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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콘텐츠연구소 Aug 16. 2022

우리 역사 속의 범죄자들.7.지존파

7.연쇄 살인 조직 '지존파'

7.연쇄 살인 조직 '지존파'


어떤 누구에게도 타인의 생명을 앗아갈 권리따위는 없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사형제도를 철폐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국가조차 포기한 이 살인에 대한 권리를 마치 자신들에게 허락된 능력인 것처럼 사용했던 조직이 있다. 바로 오늘 이야기할 지존파이다.


두목이었던 김기환은 1992년 부자들의 돈을 뜯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탄광 일을 하며 알게된 동료와 그의 친구, 그리고 도박을 하다 만난 또 다른 한 명을 포섭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김기환의 범죄 계획이 살인까지 들어있음을 안 다른 이들은 모두 반발하였고, 조직은 해체된다.


그러나 김기환은 포기하지 않고 더 못배우고 부자들에게 증오심이 강한 인물들을 섭외하기 시작한다. 첫 번째 대상은 바로 고향 후배인 강동은이었는데, 김기환은 처음과는 달리 충분히 시간을 두고 설득하여 강동은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 이후 강동은의 교도소 동기인 문상록과 후배 송봉우도 설득하며 조직을 결성하게 된다.


이들은 스스로의 이름을 '마스칸'이라고 지었는데, 그리스어로 '야망'이란 뜻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어로 야망은 '필로독시아'이며, '마스칸'은 아랍어로 '집' 혹은 '숙소' 등을 뜻하는 말이었기에 이들의 무지함을 드러낸다. '지존파'는 이들이 검거된 이후 당시 수사과장이었던 고병천씨가 이들이 이마에 '지존'이라고 쓰인 두건을 두르고 훈련을 한 점, 두목인 김기환이 스스로 별명을 지존이라고 지은 점 등에서 따와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뭉친 네 사람들은 전주에서 함께 생활하며 구체적인 범죄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이때 다시 강동은의 교도소 동기 백병옥과 문상록의 동료였던 강문섭, 이주현의 친구 김현양 등을 끌어드려 총 7명이 되었다. 이후 송봉우가 탈퇴하여 이들에게 살해 당하며 6명이 되고, 김기환이 성폭행으로 구속되며 5명으로 활동한다.


이들은 위와 같은 자체 강령을 만든 뒤에 본격적인 범죄 행위를 시작한다.



1993년 7월 - 살인 연습을 위해서 충청남도 논산의 두계역 부근 다리 밑에서 혼자 걸어가던 23세 여성 최미자 양을 납치하여 차례로 강간하고 살해한 뒤 인근 야산에 암매장


1993년 8월 -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조직을 이탈한 송봉우를 살해한 후 암매장


1994년 5월 - 두목 김기환의 고향 집인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지하실 아지트에 창살 감옥과 사체를 은닉하기 위한 사체 소각시설을 갖춤


1994년 6월 - 두목 김기환이 전라남도 영광군 고향 선배의 조카인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강간하여 징역 5년형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 두목을 잃은 지존파 일당은 강동은을 부두목으로 삼고 감방에서 김기환에게 모든 범죄 지시를 받은 뒤 본격적인 범행 활동을 개시


1994년 9월 8일 - 서울 강남구 역삼동 카페에서 종업원 생활을 하던 이선영(가명, 27세 여성)은 카페 밴드 마스터인 애인 이종원(36세 남성)의 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를 드라이브 하러 갔다가 지존파의 아지트로 납치. 지존파 일당은 이들을 샅샅이 심문하고, 차례로 이선영을 성폭행했다. 조사 후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9일 이종원을 살해하고, 10일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전라북도 장수군에 시체를 유기. 김현양은 이선영을 살려주려 했으나 문상록이 반대를 하자 둘은 멱살을 잡고 싸움


1994년 9월 13일 - 성남시에서 삼정기계(주) 사장 소 씨(42세)와 부인 박 씨 부부가 성묘 후 귀가하는 길에 지존파에게 납치. 소 씨 부부는 협박당해 돈 1억원을 빼앗김. 15일 이선영은 지존파에게 협박을 받아 소 씨에게 강제로 공기총을 쏘아 살해. 부인 박 씨는 칼과 도끼로 살해. 김현양은 박 씨의 시체에서 인육을 도려내어 먹음. 이후 소씨 부부의 사체를 소각


