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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콘텐츠연구소 Aug 18. 2022

우리 역사 속의 범죄자들.8.김대두

8.대한민국 최초의 연쇄 살인마, 김대두

8.대한민국 최초의 연쇄 살인마, 김대두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연쇄살인마란 이름을 얻은 것은 누구일까?


바로 1975년 전국을 돌아다니며 17명을 살해했다고 전해지는 김대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대체 김대두는 어떤 짓을 벌였던 것일까?



김대두의 첫 번째 살인은 75년 8월 12일 새벽 전남 광산군 임곡면 고룡리 한 외딴집에서 시작됐다. 김대두는 이날 밤 12시쯤 안모(62)씨 집에 잠입한 뒤 새벽 3시 쯤 안씨 집 안방으로 숨어들었다. 잠에서 깬 안씨가 도망가자 이를 살해하고 안씨의 부인 박모(58)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 첫 범행 뒤 목포로 간 김대두는 순천행 기차를 탄다. 여기서 우연히 수원교도소 한 감방에 있었던 교도소 동기 김회운(당시 29세)를 만났다. 둘은 무안군 몽탄역에서 내린 뒤 철길을 따라 가며 범행장소를 물색했다.

9월 7일 새벽 2시께 몽탄면 당호리 2구 박모(55)씨의 집에 침입, 돈을 요구했다. 거절당하자 박씨와 부인 서모(56)씨, 손자(6)를 살해한다. 여기서 강취한 돈은 단돈 250원. 둘은 “이왕 죄를 지을 바에는 돈이 많은 서울에서 하자”며 서울행 기차를 탔다. 그러나 서울역에 도착한 뒤 둘은 일단 헤어진다. 이후 범행은 김대두 단독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9월 11일에 서울시 면목4동 용마산 중턱에서 최모(60)씨 살해했다.


9월 24일에는 경기도 수원시 송탄읍 양모(40)씨 집에 침입, 양씨의 어머니 최모(70) 할머니, 다섯살과 여덟살 난 손자 둘, 손녀(11) 등 4명 살해 고추 15근 탈취한다.


9월 27일 경기도 양주군 구리읍 변모(50)씨 집 습격, 변씨와 부인 손모(40), 아들(3) 살해, 장녀(15) 등 2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2만1천원을 탈취한다.


9월 30일 경기도 시흥군 남면 양모씨의 부인 윤모(28), 생후 3개월 여자어린이 살해, 1천500원 탈취했다.


10월 2일 경기도 수원시 우만동 칫골산 근처 독립가옥 침입, 노모(38)씨와 부인 김모(37)씨 를 살해한다.


10월 3일 경기도 성남시 낙생동 남서울 컨트리클럽 근처 야산에서 캐디 이모(21)양 강간, 1천450원 탈취했다.


10월 7일 밤 서울 우이동 수원교도소 감방 동기 이모씨를 살해한다.



김대두가 전남과 서울·경기도 일대를 휩쓸고 다니던 약 두달동안 전국은 살인 공포에 휩싸였다. 김대두는 주로 외딴집이나 노약자, 어린이들을 범행의 목표로 했다. 17명의 목숨을 앗아 뺏았은 돈은 모두 2만6천800원에 불과했다. 결국 김대두는 55일 후인 10월 8일 서울에서 검거될 때까지 전남과 서울·경기를 오가며 저지른 9차례(17명 살해, 3명 중상, 3명 강간)에 걸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김대두의 모습


김대두는 82년 4월 앞서 소개했던 경남 의령경찰서 궁유지서 우범곤 순경이 인근 5개마을 주민 56명을 하루사이에 살해한 소위 `우순경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가장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살인자였다.


하지만 이 김대두의 연쇄살인은 다른 연쇄살인마들과 다른 몇가지 의심스러운 부분을 보인다. 우선 대부분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들이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죽이는 등 잔인한 성격이나 공격적인 성격을 보였던 반면 김대두는 딱히 그런 모습은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키 160cm에 몸무게 50kg이 되지 않는 무척 왜소한 체격이었으며, 무엇보다 어린시절부터 유약하고 질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물론 폭력 전과를 얻은 적이 있긴 했지만 허약체질로 군대 면제까지 받았을 만큼 신체적으로 약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범행 대상에서는 노약자는 물론 젊은 남자(30~40대 부부와 교도소 동기)도 있었다. 물론 무기를 든 상대라면 아무리 남자라도 당해내기 쉽지 않았겠지만 다른 연쇄살인마와는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김대두가 자신을 전도하기 위해 노력했던 한 집사님께 보낸 편지들의 경우 필체가 모두 달랐으며 사자성어나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바라는 내용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여기서 문제는 대두는 학습능력 부진으로 중학교조차 진학하지 못한 인물이란 점이다.


                                              김대두의 편지 - 출처 <한겨레티브이>


무엇보다 의심스러운 것은 1975년 10월 8일 전농동 세탁소에 피 묻은 청바지를 맡겼다가 다음 날(9일) 검거되었는데, 검거된 바로 그날 17건의 모든 범죄를 자백하고, 보도자료까지 만들어져 쏟아졌다는 것이다. 또한, 수원에서 일어난 사건의 목격자 진술로 몽타주를 만들었던 것이 김대두와 무척 닮았었는데 사실 김대두 검거 전에 몽타주가 배포된 적은 없었다.


게다가 현장 검증 사진이 신문에 실리며 이슈가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김대두가 장도리를 들고 있는 사진이었고, 거기엔 '살인마는 껌을 씹으며 태연히 살인을 재연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세상 어떤 피의자가 껌이 어디에서 나서 현장검증을 하며 껌을 씹을 수 있을까? 붙어있는 수사관은 그걸 모르고 기사에 내보낼 수 있었을까?



물론 이미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사건이며, 이제 와서 이런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참 쓸데 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신체제 하에서 이루어졌던 이 엉성한 수사 과정을 우리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김대두가 17명을 죽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1명도 죽인 적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런 의심 자체가 현장에서 범죄자와 맞서 시민들의 안녕을 지키는 경찰들에게 모욕적으로 비추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부독재 시절 일부 경찰들이 보여주었던 끼워맞추기식 수사와 범인 만들기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그리 억지스럽지만은 않다.


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표창원 교수의 <한국의 연쇄살인>, 김봉환 감독의 영화 <보통사람>을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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