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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 한스푼 Sep 17. 2024

야구와 다이어트의 공통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플러스사이즈의 다이어트

 방심한 틈을 놓치지 않고 살은 쭉쭉 불어났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었다. 만삭일 때보다 더 불어버린 몸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뱃살 속에 ‘혹시 셋째가 들어 있어서 이렇게 볼록 한 건가?’ 의심해보지만 안타깝게도 그냥 '내 살'이었다. 쉽게 쪘던 만큼 쉽게 빠졌으면 좋겠지만, 쉽게 쪘으면서 헤어질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저울이 가리키는 숫자는 옷을 입을 때마다 실감했다. 바지마다 똥꼬가 끼고 한 뼘이나 벌어진 허리는 잠기지 않는다. 티셔츠 사이즈는 M에서 L를 건너뛴 XL가 되었다. 누우면 티셔츠 위로 뱃살이 삐쭉 나오며 안녕하고 인사한다. 바지는 고무줄이 아니면 입을 수 없다. 원피스의 지퍼도 절반쯤 올라가다 끽하고 멈춰 선다. '1년 전까지 입었던 옷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못입는 옷들이 늘어났다. 옷 입는 기준 또한 ‘이 몸이 들어가서 편히 숨 쉴 수 있는가? 아닌가?’로 바뀌었다.

      

 남편은 “너무 살찐거 아니야?”라고 압박했고 옷을 파는 점원도 “손님, 사이즈는 저희 매장에 안 나와요.”라며 내 귀 속에 콕 박혔다. 쇼핑을 하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프리사이즈라고 하면 일반 체형에 맞는데 그 사이즈가 더 이상 맞지 않았다. 옷 입어보다가 ‘입구 컷’ 당하기도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사이즈가 맞으면 얼른 고른다. 땀을 삐질 흘리며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남편은 “살을 빼. 그렇게 옷 고를 때마다 자신 없어 하지 말고.”라며 염장을 지른다. 사람들만 없었다면 진짜 등짝 스매싱을 백번 날렸을 것이다.     


 나는 몇 시간씩 맛집이라며 기다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에게는 좋아하는 사람과 편하고 즐겁게 먹는 곳이 맛집이다. '시장이 반찬이다.'라는 말처럼 배고프면 뭐든 맛있다. 이 놈의 입맛은 365일 중 364일쯤 좋아서 탈이다. 아침에 삼겹살을 구워 먹을 정도로 언제나 '밥맛은 맑음'이다. 사람들은 속상했을 때 식음을 전폐한다고 하는데, 나는 밥을 맛있게 먹으면 해결된다. 밥 한끼에 위로와 행복감을 동시에 느끼며 스르륵 마음이 풀린다. 밥은 내 감정을 끌어올리는 매개체가 분명하다.

    

 살이 이리도 빈틈없이 찐 것은 아이들도 한몫했다. 나는 배부르게 식사하는 편이고 아이들은 조금씩 자주 먹는다. 밥 먹고 30분쯤 지나면 배고프다며 아우성이다. 나는 과일 깎다가 한 개 주워 먹고 남으면 아깝다고 잔반 처리도 한다. 또 30분 뒤에 아이들은 간식을 찾고 나의 입도 쉼 없이 오물거린다. 인생 뭐 있냐며 행복하면 되지(돼지)했더니 진짜 행복한 돼지님이 되었다.     


 다이어트는 몇 번 해봤다. 닭가슴살과 고구마, 달걀, 바나나를 주식으로 바꾸고 유튜브 운동채널(땅끄부부, 엄마TV, afit, 스미홈트, 빅씨스)을 보며 열심히 땀을 흘렸다. 다이어트에 아침 공복 운동이 좋다고 해서 식사 전 실내 자전거도 탔다. 전신운동으로 로잉머신(노 젓는 동작을 하는 운동기계)이 도움이 된다고 해서 거금을 들여 집 안에 들여놓았다. 그 밖에 철봉, 훌라후프, 푸쉬업바, 마사지 스틱, 운동 밴드, 폼롤러, 야구공, 아령 등 종류별로 넘쳐났다. 그런데 함정은 운동한 만큼 식욕도 폭주했다. 열심히 움직인 만큼 더 허기졌다. 등가죽에 붙은 배를 양껏 먹으며 볼록 나오게 해주어야 먹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아침마다 체중계 앞에 떨리는 마음으로 섰다. 1그램이라도 줄여 보겠다며 스마트 워치, 머리끈과 귀고리도 풀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이다. 조금이라도 감량이 된 날에는 좋다고 쾌재를 부르다가도 변화가 없거나 더 불어버린 숫자를 확인하는 날에는 ‘이 짓을 왜 하고 있나?’ 한숨이 푹푹 나왔다. 다이어트라 못 먹는 것 같아 억울한데 변화도 없으니 한없이 예민해졌다.     


