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습관 만들기
아이들은 태블릿(인터넷 학습기)으로 평일 조금씩 공부한다. 일주일에 한 번, 화상 전화로 문제를 풀며 잘 이해했는지 검사받는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둘 다 하고 있으니, 식탁에 앉아 함께 공부하기 좋았다. 내가 교재를 고민하지 않아도 과목별로 객관식 문제와 서술형 형태로 나누어진 교재를 학기별로 받아 볼 수 있다. 다만 아이들이 문제 풀다가 이해 못 하면 나는 그 아이에게 온 신경이 쏠린다. 그러면 잘 풀고 있던 다른 한 명도 어렵다며 도와달라고 난리다. 아이들은 자기 공부량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즉, 잘 기다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샌드위치처럼 가운데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럴 땐 머리카락을 후하고 불면 분신이 여러 명 나타나는 ‘손오공’이 되고 싶다.
큰 아이의 태블릿 문제집으로 국어, 수학, 사회, 과학을 받았다. 영어는 학교마다 선택이 달라 문제집이 빠졌다. 대신 학기 초에 영어 출판사를 입력하고 진도대로 듣기는 가능했다. 큰 아이가 영어가 어렵다며 문제집을 사서 공부하고 싶다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EBS 4학년 교재를 찾아보고 듣기를 중점적으로 하는 교재를 선택했다.
이제껏 태블릿에서 교과서 영어 수업을 듣고, 학교에서도 배우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함께 문제집을 풀어보니 ‘나는 너무 공부에 무관심한 엄마였나?’ 마음이 복잡해졌다. 큰 아이는 몇 개의 알파벳과 d와 b 소문자의 구분도 자꾸 헷갈렸다. 또 문장 처음을 대문자로 쓰는 것도 생소해했다. 기초적인 단어의 뜻과 문장을 읽는 것도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다. ‘학교 수업도 쉽지 않았겠구나.’ 싶어 괜히 미안했다. 이제 초등 4학년이니 하루에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하면서 영어가 익숙해지는 걸 목표로 같이 책을 폈다.
듣기 문제집이니 문제 몇 개 풀면 된다고 생각했고,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QR코드를 입력해서 핸드폰으로 바로바로 영어 문제를 들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10개의 단어를 쓰고 익혔고 듣기 문제 20개를 풀었다. 다음에는 듣기를 다시 들으며 빈칸에 구멍 뚫린 단어를 채워 넣는다. 또 들려주는 문장을 통째로 쓰는 연습과 그 문장의 뜻도 써야 했다. 마지막으로 단어들의 열거된 조합을 나열해서 올바르게 통문장을 만드는 것으로 끝났다. 구성은 알찼지만, 기초가 부족한 아이와 하기에는 만만치 않았다.
“이거 한번 크게 읽어볼래?”
“...”
“하우스”
“하우..스 더 ...”
“하우스 더 워덜”
“하우스 더 워...덜?”
“하우스 더 워덜 투데이? (How’s the weather today?)”
“하우스 더 워..덜 투....우..?”
나도 모르게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영어는 우리나라 말이 아니니 천천히 조금씩 해보자고 했던 마음에 폭풍우가 일었다. 아이의 표정도 심상치 않았다. 입이 댓 발은 나와 있었고 알파벳도 신경질적으로 쓰고 있었다. 큰 아이의 기분이 왜 나쁜지 궁금하기보다 슬슬 화가 나는 마음이 커졌다.
“공부하기 싫어? 왜 그렇게 기분이 나쁜데?”
“....”
“너가 영어가 어렵다며 문제집 사서 풀어보고 싶다 해서 같이 풀고 있잖아? 근데 왜 그렇게 기분 나쁜 투로 신경질 부리는데? 엄마도 할 일 많아. 네가 그냥 학원에서 배우겠다고 하면 보내줄 수 있어. 오늘은 책 덮자!”
아무 말도 못 하고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괜히 아이가 말하기 기다리기보다 잔소리가 따발총으로 나갔나 싶어 머쓱했다.
“자꾸 모르는데 엄마가 계속 시키니까. 그렇잖아!”
“그럼 엄마한테 ‘이거 잘 모르겠으니, 한 번만 더 말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되잖아? 엄마가 못한다고 혼낸 적 있어? 오늘은 공부 이걸로 끝내고 용돈 적립과 TV는 없어!”
