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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3, 최선도 중요하지만

친구 관계, 시험, 숙제의 고민

by 행복 한스푼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열정 가득한 선생님을 만났다. 학예회 발표 때 반 전체가 리코더 연주를 한다고 했다. 그 무대에 서기 위해 큰 아이는 가요 ‘사랑을 했다’를 반복해서 듣고 리코더로 계속 연습했다. 아이 숙제는 곧 엄마 숙제가 된다. 나는 밤이고 낮이고 “하나 둘 셋!” 뒤에 바로 노래를 틀어주며 박자를 맞췄다. 내가 리코더를 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큰 아이는 열심히 연습했다. 수업이 끝나고 2명씩 선생님 앞에서 리코더 검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통과해야지 하교를 할 수 있었다. 피아노 학원에 가서도 리코더 지도를 받으며 부족한 부분들을 완성해 갔다.

학예회 때 반별로 모두 장기자랑에 참여하는 줄 알았다. 웬걸? 반 전체가 참여하는 경우는 큰 아이 반이 유일했다. 반 아이들은 많은 사람 앞이라 떨렸을 텐데 실수 없이 장기자랑을 잘 마쳤다. 그만큼 스파르타로 연습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선생님의 열정은 숙제와 시험으로 곧바로 나타났다. 받아쓰기는 매주, 영어 단어 시험과 수학 쪽지 시험은 단원마다 봤다. 숙제로 받아쓰기의 틀린 문제는 10번씩, 영어 단어 틀린 문제는 20번씩 쓰는 것과 3~4장 되는 수학 문제 풀이도 함께 내주었다. 무엇보다 이름을 깜박하고 안 적은 날에는 학교에 남아 100번씩 썼다. 하교하는 시간이 늦어지면 실수를 해서 이름을 쓰고 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왔다.

큰 아이는 동그라미 맞는 개수에 연연하게 됐고 실수하면 어쩌나 불안해했다. 틀린 만큼 숙제는 늘어났는데 긴장한 탓에 실수까지 더해졌다. 가히 눈덩이처럼 불어난 숙제 더미에 나도 아이도 헐떡였다. 나 또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최대 관심사는 역시 얼마만큼 맞고 틀리고의 개수였다.

“오늘, 몇 개 틀렸어? 잘 풀었어? 실수 안 했어?”

“열심히 공부했는데. 또 실수해서 3개나 더 틀렸어.”

이번 시험은 모르는 문제에 실수까지 더해져 최소 30번 이상은 써야 한다는 얘기다. 수학 문제집까지 풀면? 아! 오늘도 일찍 자긴 글렀다는 슬픈 소식에 하품을 연거푸 하며 내 눈가는 촉촉해졌다.

나와 아이는 저녁마다 비상사태였다. 국어와 연계된 학습지는 이게 초등 3학년이 맞나 싶었다. 지문 길이와 서술 형태의 주관식은 제법 어려웠다. 큰 아이는 과목별 숙제에 틀린 받아쓰기와 영어 단어를 ‘세월아 네월아’ 팔이 아프도록 썼다.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내가 대신 써주고 싶었지만, 눈을 질끔감고 꾹 참고 기다렸다.


수학 익힘책 풀이는 머리를 싸매며 가르쳤다. 요즘은 수학 문제도 국어 문제처럼 3~4줄짜리 문장을 해석해야지 풀 수 있었다. 그냥 곱셈은 어찌어찌했는데, 문제에 적용하면 큰 아이의 손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다시 같이 한 줄씩 읽으며 ‘뜯고 맛보고 즐기고’ 무한 반복했다. 문제 하나가 30분을 잡아먹었다.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까마득하고 나의 마음 또한 조급해졌다. 내 목소리는 사방팔방 갈라지며 제 갈 길을 가기로 한 듯하다.

‘신이시여!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대체 몇 번을 더 읽어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이오?’

아이도 잘하고 싶었겠지만 조금씩 알듯 말듯 실수를 했다. 나의 감정도 오르락내리락 파도를 탔다. 정확히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큰 아이의 인내심도 바닥을 보였다.

“한 번만 더 풀어보고 끝내자!”

“이제 그만하자! 엄마는 왜 자꾸 끝낸다고 하고서 약속 안 지켜?”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며 공부하기 싫다고 버럭 화를 냈다. 처음에는 엄마에게 잘한다며 칭찬받고 싶어서 열심히 했다. 진척이 더뎌 나도 점점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아이도 나도 고달팠다. 태블릿(온라인) 학습 외에 가기 싫다는 학원을 억지로라도 보내야 하나 고민됐다. 왜 사람들이 운전 연습과 자녀 공부는 가족끼리 하지 말라고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속 터짐의 연속이었다. 아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적절하게 “너무 잘하는데? 그렇지! 잘했어!”라는 추임새를 적재적소에 넣어줘야 했다. 아직 저학년이라 당근 요법이 필요한데 나도 지치니 말수가 저절로 줄어들었다.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학교 숙제와 쪽지 시험으로 힘든 점을 털어놓았다.

