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아이들의 가정 보육이 늘어났다. 날마다 보드게임을 섭렵했다. 부루마블, 알까기, 오목, 도블, 링코, 루미큐브, 드렉사우 등. 항상 침 튀기는 열정으로 게임에 임했다. 이럴 땐 승부의 세계가 너무나 냉정해서 부모와 자식 간에 작은 불화도 발생한다.
“앗싸! 게임은 이겨야 제맛이지!”
“흥. (도끼눈을 뜨며) 엄마는 이기는 게 그렇게 중요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 게임에 대한 예의야! 엄마가 일부러 지면 얼마나 재미없겠어?”
“됐어! 엄마는 너무해!”
재미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이기는 것에 진심이 된다. 시작과 동시에 내 세포는 이겨야 한다며 승부욕이 치솟는다. 없던 집중력도 발휘하니 이길 수밖에. 기분 좋게 아이들에게 져 줄 법도 한데, 게임이 시작되면 이상하게 그렇지를 못했다. 결국 아이들은 눈물을 보이고 나 또한 그제야 ‘이놈의 승부욕이 또 문제군.’하고 반성한다.
부루마블은 꼭 해야 하는 게임 중의 하나였다. 6살이던 작은 아이는 글자를 띄엄띄엄 읽어서 나라를 국기로 익혔다. 그 예로 뉴욕은 자유의 여신상과 같이 도시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연결했다. 돈 계산을 제외하고는 우리 도움 없이도 게임을 곧잘 했다. 오히려 큰 아이와 내가 알지 못하는 국기들을 작은 아이는 척척 알았다.
나라와 수도에 관심이 늘어가자 코로나상생지원금(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국민의 고통이 커지자 정부가 마련한 지원금)으로 지구본도 사줬다. 어릴 적, 지구본이 있는 집은 꽤나 멋지게 보였는데 나의 아이들에게 꽁돈으로 선물하려니 뿌듯했다. 부루마블을 하고 나서, 직접 위치를 찾아보기도 했다. 어플로도 연동되어 못 찾는 나라는 검색으로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수도, 언어, 인구 뿐만 아니라 탱고와 예수상같은 대표하는 것들도 자세하게 보고 문제도 풀 수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 지구본을 봤을 때, 우리나라부터 찾기 시작했다. 엄지손톱만 한 나라를 보고 꽤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것도 북한과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까지.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작아?”
“크기는 작지만 우리나라는 싸이 아저씨나 BTS(방탄소년단)같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가수들이 많아. 노래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수출하고 있고. 그걸 한류 문화라고 하는데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우고 우리나라에 오고 싶어 하지. 이렇게 많은 나라 중에서 11위 할 정도로 잘 사는 나라야.”
“그래도 나는 우리나라가 컸으면 좋겠어!”
작지만 자랑스러운 나라임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벌써 중국과 러시아에 비해 너무도 작은 땅덩어리에 벌써 마음이 상하고 적잖이 실망한 눈치다.
어린이집에서 배운 세계 수도송을 매일 같이 불렀다. 작은 아이가 부르고 있으니 큰 아이도 따라 부르고 어느 순간 나도 따라부르고 있었다.
“움바움바 움바리 움바 세계 수도송! 움바움바 움바리 움바 세계 수도송! 한국 서울, 일본 도쿄, 싱가포르 싱가포르, 중국 베이징, 태국 방콕, 네팔 카트만두, 인도는 뉴델리, 미얀마는 네피도, 베트남 하노이, 필리핀 마닐라.....”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부르며 흥이 넘쳤다. 자연스럽게 나라와 수도를 연결할 수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나라와 수도 책에 작은 아이가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 아이가 학습자료로 에펠탑 사진을 보여주니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펠탑이야.” 친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다고 했다. 나라, 도시 이름, 건축물에 관련 책을 보고 또 보며 흥미가 있어 한다고 했다. 글자도 가나, 케냐, 미국을 쓰고 있었다. 집에서는 한글책을 펴놓았을 때는 그렇게 관심없어 하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익혔다.
