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이 인정한 음치다.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음악 시간이 가장 싫었다. 피아노를 못 배웠기 때문에 콩나물 대가리(음표)를 봐도 뭔지 몰랐다. 일명 음악계의 까막눈이다. 친구들이 노래방에 가자고 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따라갔다. 괜히 ‘나를 시키면 어쩌지?’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손발까지 긴장됐다. 친구 여럿에 파묻혀 한 소절 부르고는 조용히 구석으로 내 존재를 감춘다. 마치 보호색을 띠며 벽이 되고 싶었다. 한 공간에 있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모두 흥에 넘쳐 노래하고 소리 지르며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었다. 나만 예외다. 친구들이 시키는 것도 아닌데 뭔가 노래 한 곡절을 해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을 느꼈다. 시간이 빨리 가기를 손꼽아 기다렸지만, 노래방 사장님은 자꾸 보너스 시간을 넣어준다. 이럴 땐 사장님의 후한 인심이 너무나 밉다. ‘이 한 곡만 버티면 여길 벗어날 수 있었는데.‘ 10분 뒤, 또 10분 뒤로 자꾸 미뤄진다. 나는 점점 절망하며 애꿎은 탬버린만 주구장창 흔들어댄다. N분의 1로 나눈 노래방비를 뽑아야 하니깐.
큰 아이에게 피아노 학원을 보냈다. 음악에 대한 한을 큰 아이가 대신 풀어주길 바랐다. 큰 아이는 학원에 다녀와서 중고로 산 3만원짜리 전자피아노를 뚱땅뚱땅 쳤다. 나는 그저 신기하고 내가 치는 것 마냥 뿌듯했다. 중간에 멈칫 멈춰설 때도 있지만 이리저리 검은 건반도 몇 개 누르며 연주했다. 그 작은 두 손으로 피아노를 휘젓는 모습이 대단했다. 내 눈에는 ’베토벤과 모차르트 저리 가라‘였다. 큰 아이는 피아노를 칠 때마다 엄청난 부러움을 샀고 감탄하며 칭찬하는 엄마를 보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 줬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먼저 큰 아이에게서 피아노 기초를 배웠다. 바이엘 1권을 펴고 아이가 알려 준 대로 뚱땅뚱땅 연습했다. 한 번도 아이에게 배워보겠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피아노는 피아노 학원에서만 배우는 것이라 여겼다. ’악기 하나쯤 배우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만 있었지. 실천으로 옮기지 않았다. 남편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러다 말겠지.‘ 싶었다. 며칠씩 열심을 내는 모습을 보니. 나도 배워보고 싶었고 용기를 냈다. 나도 아이에게 가르침을 받는 학생이 되었다. 큰 아이는 2명의 제자를 가르치는 ’피아노 선생님‘이 되었음에 신나 했다.
3만원짜리 중고 피아노는 많이 쳐서인지 검은 건반이 뛰쳐나갔다. 제 임무를 마쳤으니 이제 좀 쉬게 해달라며 신호를 보냈다. 큰마음 먹고 거실에 값이 제법 나가는 새 전자피아노를 들였다. 처음에는 아이가 피아노를 계속 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들였는데 이제는 내가 제일 많이 앉아 있는다. 문화예술학교에서 성인 전자피아노 기초를 수강하기 때문이다.
바이엘을 치다가 모르면 아이를 불렀다. 어떻게 치는지 시범도 보여달라고 하거나 내가 맞게 치고 있는지 지켜봐달라고 했다. 귀찮을 법도 한데 아이는 조곤조곤 선생님 노릇을 잘 해냈다. 때론 그게 아니라며 시범을 몇 번이고 보여줬다. 나는 생각처럼 손이 움직여지지 않아 좌절했고 투덜거렸다.
“엄마는 왜 이리 손이 잘 안 움직여지지? 손가락 바꿔 끼우고 싶다. 만능 손가락으로.”
“안되는 손부터 하나씩 연습하고 그게 잘되면 두 손으로 연주해 봐. 계속 연습해야지 뭐.”
아이는 나를 달래며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 답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고 항상 아이에게 했던 말이다. “다시 천천히 해봐. 계속하면 되니까.” 그걸 아이 입으로 직접 들으니 새삼 느낌이 달랐다.
처음에 오른손 높은음자리 보표와 왼손 낮은음자리 보표가 동시에 보이지 않았다. 두 곳을 동시에 쳐다보면 마치 양다리라도 걸친 것처럼 내 눈은 떨려왔다. 오른손 부분만 보던지, 왼손 부분만 보든지 정직하게 한 곳만 쳐다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악보는 마치 ’숙맥의 남녀‘가 첫 연애를 하는 것 같았다. 옆에서 보면 속이 터진다. 그만큼 오래 걸리고 진도는 더뎠다.
