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연쇄살인마, 김선자
우리가 연쇄살인범 혹은 사이코패스 살인범들에 대해 경계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은 범행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혀 낯선 사람인 경우도 있지만 자신과 가까운 주변의 가족이나 친척, 지인을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계곡에서 남편을 익사시킨 이은혜의 경우나 전남편을 살해하고 시체조차 찾지 못하게 말그대로 분해한 고유정처럼 말이다.
오늘 이야기할 연쇄살인범이 여성이다 보니 여성 범죄자들을 예로 들었지만 이런 범죄자들을 사실 성별로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다.
김선자 - MBC 뉴스
1939년 태어나 평범하게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던 김선자는 아들도 3명이나 낳아 키우던 정말 평범한 주부였다. 하지만 그녀의 사이코패스 본능이 깨어나기 시작했는데, 카바레를 출입하고, 도박을 시작하면서 점차 빚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주변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돈을 빌리던 김선자는 채권자들을 살해하여 자신의 빚을 없애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1986년 10월 31일, 신당동의 한 목욕탕 탈의실에서 40대 여성 김씨가 심한 경련과 함께 거품을 물고 쓰러졌고, 응급실로 옮겼으나 사망한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 있던 인물 모두를 조사했지만 혐의점을 찾지 못했고, 다만 가족들에게 이웃집 여자인 김선자와 아침에 목욕을 나갔다는 것과 차고 있던 반지와 목걸이가 사라진 듯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난 1987년 4월 4일, 한 시내버스에서 50대 여성 전씨가 마찬가지로 전신에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고,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사망한다. 경찰은 조사 결과 목욕탕 사건에서 조사를 받은 적 있는 김선자와 같은 계에 가입한 적이 있는 계원이란 사실을 밝혀낸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증거가 될 수 없었다.
1988년 2월 10일에는 김선자는 자신에 120만원을 빌려주었던 40대 여성 김씨에게 불광동에서 자신이 받을 돈이 있으니 함께 가자고 한다. 돈을 받기 위해 함께 이동했던 김씨는 채무자는 나타나지 않고, 김선자가 준 율무차를 마셨다가 계속 구토를 하게 되자 함께 택시에 타는데, 김선자가 의심스러웠던 그녀는 음료수를 사기 위해 김선자가 잠깐 택시에서 내린 사이에 차를 출발시켜 목숨을 건진다.
1988년 3월 27, 김선자는 범행 대상을 가족으로 변경한다. 73세인 아버지 김씨와 친척의 환갑잔치에서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 아버지가 쓰러져 사망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에도 김선자가 건강음료를 건넸다는 점은 의심되지만 화장된 유골에서 독살의 증거를 찾지 못해 무죄 판결을 받는다.
다시 한 달 뒤인 4월 29일, 김선자의 동생 김씨도 아버지와 같이 돌연사를 당하는데 독극물 검사를 거치지 않아 심장마비로 처리된다. 하지만 동생 역시 김선자에게 1천만 원의 돈을 빌려준 상태였으며, 버스에서 쓰러진 동생을 청년들과 함께 병원에 데려간 김선자는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병원 측의 말에 모르는 사람이라며 여동생을 무시하고 여동생의 핸드백을 들고 도주하였고, 여동생의 집에 가서 금품을 훔친다.
1988년 8월 8일, 역시 한 버스에서 40대 여성 손씨가 갑작스런 호흡곤란과 경련, 구토 드응로 쓰러졌고, 병원으로 이송 도중 사망한다. 손씨 역시 집 계약금 명목으로 김선자에게 484만 원을 빌려준 상태였다.
88 올림픽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연쇄독살 사건이 일어나자 경찰은 물론 정부에서도 난리가 났다. 경찰들은 버스에서 사망한 손씨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12촌 올케뻘인 김선자였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그리고 바로 김선자를 9월 2일 체포하였고, 매장되었던 4명의 부검을 실시하여 이중 3구에서 시안화칼륨(청산가리) 성분을 검출하였다. 나머지 한 구는 너무 오래되어 부패한 탓에 독극물 성분을 찾지는 못했다.
김선자 체포 당시 - MBC 뉴스
경찰은 여경들을 대동하여 몸을 수색하였으며, 특히 집을 수색하자 피해자들의 소유물이었던 다이아몬드 반지, 수표, 통장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화장실에서 발견되었는데, 압수수색에 나갔던 경찰 한 명이 볼일을 보다가가 일본식 가옥의 나무 기둥에 작은 구멍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 안을 살펴보니 돌돌 만 신문 뭉치가 나왔고, 신문 뭉치 안에는 밤알 크기의 청산가리 덩어리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알고보니 김선자가 화공약품 회사에 다니던 친정 조카에게 꿩을 잡겠다며 구한 것이었다.
결국 1998년 49세의 나이로 검거된 김선자는 우리나라에 서양 법과학이 도입된 이후 검거된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으로 기록되었고, 9년 뒤인 1997년 사형을 당했다.
자신의 쾌락이나 성적욕구, 혹은 사회에 대한 삐뚤어진 분노도 무섭이지만 단순히 금전적인 이득을 위해 지인은 물론 아버지와 동생, 친인척까지 독극물로 살해하는 이런 형태 역시 끔찍한 일이다.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며 주변인들을 경계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이런 범죄는 결국 사회 구성원들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