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장인의 길을 결심한 이유는?
아침 식사 후, 남편은 바리스타 장인처럼 커피 2잔을 정성껏 탄다. 커피 물을 맞추는 데 살짝 얼굴까지 찡그린다. 심혈을 기울이며 커피를 만들고 있다는 증거다. 세심하게도 커피포트에 남은 물로 머그컵을 살짝 데피는 과정도 추가한다. 잘 저어준 커피를 둘로 나눠 넌지시 건넨다. 커피믹스임에도 ‘공’을 들여서인지 제법 맛있는 커피로 탄생한다.
머그잔에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이 참 좋다. 구수하면서도 달콤한 향은 커피를 마시는 기쁨을 두 배로 만든다. 홀짝홀짝 커피를 마시는 5분의 여유는 언제나 달달하다. 아이들 등교로 분주했던 아침, 소파에 앉아 온전한 평화를 맛본다. 한 모금을 마실 때마다 몽롱한 정신을 깨우고 하루를 잘 살아 보자고 다독인다.
급한 성격 탓에 뜨거운 커피를 들이키다 입천장이 데인다.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불 구덩이가 솟구친다. 그제야 커피를 연신 후후 불어댄다. 적당한 온도를 기다리는 그 몇 초가 참 길다. 꿀꺽 넘어가는 커피에 “앗, 아직도 뜨겁네! 후후 그래도 너무 좋다.”며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아메리카노의 담백함도, 우유의 부드러움이 가미된 카페라테도, 카라멜 맛이 풍미인 카라멜 마키아또도 좋아한다. 무엇보다 전기포트에 팔팔 끓인 물에 쓱 타 먹는 ‘남편이 타주는 커피믹스’가 가장 좋다. 기다리는 시간이 채 1분도 걸리지 않으면서 간편하고 맛까지 보장되어 있으니까. 집을 순식간에 편안하면서 여유를 충전하는 카페로 만든다. 어찌 이 작은 한 봉지에 커피의 깊은 맛과 달콤함을 담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티스푼의 작은 움직임으로 새카맣던 커피는 금세 설탕과 프림에 섞여 갈색빛으로 변한다. 물감 놀이를 하는 것처럼 멍하니 바라보며 잠깐 고민한다. 김이 모락모락 따뜻하게 마실지 아니면 그 속에 얼음 몇 알을 넣어 시원하게 먹을지 말이다. ‘짜장이냐? 짬뽕이냐?’의 난제처럼 고심한다. 어떻게 먹어도 커피는 그 나름의 맛과 멋이 있다. 대체로 따뜻한 커피를 마시다가 한 번씩 시원한 커피를 남편에게 주문한다. 때론 잠에서 번쩍 깨도록 시원함을 넘어선 차가움이 필요하니까.
나는 커피에 물을 넉넉하게 넣어 연하게 먹는 걸 좋아했다. 커피도 배부르게 먹고 싶은 욕심이랄까? 아니면 커피믹스 2개를 타서 먹기에는 카페인이 걱정되어서랄까? 그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런 나에게 남편의 커피 맛은 약간 신세계였다. 같은 커피믹스로도 ‘이렇게 맛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구나’ 싶었다. 라면에 비유하자면 국물이 좋아 물을 넘치게 끓여 먹다가 정량에 맞춰진 라면을 먹었을 때의 그 기분이다. ‘유레카! 딱 이거야! 이거였어! 물 조절로 맛이 이렇게나 차이 날 수 있나?’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남편이 커피 장인이 된 내막은 이러했다. 나는 나름 남편을 배려해서 머그잔에 물을 덜어내려고 신경을 썼다. 분명 내가 타서 먹는 물의 양보다는 적었다. 다만 머그잔 물 높이를 커피잔 물 높이로 맞추는 수준이었다. 후한 인심만큼 물의 양은 언제나 넉넉했다. 또 포트에 물 올리는 것도 귀찮을 때는 끓는 보리차 물에 홀랑 커피를 타서 남편에게 건넸다. 남편은 내 커피를 받고 한 모금 마시더니 오만상을 찌푸렸다.
“무슨 커피가 이리도 한강이야?”
“보리차로 맛을 낸 커피는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거야? 이게 보리차맛 커피야? 커피맛 보리차야?”
그 후, 남편은 내가 건네는 커피의 물 높이부터 확인하고 한숨부터 쉬었다. 불만이 가득했다. 결국 남편의 커피는 자신이 탈 거니까 놔두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커피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커피 맛은 자기가 지킨다는 포부로 “남편이 타 준 커피가 제일 맛있는 것 같아.”라는 말에 으쓱하면서.
남편의 숨겨진 커피믹스 레시피는 이러했다. 머그컵 한잔에 커피믹스 3개를 한꺼번에 털어 넣고 물을 적당히 부었다. 잘 저어준 후 2개의 컵으로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고 정확히 나누어 담았다. 때론 커피를 아쉬워하는 나를 위해 한두 모금 정도 더 많이 담긴 커피를 건넨다. 물론 남은 물로 머그컵을 데워 따뜻함을 오래가도록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렇게 달콤한 커피를 서비스했고 이제 커피 타는 일은 남편이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되었다.
매번 커피믹스 2개를 넣어 먹기에는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는 것 같아 주저했다. 3개를 둘로 나누면 1.5개가 된다고 생각하니 과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물 양도 1잔의 양보다 조금 많아진 만큼 내가 먹던 물양과 비슷해진다. 평소에 추구하는 ‘넉넉한 양의 커피’를 마시는 것 같아 좋다. 밥이든 커피든 질만큼이나 양이 넉넉해야 야박하지 않게 느껴진다.
혼자 커피를 타서 먹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커피믹스 1.5개를 탈 수 없기 때문이다. 간절하게 남편의 커피가 생각나는 이유다. 1개를 넣을지 2개를 넣을지 선택해야 한다. 결국 예전처럼 1개의 커피믹스에 넉넉하게 물을 붓는다. 이제는 그 맛이 싱겁다 못해 심심하게 느껴진다. 그새 남편의 커피 맛에 길들어져 버렸다. ‘예전에는 어떻게 이런 맹탕인 커피를 마셨을까?’ 싶다. 남편의 진한 커피 맛을 흉내 내내 보려고 커피믹스 1개의 물양을 줄여도 본다. 마시는 시간이 금새 끝나 버린다. 자꾸만 비어버린 바닥을 보며 한두 방울 남은 커피까지 탈탈탈 털어 넣는다.
‘거참, 몇 모금 마시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바닥이네. 혼자 마셔서 그런가? 왜 이리도 빨리 마셔 버렸지? 아, 한 모금씩 아껴먹어야 했어.’
아쉬움이 가득하다. 역시 커피도 밥처럼 혼자보다 둘이 먹어야 맛있는 이유가 있었다.
커피의 따뜻함이 머그컵에서 내 손으로 전달될 때의 그 느낌. 따뜻해진 손만큼 이불 속 온기를 느끼는 것처럼 내 마음도 포근해진다. 한잔의 커피로 행복이란 게 뭐 별것인가 싶다. 바리스타 장인이 따끈하게 타 주는 커피는 아침부터 ‘대접받고 있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 속에 나름의 작은 수고로움과 공이 깃들어 있음에 매번 감사하다. 남편의 정성과 철학이 담긴 커피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난’ 커피임이 분명하다.
“남편, 커피 한잔, 플리스!”
사진: Unsplash의Toa Heftiba
사진: Unsplash의Hannah W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