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아도 존재했던 아빠의 꿈들
드럼 악보를 보다 보면 작은 괄호 안에 그려진 음표들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고스트 노트’다. 이름 그대로 유령 같은 소리다. 스피커를 찢고 나오는 강렬한 스네어 소리나 심장을 타격하는 킥 소리에 가려져, 얼핏 들으면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고 미세한 터치들이 빠진 드럼 연주는 생명력을 잃는다. 리듬의 사이사이를 메워주는 이 유령 같은 소리들이 있어야만 비로소 연주는 풍성한 ‘그루브’를 갖게 된다.
내 인생의 지난 10년은 거대한 고스트 노트였다. 음악을 관두고 마트 물류 창고에서 박스를 나를 때도, 낯선 길 위에서 운전대를 잡고 밤을 지새울 때도, 내 안의 드럼은 멈춘 적이 없었다. 겉으로는 무거운 짐을 나르는 중년 사내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겠지만, 내 마음의 바닥에서는 여전히 정교한 고스트 노트들이 연주되고 있었다. 그것은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한 꿈이었고, 현실에 치여 잠시 숨죽인 예술가의 자존심이었다.
남들은 내게 꿈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드럼 스틱 대신 기저귀 가방을 든 나를 보며, 누군가는 안타까워하고 누군가는 늦었다고 속삭였다. 하지만 나는 안다. 소리 내어 울리지 않았을 뿐, 나는 단 한 순간도 내 인생의 박자를 놓친 적이 없다는 것을.
가난과 책임감 때문에 스틱을 내려놓아야 했던 그 시간들조차, 사실은 더 깊은 소리를 내기 위한 고스트 노트였다. 화려한 솔로 연주만 알던 20대의 나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삶의 비애가 담긴 묵직한 리듬’을 나는 창고에서, 길 위에서, 그리고 고단한 일상 속에서 온몸으로 익혔다. 들리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박자를 채워온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딸 지유에게 더 깊고 단단한 사랑의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 것이다.
새벽 2시, 곤히 잠든 지유의 얼굴을 바라본다. 아이의 아주 작은 코골이와 새근거리는 숨소리. 이 평화로운 정적을 지키기 위해 나는 집 안에서 고스트 노트가 된다. 아이가 깰까 봐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레 젖병을 씻으며, 아주 작은 소음조차 나지 않게 문을 닫는다.
젊은 시절의 나는 세상이 다 알도록 크게 울리는 ‘크래시 심벌’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랑은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소리 나지 않는 곳에서 상대의 박자를 채워주는 일이라는 것을. 지유의 삶이 화려한 멜로디로 빛날 수 있도록, 아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쉼 없이 고스트 노트를 연주하는 배경음악이 되어도 좋다. 아니,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주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가슴 속에 묻어둔 고스트 노안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현실이라는 거대한 소음에 가려져 스스로조차 잊고 살았던 꿈들. 하지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당신이 포기했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도, 당신의 인생은 단 한 번도 연주를 멈춘 적이 없다. 들리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채워온 당신의 성실함과 인내가 있었기에, 당신의 오늘이라는 리듬이 무너지지 않고 이어져 온 것이다.
나의 고스트 노트는 이제 지유의 웃음소리와 만나 비로소 선명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40대 중반에 다시 잡은 스틱은 예전보다 가볍지만, 그 울림은 훨씬 깊다. 나는 이제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다. 들리지 않아도 존재했던 나의 꿈들이, 이제 내 딸의 미래를 받쳐주는 가장 든든한 리듬이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