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아빠가 연주하는 새벽의 앙상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중앙에 앉아 심벌을 울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내 세상은 128분음표의 화려한 속주와 좌중을 압도하는 스네어의 타격감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마흔다섯, 다시 잡은 내 인생의 무대는 고작 3평 남짓한 아기방, 그리고 희미하게 빛나는 노란 수유등 아래다.
딸아이 지유가 태어난 지 두 달 남짓. 이제 내 손에 들린 것은 히커리 나무 스틱이 아니라 따뜻한 온기가 담긴 젖병이다. 아이의 배꼽시계는 세상 그 어떤 메트로놈보다 정확하고 냉정하다. 새벽 3시, 어김없이 들려오는 지유의 칭얼거림은 나를 깊은 잠에서 깨우는 가장 강력한 '림샷(Rimshot)'이다. 비몽사몽간에 주방으로 달려가 분유를 타는 나의 손놀림은 흡사 공연 직전 스네어 드럼의 텐션을 조절하던 그때처럼 예민하고 절박하다.
드럼 연주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세게 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고 일정하게 치는 '다이내믹(Dynamics)' 조절이다. 육아도 그랬다. 80ml의 분유를 정확히 타내는 것, 아이가 공기를 마시지 않게 젖병의 각도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아이가 잠들 때까지 일정한 속도로 등을 토닥이는 것. 이 모든 과정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섬세한 연주와 같았다.
아이가 분유를 삼키는 ‘꿀꺽’ 소리가 일정한 박자를 타기 시작하면 나는 비로소 안도한다. 그 소리는 내게 그 어떤 명반의 리듬보다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한때 나는 세상의 모든 박자를 지배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아이의 작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그 80ml의 리듬을 지켜주는 것이, 내가 평생 연주해온 그 어떤 솔로보다 가치 있다는 것을. 40대의 아빠가 되어서야 나는 힘을 빼고 소리를 듣는 법을 진정으로 배우고 있다.
드럼 용어 중에 '고스트 노트'라는 것이 있다. 실제로 크게 들리지는 않지만, 리듬의 사이사이를 채워주어 전체적인 그루브를 풍성하게 만드는 아주 작은 소리다. 요즘 나의 일상은 온통 고스트 노트로 가득하다.
아이가 깰까 봐 발소리를 죽여 걷는 것, 잠든 아이의 이불을 고쳐 덮어주는 것, 아이의 젖병을 삶으며 내일의 시간을 준비하는 것.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무대 위에서 소리 나지도 않는 동작들이지만, 이 작은 조각들이 모여 지유라는 한 아이의 삶을 지탱하는 거대한 '그루브'가 된다. 젊은 시절의 나는 관객의 박수를 받는 화려한 '크래시 심벌'이 되고 싶어 했지만, 이제는 들리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박자를 채워주는 고스트 노트 같은 아빠여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연주는 결코 쉽지 않다. 20대의 체력은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되었고, 무릎과 손목은 아이를 안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때로는 아이의 이유 없는 울음에 내 안의 메트로놈이 완전히 망가져 버린 것 같은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악보 없는 즉흥 연주처럼 나를 괴롭힐 때도 있다.
하지만 지유가 내 품에서 쌕쌕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들 때, 그 고요한 숨소리가 내는 완벽한 정박자를 마주하면 모든 피로가 씻겨 내려간다. 아빠라는 이름의 연주자는 관객의 환호가 아니라, 아이의 평온한 얼굴에서 최고의 보상을 받는다. 나는 이제 마흔다섯의 나이에 비로소 인생의 가장 어려운 곡을 연습하고 있는 학생이다. 이 곡의 제목은 '가족'이며, 지유는 내게 그 곡을 완성해갈 영감을 주는 유일한 뮤즈다.
기초 연습인 '루디먼트'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는 매일 아침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인다. 이 서툰 반복이 쌓여 언젠가 지유가 걷고, 뛰고, 자신의 꿈을 노래할 때 아빠의 리듬이 든든한 배경음악이 되어주길 바란다.
지유야, 아빠의 손등엔 굳은살 대신 너를 돌본 흔적들이 쌓여가고 있단다. 비록 아빠의 전성기는 지났을지 몰라도, 너와 함께 만드는 이 '새벽의 앙상블'은 아빠가 평생 연주한 곡 중 가장 아름다운 명곡이 될 거야.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그루브로 너를 안아줄게. 아빠의 리듬은 이제 막, 가장 따뜻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