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가기 전, 언덕 달리기 2회와 장거리 1회를 달렸다. 워밍업 2~3km를 달리고 15번의 언덕을 질주할 때는 숨참의 연속이지만 달리고 나면, 평지의 달리기가 쉽게 느껴지는 요술이 일어난다. 그러함에도 질주하는 20초라는 시간은 길고도 길게 느껴지고 내리막을 향하는 40초의 숨 돌릴 시간은 왜 이렇게 짧은지. 전보다 조금 더 힘차게 질주하니 한두 걸음쯤 더 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열심을 내면 그만큼 정직하게 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장거리는 16km를 달리면서 앞으로 펼쳐질 여행에 대한 걱정과 두려운 감정들을 털어냈다. 한번 겪어보고 부딪쳐 보면 많이 배우고 오게 될 것이라는 긍정 회로를 수없이 돌리면서.
나는 낯선 환경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보기에는 먹는 것도 잘 먹고 별 불만 없이 일정을 소화하는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예민함과 피곤함이 폭발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자기 일쑤이고 큰 배설(똥)도 잘 수행하지 못한다. 특히 새로운 곳을 혼자 가게 될 때면 10번은 넘게 검색해보고 스마트 폰의 내비게이션까지 켜며 걸어간다. 엄청나게 긴장하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수없이 주변 간판을 입으로 되뇌고 눈으로 확인한다. 딱 봐도 초행길임을 몹시도 티 내면서. 다만 누군가와 함께 새로운 곳을 가게 될 때는 같이 가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나는 함께 간 길임에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신비스러운 여인이다. 그 건물이 이 건물인 것 같고, 그 길이 이 길 같은 건 또 뭐랄까? 콘크리트와 시멘트의 반듯한 건물과 길은 나에게 혼돈의 카오스다. 아이러니하게 산길이나 오솔길과 같은 자연 속에서는 어느 쪽으로 왔으며 어떻게 가야 할지 잘 기억해낸다. 길치인 듯 길치 아닌 길치 같은 나를 뭐라 정의해야 할지.
일본을 갔다 와서는 20km의 장거리를 계획하고 달렸다. 일본에 있었던 내내 우리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그럴 수도 있지!”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네.”라는 말이었다. 달리면서도 아찔한 사건들과 방심한 순간마다 여러 일이 수시로 터졌던 게 떠올랐다. 처음 일본에 스카이라이너라는 철도를 탈 때 온통 한자와 일본어를 보며 이곳이 진정 외국이라는 현실을 실감했다. 스카이라이너는 좌석과 시간이 정해져 있어 편히 이동할 수 있으나 비싼 전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라인에서 타고 가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니 심장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표를 보여주며 일본 사람에게 맞는지 몇 번이고 “OK?”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잘못 가르쳐줬으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을 안고 스카이라이너에 올랐다. 다행히 우에노까지 간다는 안내 방송을 한국말로 들으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내리고 나서 캐리어를 끌고 다른 지하철로 환승하려고 가는데 남편이 뭔가 허전하다고 했다. 순식간에 남편은 스카이라이너로 ‘빛의 속도’로 뛰어 들어갔다. 순간 이동한 줄? 여권과 환전한 엔화 절반, VISA 신용카드와 트레블 체크카드, 겉옷이 들어있는 백팩을 놓고 온 것이다. 우리는 한순간에 ‘국제적 미아’가 될 뻔했다며 가슴을 백번은 쓸어내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 사건 이후부터 나는 백팩이나 핸드백 가방을 전철이나 이동 중에 바닥에 내려놓거나 선반에 올려놓지 못했다. 내 몸과 떨어뜨려 놓으면 남편처럼 놓고 내릴까 봐, 무거워도 내 몸에게 묵묵히 수고로움을 견뎌내도록 명령했다. 다녀오고 나니 어깨가 그렇게나 결린 이유인 것 같다.
20km를 계획했지만 달리면서 계속해서 언제 그만 달릴지를 고민했다. 특히나 계획했던 절반을 넘기는 시점이 오면 자꾸 내 마음은 심판대에 오른다.