집에서도 볼 수 있도록 어린이집에서 좋아한다는 책을 주문했다. [세계수도 지도책 1.2권]은 아이들이 굵직하게 나라와 수도를 익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롤프라는 사슴과 꼬마 아이가 세계도시여행을 하면서 한 권 당 대략 10개, 2권을 통해 총 20개의 나라와 수도를 익혔다. 조금은 생소한 나라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도는 프리토리아.”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했다. 작은 아이를 따라 큰 아이도 잠자는 머리맡에서 함께 읽어주니 서로 정답을 먼저 말하겠다고 난리부르스다.
어린이집에서 추천받은 또 다른 책은 [노빈손의 세계도시탐험]이었다. 나라의 대표적인 건축물과 여러 상식을 배우기에 좋았다. 여기에 숨은그림찾기를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개미 군단처럼 작고 빽빽하게 그려진 그림은 마치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와 같았다. 눈알이 빠져라 찾으니 정신이 뛰쳐나갈 지경이다. 어찌 찾는것보다 못 찾은 것 투성이다. ‘진정 숨은그림찾기를 위해 이렇게도 빼곡히 사람들을 그려놓을 수 있단 말인가?’ 경이롭고 존경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도 책을 펼쳐볼 때마다 샅샅이 찾았지만 1~2개 찾을까? 말까? 한 저조한 성적을 나타냈다. 책 중에서 작은 아이는 유독 영국의 타워브리지를 좋아했다. 아빠에게 가서 “영국에는 문이 열리는 다리가 있는데 이게 그 타워브리지야!”라고 그림책을 가리키며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설명했다.
와당탕 [세계나라 수도 보드게임]은 화룡점정이었다. 가나의 수도는 아크라, 네팔의 수도는 카트만두, 일본의 수도는 도쿄 등 60개 정도의 나라와 수도를 맞추는 게임이다.
“잠깐만! 잠깐만! 생각날 것 같아! 제발. 기다려줘!”
“하나 둘 셋, 엄마 빨리 말해!”
“아 모르겠다. 초성이 뭐였더라? 앞 글자 한 글자라도 힌트 좀 줘!”
“ㄹ ㅇ ㅋ ㅂ ㅋ, 레로 시작해.”
“레일..코..박코?”
“엄마, 대체 코를 왜 박는데? 레일캬비크잖아!”
떠오를 듯 말 듯한 기억 때문에 보드게임에서의 영웅이 순식간에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모로코, 나이지리아, 아이슬란드 등 계속 헷갈리는 나라다. 가이드 책을 같이 보고 함께 공부했다. 모로코는 라바트, 나이지리아는 아부자, 아이슬란드는 레이캬비크. 지구본으로 누가 먼저 찾는지 경쟁하며 한 번 더 익혔다. 지구본을 통해서는 덩어리 형태, 즉 대륙의 개념을 익히기 좋았다.
옆에 있으면서도 아이의 관심을 놓칠 때가 많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조언으로 아이의 흥미가 무엇인지 알고 아이들과 더 신나게 노는 방법을 생각했다. 나도 아이들을 따라 세계 여러 나라를 공부했다. 이건 아이 공부가 엄마 공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었다. 무엇보다도 작은 아이가 글자에 흥미를 느끼고 조금씩 익혀나가는 모습이 제일 큰 수확이었다. 한글책을 펴면 하품만 쩍쩍하더니, 보드게임과 책 그리고 지구본을 통해서는 글자를 재미있게 익혔다.
아이를 통해서 또 하나 배운다. 아무리 말려도 하고 싶어 하는 건 아이들도 알아서 한다. 스스로 흥미를 느낄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 주는 것,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이다. 우선 불끈 불끈 튀어나오는 조급함부터 내려놓아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