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 한스푼 Oct 15. 2024

꼭 필요한 준비물은 나대는 마음(끼)

노력하는 다이어터, 방송 댄스까지

 노력을 하는 데도 살 빠질 만큼의 노력은 아니었나 보다. 몸무게는 제자리고 헬스장을 등록해서 개인 PT를 받을까 생각했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강제적으로 꼭 가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면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마침 동사무소에서 일주일에 2번 하는 방송 댄스가 눈에 들어왔다. 총 24회에 가격이 3만 원이었다. 13만 원도 아니고 23만 원도 아닌 배춧잎 3장이라니, 매력적인 가격에 홀렸다.     


 나는 노래 부르고 랩 하며 멋지게 춤추는 ‘끼’ 있는 삶을 언제나 동경해 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체육대회를 앞두고 선배들이 집중적으로 체조 연습을 시켰다. 그것도 무려 3명이 달라붙어 개인 지도를 했다. 늘지 않는 참담한 결과를 안겨주며 선배들에게 절망을 덤으로 선물했다. 노래 또한 직장의 체력 단련회 때 부르는 관례가 있었다. 계속 못 부른다고 버티다가 용기 내어 한 번 불렀는데, 그다음부터 절대 시키지 않았다. 음 이탈 대잔치에 왜 노래를 안 하려고 했는지 단 한 번에 수긍시킨 숨은 능력자다. 그런 몸치와 박치, 음치 실력을 보유한 사람으로서 막상 수강 접수를 하려니 주저하게 되었다. 또 한 번 흑역사를 갱신하는 건 아닌지 고민됐다.     

 다이어트 목적이라고 해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였다. “니가? 춤을 춘다고? 대체 그런 용기와 깡은 어디서 나오는 건데?” 반문할 것만 같았다. 나와 춤의 연결고리는 상상이 되지 않는 조합이니까.

 ‘내가 춤출 수 있을까? 진짜 할 수 있을까? 해보라고 시키면 어쩌지? 왜 이렇게 못하냐며 수강 취소 좀 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별의별 상상을 다 했다. 왠지 싸워보지도 않고 백기 들고 물러서려는 마음이 꿈틀댔다.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닌 것 같소.” 말하려던 찰나,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방과후 확정 알람이 울렸다. 두둥! 방송 댄스 최종 당첨. 못해도 한번 해보라고 말하면서 수강 신청한 것이 둘 다 된 것이다. 막상 나는 포기하려고 하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나는 못 하면 못한 대로 연습으로 극복하면 된다고 긍정 회로를 돌리며, 모범을 보여야 했다. 날씬함은 자연스레 따라오고 멋지게 칼군무로 춤추며 변화된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동안 쉬고 있던 달리기도 시작했다. 춤도 어려울 텐데 숨까지 차서 따라가지 못하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방송 댄스를 접수하고 돈을 입금하고 나니 ‘내가 진짜 하는구나.’ 실감이 났다. 띠리링 문자를 받았는데 꼭 필요한 준비물이 실내운동화와 나대는 마음(끼)이었다. 나대는 마음(끼)이라니? 살짝 웃음이 났다. 2번이나 같은 문자를 받았는데 나대는 마음에 시선이 고정된 탓인지 실내운동화라 읽고 실내화로 잘못 입력했다. 집에서 신는 실내화(거실 슬리퍼)를 당당히 챙겨갔다. 그러면서도 왜 실내화를 챙겨오라는 거지? 의문을 품었으나 ‘뭐 필요하니까. 가져오라고 하겠지!’라며 넘겼다. 역시 이상하면 전화라도 걸어 물어봤어야 했다.     


 주민자치 센터의 문을 여는 순간, 가방에서 실내화를 빼려던 손이 멈칫했다. 신발장에 빼곡히 실내화가 있는 것이다. 살짝 당황스러웠다.

 ‘뭐지? 이렇게 실내화가 많은데. 왜? 챙겨오라고 한 거지?’ 

  나의 의문은 점점 더 커졌다.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운동화를 들고 오는 모습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실내화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어요?”

 “아니요. 실내운동화 가져오라고 했는데요?”

 가히 그 사람도 나를 보며 당황해했다. 나는 문자를 다시 읽었다. 내 눈은 그제야 실내운동화라는 글자를 올바로 읽었다. 앗! 방송 댄스 한다고 열심히 달리고 전날 실내화도 가방에 담아 준비했는데. 다 부질없는 짓을 한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맨발로 해야 하나? 첫 수업인데. 사람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나의 모든 땀샘은 개방되었다. 춤도 추기 전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왜 맨발로 있어요?”

 “아 그게. 제가 실내운동화를 실내화로 잘못 봐서..”

