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반려 물고기 기르기
아이들은 마트에 갈 때마다 구석에 자리 잡은 반려동물을 보러 갔다. 그곳에는 앵무새, 햄스터, 토끼, 장수하늘소, 사슴벌레, 거북이, 열대어 등 여러 동물이 있었다. 아이들은 구경하며 신기하고 좋아했지만 새장, 어항, 케이지 속에 갇힌 동물들을 불쌍하다고도 했다. 특히나 플라스틱 컵 안의 물고기는 자기 몸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휘어져 보였다.
아이들은 부쩍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게 해달라고 졸랐다. 나는 반려동물 키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다들 ‘애 하나 키우는 것’과 같아서 산책시키고 먹이고 씻기고 돌봐줘야 한다고 했다. 동물 병원 비용도 만만치 않아 한번 병원에 가면 몇만 원은 기본, 골절이라도 당하면 몇백만 원까지 생각해야 한단다. 여행을 갈 때도 신경 쓰이고 무엇보다 반려동물이 병들고 나이 들어 하늘나라로 갈 때의 마음 아픔도 상당하다고 했다.
예쁠 때는 키우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려지는 유기견을 많이 보았다. 반려동물을 키우는데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아이들에게 재차 말했다. 나 또한 반려견과 반려묘를 아기 돌보듯 씻기고 챙겨줄 자신이 없었다. 깔끔한 성격은 아니지만 털갈이 할 때 빠지는 털들이 가장 마음에 쓰였다. 옷에 달라붙고 공기 중에 날리고 무엇보다 바닥에 여기저기 있는 모습은 말이다.
아이들에게 무조건 동물을 못 키우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켜질 수 없는 조건을 내걸었다. ‘100일 동안 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싸우지 않는다면’ 무조건 사주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경고 3번을 넘기면 아웃이 되는 형태였다. 처음 아이들은 싸우려다가도 “그러면 반려동물 없..” 말도 떨어지기 전에 싸움을 멈췄다. 정말 신기했다. 그만큼 아이들은 간절했다.
‘이제 슬슬 싸울 때가 됐는데.’ 일주일을 넘어가자 오히려 내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이러다가 100일을 채우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아이들이 간절히 싸우길 바라기는 또 처음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이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싸웠고 나는 “이제 반려동물 없어!”라고 외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아이들이 오지 않자, 동물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날따라 아이들은 물고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베타라는 물고기에 관심이 갔다. 서열 싸움이 심한 물고기라 합사(함께 사는 것)가 불가능한 열대어였다. 심지어 암컷과 수컷이 같이 있을 수도 없다고 했다. 이때까지 물고기들은 떼지어 함께 생활한다고 생각했다. ‘암수가 같이 있지 않으면 종족 번식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내가 더 궁금해져서 질문을 쏟아냈고 점원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짝짓기를 하려면 각각의 암컷과 수컷 어항을 마주보게 일주일 정도 나두면서 적응시켜줘야 해요. 그 다음 잠깐 짝짓기하도록 합사를 시켜줘요. 짝짓기 후에는 다시 암수를 분리해 줘요.”
“짝짓기를 한지 안한지 어떻게 아나요?”
나도 모르게 19금 질문까지 서슴지 않았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은 만들어 놓은 거품집에 알을 물어다가 넣어요. 그런 행동을 보고 분리해 주면 돼요.”
“알을 낳고 수컷을 다른 쪽으로 분리해 주는 건가요?”
“아니요. 베타는 수컷들이 알을 돌보고 키워요.”
“아, 그래요? 수컷이 독박 육아하네요. 그럼, 얘가 암컷이에요? 수컷이에요?”
“이렇게 화려한 것이 수컷이에요. 지금 매장에 암컷이 없는데 실제로 보면 되게 밋밋해요. 그래서 가격도 수컷이 훨씬 비싸요.”
“공기 방울 뽀글뽀글 나오는 것도 사줘야 하나요?”
“아니요. 베타는 자가 호흡을 해서 기포기는 필요하지 않아요.”
이제껏 그렇게 단호했던 반려동물에 대한 신념이 순식간에 흔들렸다. 화려한 지느러미를 가진 베타의 움직임에 쏙 빠져들었다. 또 합사할 수 없어서 좁은 플라스틱 컵마다 베타가 한 마리씩 담겨있었다. 왠지 몸도 제대로 못 펴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내심 아이들이 사달라고 졸라주길 원했다. 당장 이 베타를 데려가 좁은 컵 속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내 눈빛을 읽었는지 남편은 “빨리 집에 가자. 그만 물어보고.” 찬물을 끼얹었지만, 아이들과 나에게 들릴 리 없다. 가격은 얼마인지, 필요한 물품은 무엇인지, 무엇보다 어린이날 선물을 미리 해주는 것이라며 입을 맞추었다.
처음엔 만 사천 원인 베타 물고기 값만 생각했다. ‘이 정도는 뭐 괜찮지.’ 했는데. 아이들의 물고기 취향이 달라 베타도 2마리를 골라야 했다. 결국 어항도 2개, 인조 돌도 2개를 각자 사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베타 먹이, 염소 중화제, 박테리아까지 어느새 십만 원 가까운 돈을 결제했다.