“선생님, 학교 숙제가 조금 많은 것 같아요. 틀린 문제 쓰기와 내주신 수학 문제집 풀이로 아이와 제가 조금 힘드네요. 혹시 쪽지 시험과 숙제량을 조금 조절해 주실 수 있나요? 저와 아이도 동그라미 개수에 계속 연연하고 벅차더라고요.”

“어머님,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영어 단어를 20번씩 내주는 이유는 좀 더 익숙해지길 원하는 차원에서 숙제를 내주는 거예요. 아이들의 이름 같은 경우, 실수하지 않아야 하는 부분이라 더 강조하는 거예요.”

맞고 틀리고의 개수로 아이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틀린 문제 쓰기를 내주는 선생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이의 시험 결과로 숙제량이 좌지우지된다는 점은 변함없었다. 결국 공부를 따라가는 것도 힘겨운 데, 시험은 계속 봐야 하고, 숙제는 또 엿가락 늘어나듯 감당해야 한다면? 아이에게 학교가 얼마나 버거울까?라는 생각에 미안함이 더해졌다.

‘학원을 여기저기 보내서라도 미리 선행했더라면 조금은 쉬웠을까?’


2학기에 들어가서, 아이의 수학 익힘책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문제 풀이로 가득 채웠다. 그 노력 덕분인지 조금씩 수학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또래 교사(친구에게 선생님을 대신해 가르쳐주는 역할)가 되었다. 정규 수업이 끝나고서도 친구들의 수학 숙제를 돕고 싶다며 스스로 학교에 남기도 했다. 친구들이 서로 자기를 도와달라고 싸운다며, 인기 폭발이라며 으쓱했다. 1학기 내내 친구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던 아이가 맞나 싶었다. 이로써 친한 친구들이 많이 생겨났다. 가르치는 것에 재미를 느끼면서 친구들을 도와주는 것 또한 좋아했다.

3학년 반 배정을 확인하고 친한 친구들과 다 다른 반이 됐다며 속상해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이는 교실에 마음 둘 단짝 친구가 없다며 학교 갔다 오면 눈물을 쏟아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친구들 이야기로 가득했고 외롭고 힘겨워 보였다. 요즘엔 엄마들이 아이 친구까지 만들어 준다는데 난 그런 엄마가 되지 못해서 내심 미안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사람을 사귀는 일도, 유지하는 일도 어려워진 나의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래서 더 아이가 시간이 지나도 친구들과의 관계를 풀어나가지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났는지도.

친구 문제로 새 학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고 공감하면서도 어떤 위로도 되어 주지 못했다. 이 상황을 잘 극복해보자는 말과 좀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친구들에게 다가가 보라는 뻔한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또래 교사를 하면서 친구들과의 관계도 친밀해지고 몇몇 절친들이 생기면서 대인 관계의 어려움도 조금씩 해결되었다. 아이는 느리더라도 자신만의 속도로 해결 방법을 찾아간다는 걸 배워나갔다.


열정 가득하고 깐깐한 선생님을 만났다며 나와 아이는 1년 내내 힘들었다고 생각했다. 다른 반도 이렇게 숙제가 많은지 물어보았을 때 엄마들은 그런 담임 선생님을 만난 것을 내심 부러워했다. 저녁마다 마음을 다스리며 아이와 고군분투했던 뒷이야기는 모른 채.

지나고 나서야 그 선생님의 진심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렇게 열심을 내서 리코더를 연습했기에 지금 리코더 부는 일을 손쉽게 된 것처럼. 정작 숙제하느라 다른 학원 다닐 생각은 꿈도 못 꿨다. 열심을 내서 공부해서 친구를 도운 경험을 통해 ‘나는 필요한 존재’라는 좋은 자아상도 갖게 되었다. 선생님도 일일이 시험 문제를 만들고 숙제를 검사하며 아이들을 남게까지 하려면 힘이 들었을 텐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음을 유지했다.


4학년에 전학 오며 내심 걱정했다. 새로운 환경과 친구들 속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말이다. 큰 아이는 예상외로 3학년 때 친구 관계의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 탓인지, 여러 친구를 금방 사귀며 단짝도 만들었다. 또 1학기 부반장도 되었다. 매일 놀이터에 나가서 언니, 오빠, 동생, 또래 친구들과 노느라 너무 바쁜 몸이 되었다. 예전처럼 숙제하느라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은 눈 뜨고 찾아보기 힘들다. 열정 가득했던 선생님이 다시 그리울 줄이야? 다만 새로운 친구들과 잘 지낸다는 것과 저녁마다 나의 시간이 생겨서 좋기는 하다.

“신나게 뛰어노느라 바쁜 딸! 엔간히(적당히) 좀 놀고 공부 좀 하지!”


#열정가득한선생님

#아이가르치다가혈압급상승

#당근요법이필요하지만

#초3대인관계이겨내기

#필요한존재라는긍정적자아상

#친구가중요해지기시작

#또래교사가되면서긍정적시너지

#시험과쭉쭉늘어나는과제


사진: UnsplashAaron Bu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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