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절을 앞두고 떠오른 유관순 열사, 그리고 독립운동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길거리 곳곳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얼마 전, “독립운동가, 그들이 오늘을 살아간다면?” 이라는 제목의 짧은 영상을 보았다.
그 영상의 첫 장면에, ai로 복원된 유관순 열사의 지금 시대 모습이 등장했다.
감탄과 함께 나의 중학교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중학교 시절, 나는 교내 가장행렬 퍼레이드에서 ‘유관순 열사’를 맡았던 적이 있다. 하얀 저고리, 검은 치마, 그리고 손에 든 태극기. 그때는 그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면 되는 줄 알았다. 그 시절 내게, 유관순이라는 이름은 ‘독립운동’이라는 단어 속에 갇힌 대표적인 상징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최근 AI 기술로 복원된 영상 중 유관순 열사의 지금 시대 모습을 보니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18살, 자그마한 체구에 가방을 메고 한 손으로 머리를 넘기며 수줍게 웃고 있는 여고생의 모습은 평범하고도 친근했다. 그 모습이 내 마음 어딘가를 울렸다. 아마도 그분에 대한 연민이나 경외심을 넘어서서, 그녀를 내 형제, 내 딸, 또는 내 안의 어린 시절로 받아들인 듯한 어떤 연결의 느낌이 생겨났던 것 같다.
‘열사’라고 부르던 분이, 역사 속에서 나와 내게로 가까이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분과 내가 동시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도 잠시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댓글 창에 남긴 한 마디, 그 짧은 문장이 가슴을 깊이 울렸다.
“부디 그리들(영상 속 모습처럼) 살고 계시길...”
독립운동하면 떠오르는 드라마로 <미스터 션샤인>을 꼽을 수 있다. 조선 말기 역사를 배경으로 신분과 국경을 넘는 사랑 이야기로 시작되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이건 그냥 드라마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가슴을 꿰뚫고 들어왔었다. 작가는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기억해야 할, 무명의 의병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내가 가장 깊게 떨렸던 장면들도 이름 없는 인물들이 제 몫의 저항을 다하던 순간들이었다. 일본의 앞잡이로 보였던 무사, 돈을 밝히는 전당포 주인, 노비의 신분을 지녔던 이들까지, 결국은 위험을 무릅쓰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조용히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자리에 선 채로 조국을 사랑했고 조국을 위했다. 누군가가 시키지 않아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 선택은 종종 생의 끝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고 눈물이 났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드라마는 그것보다 지금 시대 사람들의 ‘삶의 자세’를 물었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지키며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을 말이다.
독립운동은 과거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 위에는, 수많은 이름 없는 선조들의 피와 헌신이 켜켜이 쌓여있음을 종종 깨닫게 된다. 그들이 지켜낸 길 위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광복절'은 어찌보면, 그 혼란했던 시대를 민족을 위해 살아낸, 수많은 이들에 대한 조용한 감사의 날일지 모르겠다.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고 말할 때, 그들은 단순한 역사기록이 아닌 ‘ai로 복원된 모습처럼' 우리 곁으로 성큼 걸어나와 지금 시대에도 함께할 것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내게 말해주었다. 오늘 내가 하는 말, 내가 쓰는 글, 내가 나누는 눈빛과 행동, 그 모든 것이 작은 독립운동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이 시대의 우리 또한,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진실하고 아름답게 피어날 일이다.
이번 광복절, 선조들이 아마도 하늘에서 이러지 않으실까?
사랑하는 나의 후손들아,
너희가 걷는 이 길 위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희생과 사랑의 발자국이 스며 있다.
그 발자국이 먼지처럼 사라지지 않기를,
너희 마음에 따뜻한 용기로 남기를 나는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