1994년 9월 15일 - 김현양은 다이너마이트를 만지다가 실수하여 폭발이 일어남. 머리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종합병원으로 가면서 이선영과 동행. 그리고 치료를 받는 동안 핸드폰과 치료비에 쓰기 위해 가져간 돈 50만원을 이선영에게 맡김. 이선영은 김현양이 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에서 뛰쳐나와 택시를 타고 달아남. 이선영의 상태를 보고 택시기사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고 이선영은 폭력배들에게 쫓기고 있다고 대답. 택시기사가 "영광에 있는 폭력배는 자신이 다 안다"고 말하자 이선영은 택시기사도 지존파와 한패가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혀 근처의 포도밭에 내려달라고 함. 이선영은 포도밭 주인에게 부탁하여 집주인 아주머니의 동생 차를 타고 대전으로 이동. 대전 톨게이트에서 택시로 바꿔타고 서울에 가서 서울서초경찰서에서 신고


1994년 9월 17일 - 식사 준비와 잡일을 담당할 여자가 필요하다고 느낀 강동은의 자신의 애인이었던 이경숙을 조직에 가담시킴. 1994년 9월 19일, 지존파 살인사건이 세상에 알려짐


1994년 9월 21일 서울서초경찰서는 전국을 무대로 납치살해 소각 암매장 등의 방법으로 증거를 인멸해가며 5명을 살해한 살인 범죄단인 지존파 일당 6명을 검거함



이들은 자신들이 야타족이나 오렌지족, 부유층들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고 했지만, 이들의 피해자를 보면 그냥 길을 가던 은행원 여성, 조직을 탈퇴한 인물, 카페 종업원과 그 애인인 밴드마스터, 중소기업 사장 부부이다. 중소기업 사장 부부만이 금전적으로 윤택했을 뿐 나머지 피해자들은 이들이 말했던 야타족, 오렌지족, 부유층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소기업 사장부부도 금수저가 아닌 어렵사리 스스로 힘으로 이제 막 빚까지 내어 공장을 인수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사건을 계기로 여성과 부유층들이 각성하라고 했던 유영철만큼이나 뻔뻔하고도 악질적인 지존파는 “돈 없다고 무시하는 것들. 압구정동 야타족들! 모조리 죽이지 못한 게 한이다!”, “2천만 원 이상(현재 약 4천만 원)의 자동차를 가진 놈들은 다 죽여야 해! 그래야 내 원한이 풀려!”란 말을 남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당시 경찰이 지존파로부터 압수한 무기는 다이너마이트 23개, 뇌관 14개, 망원렌즈가 달린 공기총 1정, 가스총 1정, 등산용 지팡이로 위장한 대검 7개, 대검 4개, 전자 충격기 1개, 전자봉 1개, 무전기 2대, 호출기 5개 등이었기에 이들을 놓쳤다면 더 끔찍한 범죄가 많이 발생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 - 한겨레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점은 지존파들에게 남치되었다 도망친 이선영씨가 서울에 도착해 자신이 일하던 카페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서초경찰서에 사건을 신고했으나, 경찰들은 믿지도 않았고 '관할이 아니다'란 말로 사건 접수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결국, 카페 주인은 평소 카페를 즐겨찾던 고병천(당시 서초경찰서 강력반장)에게 연락하였고, 그제야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경찰이 피해자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또한, 이들은 검거 한 달 만인 10월 31일, 강동은의 애인인 이경숙을 제외(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사형이 선고되었으며, 1년 뒤인 1995년 11월 2일 사형이 집행되는 이례적으로 빠른 처벌이 이루어졌다. 당시 이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워낙 심각했기에 정부 차원에서도 빠른 결단과 실행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이들의 행태 역시 비겁하게 무리를 지어 약자를 공격한 겁쟁이들일 뿐이다. 밴드마스터를 제외하면 자신들보다 약한 여자와 노인들을 범행대상으로 삼았으며 그것도 5명 이상이 뭉쳐서 범죄를 저질렀다. 지독히도 비겁하고 치졸한 범죄자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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