 다이어트는 몇 킬로를 뺐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뺀 만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 열심을 내어 몇 달간 감량했더라도 찌는 건 한순간이다. 요요가 무섭다더니 뺀 것보다 더 찌는 일이 예삿일이다. 근 반년을 체중계에 오르지 않았다. 긴장감 없이 자유로운 영혼처럼 먹어댔다. 역시 결과는 참혹했다. 설마 하고 체중계에 선 순간 앞자리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 짐작은 했으나 눈으로 확인하니 말문이 막혔다. 행여 체중계가 잘못되었나 싶어 오르락내리락 몇 번을 반복했다. 문제는 체중계가 아니라 나의 ‘몸뚱이’임을 재차 확인할 뿐이다.  

   

 다시 살 빼기로 굳게 결심했다. 달걀과 고구마를 삶고 과일과 채소를 씻어 식판에 담았다. 밥도 3~4숟가락 정도 소분하고 국도 건더기만 조금 건져낸다. 상추에 밥풀 10알 정도와 국 건더기, 닭가슴살을 올려 싸서 먹는다. 달걀과 고구마를 까면서 최대한 밥을 오래 씹도록 연습한다. 항상 볼 안 가득 욱여넣으며 후다닥 먹는 게 익숙한 나였다. 조금씩 젓가락으로 음식물을 쪼갠 후 새 모이처럼 먹는 식사는 참 어렵다. 마치 다람쥐가 비상식량을 아껴먹듯이 아몬드 1개를 10번도 넘게 나누어 먹었다. 천천히 먹으면 포만감이 들어서 적게 먹는다고 하는데 내 배만큼은 예외였다. 매번 젓가락 놓는 게 너무도 아쉽다.  

   

 배고플 때 물을 마시면 잠시 뇌가 속아 배가 부른다고 한다. 그럼에도 허기짐이 가시지 않을 때는 식사한 것처럼 양치질했다. 상쾌함 때문인지 먹고 싶은 마음이 잠시 사라진다. 운동은 유튜브 엄마TV 20~30분짜리 영상을 보며 땀을 쏟고 있다. 다이어트는 7할이 식단 조절이라 해서 먹는 족족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식사는 물론 간식까지 찍다 보니 못 먹고 있는 것 같아 억울했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고기가 먹고 싶을 때는 제육볶음도 먹는다. 다만 양을 줄여 채소로 배부름을 높인다.     


 살 빼기 쉽지 않다. 아이들은 먹는 걸 자꾸 내 앞으로 가져온다. 한 번만 먹어보라고 자꾸 내 코앞까지 들이댄다. 역시 적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매 순간 살들이 나와 이별할 수 있을지 아닐지는 9회말 2아웃 상황처럼 스릴있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마음이 요동칠 때 어김없이 음식으로 마음의 허기를 달랬다. 기분은 나아졌지만, 나는 플러스사이즈가 되었다.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마음속에선 ‘나는 이것도 이겨내지 못하는구나!’ 상처를 냈다. 어쩌면 예쁘고 날씬한 몸이 목표가 아니라, 건강한 나를 위한 한 걸음으로 나아가야 했다. 살이 쪘더라도 나는 분명 나인데, 그런 나를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먼저인 것 같다. 미움이라는 감정으로 나를 채찍질하며 나아가는 건 쉽게 지치게 하니깐. 나는 다시 건강을 위해, ‘내 마음을 다독이며 나아가는 다이어터’가 되어보려 한다.

 “살들아, 이제 나 좀 놓아주렴.”


사진: UnsplashThought Catalog

사진: UnsplashElena Le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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