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마라톤 하프(21.0975Km)를 접수했다. 남편은 자꾸 '약장수'처럼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고 한다. 말릴 틈도 없이, 내 마음이 바뀔세라 무통장입금까지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역시 남편은 추진력 갑이었고 나는 눈뜨고 코 베인 냥 얼떨떨하고 믿기지가 않았다. “18일 남은 시점에 하프를 뛴다고?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스레 되뇌였다. 남편은 “걱정하지마. 할수 있어, 완주는 가능할꺼야.” 몇번이고 안심시켰다.
‘이게 열심히 뛰어보겠다고 다짐하고 의지를 불태운다고 하루 아침에 잘 달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뛸수 있을까?’
아무리 기록이 아닌 완주가 목표라지만 첫 하프는 충분히 연습하고 확신이 찼을때 뛰고 싶었다. 번갯불에 콩 구어먹듯 준비도 덜 된채 뛰어야 하니 뭔가 씁쓸하고 계속 자신이 없었다. 한편으론 이렇게 저지르지 않고서 언제 뛰어보겠나 싶기도 했다. 완벽히 100%로 준비될 때까지 기다린다면 나는 평생 대회에 나가지 못할 것이다.
3번의 하프거리를 뛰어보며 최종 연습을 마쳤다. 대회 일주일 앞두고 남편과 등산을 했다. 갑자기 안쓰던 근육에 무리가 갔는지 탈이 났다. 등산하고 다음날 종아리에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찌릿찌릿 욱신거렸다. 대회 전날까지 마음 졸이며 뭉친 근육을 풀어주었다. 자신없었던 마음에 뛸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불안까지 더해졌다.
대회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빗줄기가 굵어질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슬비였다. 대회 중간 중간 시원하게 해주는 스프링 쿨러 역활을 톡톡히 했다. 다행히 아픈 종아리도 회복되었다. 풀코스 주자들과 함께 하프 주자들도 출발선에 섰다.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지만 사람들의 열기와 열정으로 인해 기대와 흥분으로 뒤바뀌었다. 완주의 꿈을 위해 한걸음씩 열심으로 내딛었던 때가 생각나면서 온힘을 다해 카운트 다운을 외쳤다.
"5. 4. 3. 2. 1. 땡"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된것 같았다. 대회만이 주는 긴장과 떨림을 안고 출발선을 지나갔다.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가다보니 평소보다 초반 페이스가 10~15초 정도 빨랐다. 처음에 오버페이스하지 않으려고 속도를 낮추고 스마트워치을 확인하며 나아갔다. 5Km지점에서 물을 마시고 6Km 지점에서 2시간 10분 페이스메이커(기준이 되는 속도를 만드는 선수)를 만나 무리지어 따라갔다. 함께 뛰고 있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다. 반환점을 돌면서 내리막길이라 속도를 내는 페이스메이커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 평지가 되어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페이스메이커와 점점 거리가 멀어져만 갔다.
16Km가 지나자 페이스메이커는 아득히 보이지 않았고 심리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달리는 것이 고통 그 자체였다. 나지막한 오르막길 2개에 눈 앞이 캄캄해졌다. 포기하고 걷고 싶어 살짝 속도를 줄였다. “우리 연습했던 거야. 걷지는 말자.” 남편은 내 마음을 읽는 듯했다. 멈추려다가 다시 뛰었다. 파이팅을 외치는 남편의 목소리는 점점 들리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왜 하프를 뛰고 있지? 이걸 완주한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나? 걸어간다고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그냥 걸어갈까?’ 달콤한 유혹에 잠깐 타협하며 멈추기도 했다.
불과 몇십 분 전, 반환점을 돌아 마주 달리던 사람들을 보며 다짐했었는데. ‘좀 더 열심히 달려 쫒아가야지!’라고. 마지막에 마음처럼 되지 않자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스마트 워치의 1킬로 알람이 7분대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빨리 끝내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달렸다. 모든 힘듦을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 마냥 오만상을 찌푸렸고 제발 끝나길 간절히 기도했다. 드디어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피니쉬 라인(결승선)을 통과했다. 한참이나 헉헉대며 숨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피니쉬라인을 이렇게 들어와 버렸구나 싶어 허무하기까지 했다. 내가 꿈꾸는 마지막 모습은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기뻐하며 들어오는 것이었는데...
하프마라톤은 처음인데, 그 막연하고 두려운 감정을 이겨내고 완주했다. 2시간 10분 31초, 딱 연습했던 만큼의 결과가 나왔다. 완주했다는 안도감과 드디어 끝났다는 시원섭섭함이 교차했다. 연습 부족을 실감했고 대회 전에 무리한 등산이나 운동은 삼가야겠다고 크게 깨달았다.
다음날 보성마라톤 홈페이지를 조회해보니 유튜브 영상이 있었다. 카메라에 잡힌 모습이 종종 보였다. 남편이 카메라에 손을 흔들라는 말에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인상을 쓰면서도 손을 흔들고 있었다. 페이스메이커와 같이 뛰고 있는 모습, 피니쉬라인에 들어오는 모습 등을 보니 코끝이 찡했다. 달릴 때의 그 힘듦이 느껴지자 다시 뛰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고 아쉬움도 있었다.
'아 저때 진짜 힘들었는데. 좀 더 열심히 뛸걸.'
성별 전체순위와 연대별 순위까지 나오는 걸 무심코 봤다. 남자 1등이 60대에서 나왔다는 것에 정말 놀랐다. 60대에도 서브3(풀코스를 3시간 안에 들어오는 것)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1등이라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젊은 20대, 30대, 40대를 넘어서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단련하고 훈련했을까?싶었다. 풀코스를 완주한 70대 할아버지도 있었다. 꾸준히 준비해서 언젠가 나도 풀코스에 도전해 보고 싶다.
30대 여자에게 주는 연대별 시상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30대 여자 하프마라톤 1등에 내 이름이 있었다. ‘어? 이거 뭐지? 나 상 받을 정도로 잘 달린 거야?' 순간 우쭐했다. 30대에 2등을 보니 1분 정도 차이가 났다. 그런데 어? 3등이 없었다. 알고보니 30대 여자는 2명 완주했던 것이다. 운 좋게도 1분 차이로 1등 트로피를 받게 되었다. ‘누가보면 달리기를 엄청 잘하는 줄 알겠네’ 헛웃음이 나왔지만 기분은 좋았다. 상 받기에는 몸시 부끄럽지만 하프마라톤 첫 완주에 받는 작은 선물같았다. 포기하지 않고 완주해 준 내 다리가 무척 고마웠다. 무엇보다 함께 달려준 남편, 대회 3주 전 갑자기 하프를 뛰어보자고 부추겨줘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사람들은 마라톤을 한다고 하면 '왜 이렇게 힘든 걸 하냐?'며 이해하지 못한다. 힘드니깐 달린다고 말한다. 뛰고 있는 순간에 집중하게 되니까. 조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 문제며 이사에 대한 걱정이 조금 견딜 만해진다. 거친 숨을 내뱉고 앞으로 전진하려면 달리다는 것 말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턱까지 답답하게 나를 옥죄여오던 문제들이 뛰고나면 별것 아닌것처럼 작게 보인다. 이렇게 힘든 것도 견디고 뛰었는데 한번 이겨내보자는 작은 희망이 생긴다. 이렇게 트로피까지 받게되는 행운 또한 나에게 주어진 걸보니 더욱더 값진 경험이 되었다. 달리는 삶을 통해 가슴까지 벅찬 삶을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