아이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책을 덮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큰 아이는 작은 아이 앞에서 창피당하는 게 싫었을 것 같다. 큰 아이도 ‘얼마나 잘하고 싶었을까? 잘되지 않아 답답했겠지?’라는 마음이 뒤늦게 밀려왔다. “잘한다! 너무 잘하고 있어!”라는 칭찬에 인색했던 나를 돌아봤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은 진도를 정확하게 나가는 것보다 영어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쌓는 것이 우선이다. 물론 오늘의 공부는 저 멀리 물 건너갔지만.
1학년인 작은 아이는 태블릿을 풀 때, 덧셈과 뺄셈 하는 것을 서툴러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쉬운 주산 책을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전에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치려고 샀으나 풀지 않아 너무도 깨끗한 주산 책. 이제야 요긴하게 쓰임을 받는다. 작은 아이는 3~4개의 숫자를 더하거나 빼서 한 자릿수나 두 자릿수로 답이 나오는 문제를 풀었다. 처음에는 10문제 푸는데 소나기가 비 오듯 쏟아졌다. 한 자릿수의 합과 차는 어떻게 손가락으로 해보는데 두 자릿수가 넘어가니 자꾸 틀렸다.
몇 번 풀어보더니 점점 동그라미 개수가 늘었다. 옆에 조금 더 어려워지는 5개의 숫자의 덧셈과 뺄셈도 해 보겠다며 자진해서 풀었다. 더하고 빼고의 개념에 점점 익숙해지니 문제가 길어져도 셈을 잘 할 수 있었다.
“엄마, 이거 다 맞았어? 나 잘했지?”
“이야, 이제 덧셈과 뺄셈 엄청나게 잘하는데! 그래도 하루에 10문제씩 풀자.”
역시 공부는 정직하다.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처음에는 어려웠던 부분들도 점점 쉽게 풀린다. 다만 학원에 맡기지 않고 집에서 공부시키려면 예리한 관찰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아이의 부족함을 찾아내 채워주어야 하니까. 자꾸 모른다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태블릿을 풀고 있을 때 ‘쓱’ 한번 훑어봐야 하고, 도와달라고 할 때 어떤 부분에서 막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역시 엄마는 엄청난 눈썰미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고, 섬세하게 아이들의 필요를 채워야 한다. 꼼꼼한 내 성격이 이럴 땐, 딱 제격이다. 그래서 아이나 나나 몹시 피곤할 때도 종종 발생하지만.
아이들은 문제집을 다 풀고 나면 자신의 노트를 가져와서 용돈을 적립한다. 일명 큰 아이 적립 노트는 ‘옥돌 천사’이고 작은 아이 적립 노트는 ‘불의 아이’이다. 옥돌 천사와 불의 아이 노트 가져오라고 말하면 각자의 노트에 날짜와 함께 공부 이력과 용돈 금액을 쓴다. 상세하게 공부 가계부를 쓰는 것이다. 문제집 1장은 100원과 TV 시청 10분, 다 풀고 퀴즈 문제를 맞힐 때는 50원 추가와 TV 시청 5분이라는 규칙이 있다. 대개 아이들은 하루에 2~3장을 풀고 20~30분 정도 TV 시청을 확보한다. 물론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시간을 합치면 1시간가량 유튜브를 보던지 만화를 본다. 문제집과 적립 노트를 제자리에 꽂아 놓음으로 40분~50분 정도의 공부를 마무리한다. 때로는 그날 TV를 보지 못하면, 다음 날 적립해놓았던 시간을 사용한다.
처음엔 몸을 비틀고 힘들어하더니, 이제는 열심히 TV 보려고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한다. 계획대로 될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도 있다. 그럴 땐 오늘처럼 책을 덮는 과감함도 필요하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을 게 하나 없으니까. 다만 아이들도 보상으로 받는 TV 시청과 몇백 원의 적립이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걸 감수해야 한다. 언제나 선택은 아이들이 하도록 맡기지만 약간의 권유는 조금씩 한다. 보상의 달콤함에 스스로 자리에 앉기를 바라면서. 이럴 땐 유튜브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오늘은 1시간이야! 열심히 푼 자들이여! 자유를 맘껏 즐기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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