‘지금 그만두고 나머지는 걸어갈까? 1~2km 더 뛰어보고 그만둘까? 그때 뛰고 싶지 않으면 그만두는 걸로.’
1~2km를 달릴 명목을 얻고 다시 힘을 낸다. 계획한 만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고 싶다는 마음과도 줄다리기한다.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는 희망 고문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그렇게 뛰고 싶었던 20km를 쉬지 않고 뛰었을 때는 기쁨이 몰려왔다. 42.195km의 막연한 거리에서 절반이 가까워진다는 것은 나에게 긍정적인 신호였다. 풀코스라는 거대했던 벽을 넘을 수 있다는 것, 더 열심을 내면 꼭 완주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나에게 절실했다. 때론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은 나를 미치게 불안하게 만들면서 조급하게 만드니까.
일본에선 화장실 물 내리는 문제 또한 어찌할 줄 몰라 당황했다. 버튼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변기도 있었지만 분명 물 내리는 버튼이 있는데 눌러지지 않는 것도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비지땀을 흘리며 노상 방뇨 하듯 누런 물을 남긴 채 황급히 나온 곳도 있었다. 다음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첩보 작전을 펼치듯 살피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 손바닥을 펴서 그 센서에 대면 물이 내려간다는 것을 알았다. 와~ 진짜! 이 원리를 발견하고는 이제 눈치 보지 않고 화장실을 당당히 나갈 수 있음에 어찌나 기쁘던지.
72시간 트랜스 패스(도쿄 메트로와 도에이 지하철 노선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티켓. JR 노선은 포함되지 않음.)를 이용하여 도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며 걸었는데 2만 보 이상을 매번 넘겼다. 오히려 바짝 2시간 달리고 3만 보를 찍는 것보다 하루 종일 2만 보를 걷는 게 더 힘들게 느껴졌다. 아이들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서, 힘들다고 투덜대면서도 잘 따라 와줬음에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지하철은 하루가 지나니 어떻게 타야 하는지 익숙해졌고 내가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는 위엄도 발사했다. 이제껏 나는 길을 갈 때 일행을 앞질러 걸어가 본 적 없는 사람이다. 외국이라는 특수성이 수동적인 나를 능동적인 사람으로 탈바꿈시켰다. 내가 가리키는 대로 가족 전체가 움직이니 신기하면서도 뭔가 대장이 된 듯했다. 하필 그 때, 작은 아이가 지하철을 내리면서, 발이 틈 사이에 빠져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다행히 앞에 있던 일본 사람이 작은 아이를 잡아 올려주었고, 빠진 다리가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작은 아이는 깜짝 놀라 눈물을 쏟았고 나는 정신이 아찔했다. 아이를 잘 챙기지 못했음을 반성했다. 숙소에 들어와 살펴보니 다리에 멍이 들어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지하철 탈 때면 손을 꼭 잡고 발 조심이라고 말하며 천천히 건넜다.
20km를 달려봤으니 다시 20km를 계획하면 전보다 더 쉽게 장거리를 달릴 줄 알았다. 두 번째 20km는 공사 중으로 인해 강제 반환해야 했다. 결국 계획이 틀어졌고 13km가 지나고 나자 배가 당기기까지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쳤지만, 멈춰 서고 싶다는 마음이 계획한 거리를 뛰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이겼다. 16.34km를 달리며 멈춰 섰다. 벌컥벌컥 남은 물을 마시면서 머리 속은 복잡했다.
‘좀 더 참고 뛰었어야 했는데. 의지가 이렇게 약해서 과연 풀코스를 뛸 수 있겠어?’
목표를 채우지 못한 나에게 몇 번이고 핀잔을 주었고 마음이 파도치듯이 흔들렸다. 일본에서 우리가 자주 했던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이 생각났다.
‘계획한 대로 못 할 수도 있지. 대신 나머지 보강 운동으로 집에 있는 실내자전거를 타자. 그럴 수도 있으니 너무 자책하며 나를 괴롭히지 말고!’
나를 다독이며 실내자전거를 탔다. 철인 3종 경기를 준비하는 여자 연예인의 모습을 그린 [무쇠소녀단]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함께 운동하면서 경쟁한다고 생각하며 페달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