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친 스틱이 더 높이 오르는 법
드럼 스틱을 내려놓고 살았던 10년 동안, 내 손바닥의 굳은살은 위치를 옮겨갔다. 스틱을 쥐던 손가락 마디의 단단한 흔적들은 사라지고, 대신 무거운 짐을 나르고 운전대를 꽉 쥐느라 생긴 손바닥 아래쪽의 투박한 살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것은 꿈을 포기한 패배자의 낙인이자, 동시에 치열하게 생존해온 한 남자의 훈장이었다.
마흔다섯, 딸 지유가 태어나고 나는 다시 스틱을 잡았다. 오랜만에 잡은 히커리 스틱은 낯설 만큼 가벼웠지만, 내 마음은 그보다 수만 배 무거웠다. 예전처럼 현란한 속주는 되지 않았다. 손목의 스냅은 삐걱거렸고, 뇌에서 보낸 신호는 손끝에 닿기도 전에 현실의 피로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드럼의 가장 기본 기술인 '리바운드(Rebound)'의 원리를 이제는 머리가 아닌 삶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바운드는 스틱이 타면을 때리고 튀어 오르는 반동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스틱을 꽉 쥐고 놓지 않으려 애쓰면 스틱은 튀어 오르지 못한다. 오히려 손목에 무리만 가고 소리는 둔탁해진다. 스틱이 자유롭게 비상하게 하려면, 타격하는 그 찰나에 역설적으로 손의 힘을 빼야 한다.
나의 30대는 스틱을 너무 꽉 쥐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음악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나를 바닥에 붙들어 맸다. 하지만 지유를 만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손의 힘을 빼는 법을 배웠다. 꿈을 잠시 내려놓았던 그 10년이, 사실은 더 높이 튀어 오르기 위해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반동의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내 인생의 리바운드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나는 지유가 자라면서 아빠의 화려한 과거 공연 영상보다, 마흔 중반의 나이에 땀 흘리며 연습 패드를 두드리는 지금의 뒷모습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박자를 놓칠 때가 있다. 누군가는 집안 사정으로, 누군가는 건강으로, 또 누군가는 예기치 못한 실패로 연주를 멈춘다.
그럴 때 지유가 아빠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우리 아빠는 마흔 중반에도 다시 시작했어. 멈췄던 박자를 다시 이어가는 건 창피한 게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어떤 엇박자 속에서도 나만의 그루브를 찾아내는 '회복탄력성'이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앙상블에서 잠시 쉼표를 찍었다고 해서 곡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몸소 증명해 보일 것이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연재하려는 이유는 나의 이 '리바운드'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드럼의 베이스 드럼은 음악의 가장 밑바닥에서 심장 박동처럼 묵묵히 전체를 받쳐준다. 나의 글 또한 화려한 수사여구보다는, 삶의 무게를 견디는 이들에게 건네는 묵직한 베이스 드럼 같은 위로가 되길 원한다.
음악인이기를 포기했던 남자가 아빠가 되어 다시 예술을 꿈꾸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꿈을 가슴 한구석에 묻어둔 채 오늘을 견디는 모든 '지유 아빠'들에게, 우리의 연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싶다. 스틱을 쥔 손에 다시 힘을 준다. 이번에는 나만의 영광이 아니라, 내 아이의 삶을 아름답게 장식할 배경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다.
지유야, 네가 처음으로 걸음마를 떼는 날, 아빠는 네 발걸음에 맞춰 세상에서 가장 경쾌한 행진곡 비트를 쳐줄게. 네가 첫 학교에 가는 날에는 네 긴장을 풀어줄 부드러운 스윙 리듬을 연주해줄게.
아빠는 이제 더 이상 꿈을 접은 사람이 아니다. 너라는 가장 소중한 악기와 함께 평생토록 끝나지 않을 잼(Jam)을 이어갈 행복한 드러머란다. 마흔다섯, 나의 리바운드는 지금 이 순간, 첫 번째 타격과 함께 시작되었다. 맑고 높은 그 울림이 너의 미래까지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