 “그러면 올 때 운동화 신고 왔어요? 여기 물티슈 있으니까 닦고 오늘은 운동화 신고하세요. 다음에는 꼭 챙겨오시고요.”

 다행히 한 분이 나타나 해결해 주었다. 난 그분에게서 생명의 은인 같은 감사함과 천사 같은 후광을 느꼈다.     

 선생님이 와서 인사한 다음, 신나고 우렁찬 노랫소리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작정 동작을 따라 했다. 음악은 신났지만 내 마음은 아무 설명 없이 그리고 쉼 없이 움직여야 함에 적잖이 놀랐다. 눈으로 동작을 복사해서 내 몸에 붙여넣기를 했지만, 자꾸 입력값이 오류다. 나도 모르게 “어. 어어?.. 어?”라는 소리를 무한 반복했다. 몇 개의 노래가 중간중간 바뀌면서 비트는 더 빨라지고 동작도 비례해서 격해졌다. 수강생 중 한 분은 더 활기차게 분위기를 이끌며 사람들을 돌며 웨이브를 췄다. 그분은 필수 준비물인 나대는 마음(끼)을 잘 챙겨오신 것이다.     


 한 15분 정도 지나자, 선생님의 동작이 멈췄다. 지금까지 격한 몸풀기였다. 이제야 NCT의 ‘삐그덕’이라는 안무를 숫자 카운트를 세면서 하나하나 동작을 선보였다. 선생님의 춤 선은 멋지고 역시 프로다웠다. 앞의 대형 거울을 보며 선생님의 행동을 찬찬히 살폈다. 선생님은 몇 번이고 계속 반복하며 설명하고 따라 하도록 인도했다. 막상 노래를 재생해서 춤추려고 하면, 내 기억은 벌써 증발해 있었다. 계속 반복하고 따라 하는데 이렇게 안 외워지다니! 절망할 시간도 없었다. 따라 하기 바빠 내 몸에서 영혼이 가출을 감행하고 있었다. 빠른 비트와 리듬에 내 팔과 다리는 제각각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몸과 마음은 각자도생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노래 자체도 신나고 소리도 빵빵한 데다 몸을 흔들어댔더니 뭔가 스트레스 풀리는 시점이 있었다. 이래서 댄스나 춤추기를 하구나 싶었다. 또 하나를 가르쳐주면 바로 하나를 따라하는 습득력 좋은 분도 있었다. 동작도 큼직큼직하고 춤 새가 남달라 뒤에서 보는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저렇게 바로바로 소화해 낼 수 있지? 무슨 댄스 과외라도 받는 걸까?’ 비법이 몹시 궁금하기까지 했다.     


 마무리로 정리 운동을 하며 수업 1시간이 총알같이 지나갔다. 정신없이 따라하니 금방 땡하고 끝난 것이다. 달리기 연습까지 하며 체력을 길렀지만 끝나고 나니 거친 숨이 멈춰지지 않았다. 벌써 땀은 한 바가지 쏟아지고 물에 담긴 티셔츠를 막 꺼내 놓은 것처럼 옷은 축축했다. 하얗게 불태웠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땀 좀 봐! 신입. 제일 열심히 했나 봐?”

 땀도 많은 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긴장했던 것 같다. 댐에서 수문을 열 듯 땀샘은 개방되었고 ‘엄청 열심히 춤춘 신입’이란 오해를 샀다.     


 몸은 잘 따라가 주지 않았지만 재밌고 신났다. 시킬까 봐, 못한다고 할까 봐, 괜한 걱정을 산더미처럼 했나 싶었다. 그냥 못해도 좋았다. 반복하고 익숙해지면 조금 나아질 거라고 겁먹지 말자고 나를 달랬다. 한번 가르침에 바로바로 숙지한 언니의 비결은 ‘축적된 시간’이었다. 수강 시간 외에도 따로 모임에서 연습하며 무대에 종종 섰다고 한다. 지금껏 꾸준히 해왔다는 끈기는 타고난 재능을 이긴다는 말을 실감했다.     


 다이어트 목적으로 시작한 방송 댄스, 크롭티(아래 선이 잘린 듯 약간 짧은 형태의 티셔츠)를 입고 멋있게 춤추는 분들을 보니, 이놈의 뱃살을 부숴야겠다는 자극도 받았다. 꼭 수강이 마무리되기 전에 꼭 한번 크롭티를 입고가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러려면 열심히 복근을 다져야 할 판이다.

 “살도 빠지고 복근을 드러내는 그 날을 꿈꾸려면? 지금 들고 있는 이 음식부터 내려놓아야겠지? 어서!”


#다이어트

#방송댄스

#나대는마음(끼)

#크롭티입는그날까지

#땀샘폭주

이전 15화 승부욕 때문에 아이 울리는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