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틀 안에 가두며 한계 또한 내가 설정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죽어도 할 수 없는 일로 구분했다. 한마디로 해보고 안 될 것 같은 일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호불호’ 정확한 삶을 살았다. 모험보단 안정적인 것, 새로운 것보단 편하고 익숙한 것만 찾았다. 길도 가던 길만 가고 음료수도 먹던 걸로만 마시며 음식점도 먹고 괜찮은 곳은 질리도록 간다. 사람도 나와 맞는 사람 앞에선 수다쟁이가 되지만, 아닌 사람에겐 낯을 가린다. 그래서 길치고 사람을 새로 사귀는 데 시간이 걸리며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는 것은 1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다.
임신과 육아는 나에게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은 사건처럼 다가왔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일을 선택해야 했고 못 해도 꾹꾹 누르며 참아야 할 일들이 많았다. 괜히 억울해지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아 자꾸만 나 자신이 초라해졌다. 다들 아이를 들쳐메고 문화센터를 다니며 삼삼오오 육아 동지들과 전우애를 다졌다. 나와는 맞지 않았다. 아이가 울어도 눈치 안 보고 김칫국물 몇 방울 튀긴 옷도 추레하게 입을 수 있는 집이 편했다. 어쩌면 집이라는 동굴에, 원시인처럼 생존을 위해서만 움직였다.
물론 아이 엄마들과 어색하게 만나서 몇 마디 이야기 나누고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모임도 몇 번 참석 해봤다. 모임 후에는 국민 육아템으로 무엇을 사용하는지, 지금 무슨 교육을 하면서 아이의 발달에 부응하고 있는지, 말을 어느 수준까지 할 수 있는지. 비교라는 판도라 상자가 우수수 열렸다. 오히려 같이 있는데 더 외로워졌다. 그렇다고 혼자서 외로움을 견딜 강단도 없었다. 왜 그렇게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던지, ‘수영도 못하는데, 어쩌라고?’라는 생뚱맞은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과정은 마음의 허기를 조금씩 채웠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그래 한번 해보고 안 되면 또 해보면 되지. 뭐 어때? 당장 대회 나갈 것도 아니고, 상 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어제보다 오늘 1센티미터 성장해 있으면 되지! 누구보다 나를 물개 박수치며 칭찬할 거야.”라고 마음 먹이니 편해졌다.
나는 이제야 사는 게 생각보다 “신나는데! 재밌어!”라는 표현을 쓴다. 이제껏 사는 건 다 힘든 거라고,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해서 ‘모든 고난’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살았다. 하도 인상을 구겼더니 내 미간의 삼지창이 그 증거물로 남았다. 괜히 억울해지려고 한다. 못해도 즐길 수 있다는 것, 요것만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절벽으로 나 자신을 덜 몰아세우고, 덜 자책했더라면 조금 덜 울었을지도.
다들 초등학교 때 한 번쯤 해봤다는 피아노를 마흔이 다 되어가는 시기에 뚱땅뚱땅 도전하고 있다. 손가락은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지만 내 안의 결핍과 부족함은 조금씩 채워졌다. 달리기를 통해서 마음속의 오만 잡생각을 털어냈다. 또 쏘울(영혼)이 느껴지도록 몸을 움직이지만, 자꾸 박자를 놓이고 어떻게 제어가 안 되는 팔다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방송 댄스도 하고 있다. 역시나 몸과 마음은 각자도생이라는 걸 매번 느낀다. 무엇보다 한번 배워봤으면 좋겠다 싶었던 글쓰기 강좌를 해나가면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했던 물음표 대신, 일단 재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작은 용기가 필요했다. 나를 위해 시간과 물질을 쓰는 건 커다란 선물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왔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도 많이 받았다. 열심을 내는 모습은 긍정적인 자극으로, 수고로움을 자처해서 봉사하는 모습을 통해서는 선한 모범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어색해서 쭈뼛쭈뼛하다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서 수다 떠는 과정도 좋았다.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을 때, “아이 키우고...”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어 괜스레 움츠러들고 주눅 들었다. 이제 똑같이 물어본다면 “놀고 있어요. 아주 재밌고. 신명나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재밌게 노는 법’을 이제야 알아 너무 아쉽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누구는 대통령이 되고, 외교관이 되고, 의사가 되고,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더라도, 나의 꿈까지도 굳이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이 한 몸 불살라 재밌게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것이 목표다. 이것저것 해보다가 ‘뭐 하나는 제대로 얻어걸려, 내 인생을 책임져 주면 완전 땡큐지만!’ 그런 즐거운 상상도 추가한다.
글을 쓰면서 나의 성격도 파악됐다. 나는 마감일까지 느긋하게 쓰면서 읽고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 좋았다. 닥쳐서 하면 심장이 쫄깃쫄깃 생명줄이 짧아지는 기분이다. 여유롭게 차근차근 쓰고 고치고 완성해 가면 만족감이 높아졌다. 원고 완료 후에는 글쓰기에 대한 해방감과 자유함으로 무척이나 홀가분했다. 쓸 때마다 나는 작가가 되어 매회 출간이라도 한 것 같았다. 생산된 결과물은 부족하지만, 각각의 자식들처럼 애정을 느꼈다.
글 쓰면서 가장 큰 변화는 독서량이 많이 늘었다. 글 쓰다 막히면 무작정 머리 식힐 겸 책을 꺼내 들었다. 무언가 풀릴 듯한 힌트와 마음속 답답함의 실마리를 찾아 헤맨다. 마음을 두드리며 손뼉을 치게 하는 부분도 있고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다른 세계로 도피도 한다. 현실 속에서 할 수 없는 대범한 행동도 멋대로 해 보면서 대리 만족과 간접 경험을 한다. 마음이 조금은 정리되고 약간의 아이디어도 얻는다. 나도 이렇게 멋진 글들을 써 보고 싶다는 욕심도 부리면서.
처음에는 글 하나 쓰는 것도 쩔쩔매며 ‘어떻게 책 한 권이 탄생할까?’ 두려웠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완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진시립도서관 에세이 쓰기 13인’의 선생님들, 큰 가르침과 유머로 수업을 이끌어주신 배지영 작가님, 그런 인연을 만들어 주신 김도희 주무관님께도 몹시 감사하다.
무엇보다 엄마의 시간을 이해해주고 지켜봐 준 우리 수현이, 나윤이 그리고 나의 사랑 남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다. 격주의 주말 수업과 원고 마감으로 인한 엄마의 빈자리를 이해해주고 이야기의 소재가 되어 줬으니 말이다. 항상 묵묵히 지켜봐 주시는 부모님과 시아버님, 모든 가족과 인연이 된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