화요일이 되면 피아노 선생님께 잘되지 않는 부분을 여쭤보거나 진도를 검사받았다.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떨렸다. 온몸이 경직되고 손가락은 연거푸 실수한다. 이럴 땐 연습한 만큼 나오지 않아 속상하다. 그렇게 조금씩 진도를 나가고 악보 보는 연습도 했다. 전문가 선생님께 배우니 이론 공부도 체계적으로 할 수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음악 용어는 반복을 통해 조금씩 익혔다. 특히 장조의 으뜸음 찾기를 통해 #(샵)과 b(플랫)에 대해 배울 때는 알쏭달쏭 그 자체였다. 선생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이해 못 해도 괜찮아요. 한번 들어보고 다음에도 또 들어보면 조금씩 이해될 때가 있어요. 지금은 이런 게 있구나 지나가도 돼요. 계속 반복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음악 이론을 4~5번 듣고 나니 ’#(올림표) 파도솔레라미시‘, ’b(내림표) 시미라레솔도파‘의 조표가 이해됐다. 수업 때는 알 것 같았는데 막상 그려보면 이해하지 못함이 탄로 났다. 반복을 계속하다 보니 이제야 한 번에 그려졌다. 찬송가에 그려진 조표가 보였다. 그전까지 있어도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했다. 음악계의 까막눈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이런 조표가 있었네. 와! #이 진짜 파와 도, 솔 이렇게 순서대로 되어있네. 신기하네.‘
아직도 배워야 할 부분이 많다. 선생님은 ’10년‘은 쳐야 조금씩 악보 보는 눈이 생긴다고 하셨다. 조급했던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처방전 같았다. 솔직히 처음 수강을 시작했을 때는 기술적으로 빨리 익혀 바이엘과 체르니를 떼고 연주를 자유자재로 하는 걸 꿈꿨다. 어쩌면 그런 욕심부터 비워야 서서히 채워나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절대적인 연습 시간과 노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가랑비에 옷이 젖듯 ’꾸준히‘가 답이었다. 지금은 잘 치는 것보다 피아노와 친해지는 것이 목표니깐.
한 곡을 완벽하게 치려면 수십 번의 불협화음을 이겨내야 한다. 전에는 막히면 조금 연습하다가 무조건 처음으로 돌아가서 쳤다. 그러니 앞부분은 잘 치는데 막히는 부분에서 계속 넘어서질 못했다. 시간은 시간대로 들이면서 나아지지 않은 상태로 연습을 그만두기 일쑤였다. 요령 없이 치니 일주일에 한 곡을 완벽하게 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선생님은 매끄럽지 못한 구간을 자연스럽게 연주하는데 시간을 들이라고 했다. 나는 악보에서 반복되고 잘 쳐지는 부분은 생략하고 막히는 부분을 더 중점적으로 연습했다. 물론 잘 쳐지지 않는 부분들은 매번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수십 번을 연습해야 조금씩 전체를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렇게 피아노 연습하는 요령도 조금씩 터득했다.
선생님이 피아노를 배우는 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피아노 연주를 듣도록 권유하셨다. 마치 글을 쓰기 위해서 많은 독서가 필요하듯이. ’듣는 귀‘는 잘 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피아노 소리와 친해지게 한다.
그렇게나 위대해 보였던 두 손 연주와 검은 건반 누르기를, 이제 나도 할 수 있다. 어쩌면 지레 ’겁부터 먹고 시작조차 하지 못했구나.‘ 싶다. 그런데 악기는 정직했다. 조금만 연습을 게을리하면 바로 나타난다. 악보가 잘 보이지 않고 손은 무거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피아노를 배우는 삶은 크게 활력이 되었다. 아이와 피아노로 대화하거나 연주하며 좀 더 친밀한 관계도 갖게 되었다. 건반을 누르고 연습할 때, 나도 모르게 몸이 흔들거리고 소리를 내본다. 더 이상 노래를 못함이 나를 움츠러들게 하지 않는다. 못 부르면 또 어떤가? 완벽해지려고 애쓰는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힘 빼고 즐길 수 있었다. 더 이상 아이는 나 대신 음악의 한을 풀어주지 않아도 된다. 나의 부족함과 결핍은 내가 채우는 걸로 결론 내렸다.
지긋한 나이의 수강생들은 수업 시간마다 열심을 내어 연주한다. 볼 때마다 신선한 자극이 된다. 오늘도 열정의 온도를 높여 연습에 매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