, 조사 과정에서 "전화로 불러낸 마사지사를 어떻게 했느냐?"라는 질문에 유영철은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바로 나"라고 진술했다. 이후 "시체를 숨긴 장소를 알려주겠다."고 말하고는 경찰서를 나서다 도망쳤으나, 11시간 만에 영등포역에서 붙잡힌다.
이후 조사과정에서 4건의 살인을 자백한 뒤, 현장검증에서는 26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정황이나 신빙성이 알맞지 않아 최종적으로 20명을 살해한 것으로 기소되어 2005년 6월 9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고, 16년이 지난 현재도 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다.
검거 후 유영철은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은 함부로 몸 놀리지 말고, 부유층은 각성했으면 합니다."라는 희대의 망언을 남겼다.
무엇보다 그는 부유층을 노린게 아니라 노약자와 장애인처럼 자신이 범행하기 쉬운 대상을 골라 일부러 집에 성인 남성이 없는 낮시간대에 범죄를 저질렀다. 그리고도 cctv를 통해 자신의 뒷모습이 공개되자 두려운 나머지 사회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약자인 유흥업 종사자 여성들을 타켓으로 변경한 뒤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여 살해하는 찌찔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카메라 앞에서는 자신이 무슨 다크 히어로가 된 듯 말한 것이다. 유영철은 그저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대상으로 어처구니없는 복수심을 풀려고 한 것이다. 게다가 유영철은 대부분의 연쇄살인마들이 피해자의 죽어가는 모습에서 쾌감을 느껴 천천히 죽였던 반면 유영철은 일단 빨리 죽인 뒤에 시신을 훼손하고 먹는 등의 찌질함을 보였다. 살인마치고는 겁이 많았던 모양이다.
아직도 교도소에 수감 중인 유영철은 정남규처럼 자신 스스로를 죽이지도 못하고 질긴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