베타의 화려한 지느러미를 보고 있노라면 부드러운 움직임과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본다. 이렇게 암컷을 홀리며 종족 번식에 성공할 수 있구나 싶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강아지와 고양이 사달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나는 무조건 반대했던 미안한 마음을 덜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목욕시키지 않아도 되고, 털도 빠지지 않으며, 배변 훈련에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다만 수질 관리를 잘 안 해주면 베타의 지느러미가 갈라지고 안 예뻐질 수 있다고 했다. 3~4일에 한 번씩 물을 받아 염소 중화제와 박테리아를 넣고 반나절 지나면 어항 물갈이를 해야 했다. 이 정도는 충분히 해 줄만 했다.
큰 아이가 고른 베타는 파란색이라서 블루베리의 뒷글자를 따서 ‘베리’가 되었고, 작은 아이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좋다며 ‘희망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거실 테이블에 베리와 희망이를 두었고 서로 이름을 부르며 먹이를 주었다. 밥을 주면 베리는 재빨리 헤엄쳐 와서 잘 먹었는데 희망이는 우리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아는지, 한참이나 지나 먹거나 잘 먹지 않았다. 확실히 베리는 먹는 족족 똥도 잘 쌌다. 똥 다발의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희망이는 먹는 양이 적어서인지 똥의 양에도 베리에게 한참 밀렸다. 역시 사람이나 물고기나 뭐든 잘 먹어야 잘 싼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아이가 줄다리기 축제 때, 금붕어 잡기 체험을 했다. 끝난 후 금붕어 한 마리를 선택해서 가져갈 수 있었다. 동글동글 알 같은 산소 알갱이와 금붕어 먹이는 따로 판매했다. 먹이는 집에 있는 베타 밥을 주면 될 것 같았다. 또한 아이들이 금붕어 잡을 때 산소기가 없었는데 살아있는 걸 보면 산소 알갱이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구매하지 않았다. 그렇게 ‘달이’라는 금붕어까지 가족이 또 늘었다. 달이는 베타 밥도 잘 먹고 물 위까지 올라가 숨도 잘 쉬며 잘 지냈다.
“아이들이 그물망으로 잡아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을 텐데. 생각보다 잘 사네.”
“그러게, 말이야. 그 산소 알갱이를 안 사서 하루 이틀 정도 지나면 죽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지내네.”
일주일을 채워갈 때쯤, 달이는 하늘나라에 갔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금붕어는 기포기나 여과기처럼 산소를 공급해 주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되어 있었다. 물 위로 올라와서 호흡할 경우 산소가 부족하다는 신호고 물을 갈아주거나 기포기를 켜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돈 4천을 아끼려고 산소 알갱이를 사지 않아 달이를 죽게 만든 것 같았다. 살짝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오기 전에 남편은 아파트 화단에 달이를 묻었다. 그날 아이들과 그곳에 가서 달이가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주길 기도해 줬다. 달이와의 이별을 겪고 나서 물고기마다 다른 특징(자가 호흡이 가능한 물고기나 기포기가 꼭 필요한 물고기)을 잘 숙지하고 키워야 함을 반성하게 되었다.
베타를 키운 지 2달이 넘어 가는 시기, 희망이는 배 부분이 살짝 회색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으로 떠있는 모습을 조금씩 보이더니 달이에 이어 하늘나라로 갔다. 2달이라는 시간 동안 정이 든 건지 달이 때보다 훨씬 더 마음이 이상했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남편은 희망이도 화단에 묻어주었다. ‘작은 아이가 달이에 이어서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클까?’ 걱정되었다. 다행히 작은 아이는 “희망이가 왜? 진짜야?”를 반복하며 죽음을 조금씩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종종 달이와 희망이 이야기를 꺼내며 묻힌 곳을 가보곤 했다.
이제 우리 집에는 달이와 희망이의 어항이 치워지고 베리만이 거실 테이블을 지킨다. 큰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물고기 밥을 주고 저녁 동안 잘 지냈는지 베리를 살핀다. 나는 3~4일에 하던 물갈이를 6~7일에 한 번씩 갈아주며 살짝 게으름을 피운다. 그렇지만 반려 물고기를 키우면서 집을 비울 때면 걱정이 앞선다. 3일 정도는 괜찮다고 해도 ‘얼마나 배고플까?’ 감정이입이 된다.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물고기를 데리고 다닐 수 없으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반려동물 키우는 애로 상황을 경험한다.
베타의 수명은 평균적으로 2~3년이라고 한다. 우리 집에 오기 전, 얼마의 시간을 보냈는지는 모르지만 벌써 5개월 넘게 우리와 살았다. 그만큼 이별이 조금씩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달이나 희망이가 하늘나라에 간 것처럼 베리도 시간이 지나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2번의 죽음을 받아들였지만, 함께한 절대적인 시간만큼 그 파장 또한 대단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러한 과정도 반려동물 키우는 과정임을 배워 나가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아이들로 자라길 바란다.
사진: 베리와 희망이는 나의 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