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본에서 수없이 외쳤던 “그럴 수 있지!”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다. 여행에 너그러움이 필요할 때와 방심하지 말자고 말할 때 썼던 말이다. 아이들은 수없이 티격태격 싸워대며 내 마음속 마그마를 분출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럴 때 물 한 바가지를 뿌리는 위력의 말이 “그럴 수 있지!”였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도록 주문을 외웠다. 또한 방금 밥 먹고 돌아섰는데 배고프다고 난리일 때는 어금니를 깨물며 그럴 수 있지를 말했다. 편의점 VIP가 될 정도로 수시로 먹이를 공급해주기 위해 일정 중간중간 멈춰 섰다.
도쿄 도청에서 불빛 쇼를 보며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롯본기역에 내려 코앞의 숙소로 향할 달콤함에 젖어 있었다. 고단했던 일정을 끝나고 신발 벗고 벌러덩 침대에 눕는 상상에 모든 피로감이 몰려왔다. 갑자기 큰 아이가 메는 가방을 사라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기념품 사라고 준 엔화와 이름이 각인된 도쿄도청 열쇠 키링, 디즈니랜드에서 찍은 기념주화들이 들어 있었다. 별 값비싼 것은 들어 있지 않았지만, 아이의 추억이 모두 날아간 것 같아 다시 지하철을 타고 되짚으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되돌아갈 땐, 입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지!”와 “진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구나.”를 반복했다.
다행히 가방을 찾을 수 있어서 되돌아간 보람은 있었다. 결국 삥삥 둘러 한 시간이 더 지나서야 숙소에서 쉴 수 있었다. 그렇게 낯선 곳에서 잘 자지 못한다고 했던 나인데 일본에서는 매일 푹 잤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챙기고 지하철 안내를 하며 영어로 대화하며 음식 주문을 했기에. 숙소에 오면 모든 긴장감이 풀린 탓인지 누우면 바로 잠드는 마법을 경험했다. 몹시도 예민하지 않은 면모에 나도 깜짝 놀랐다.
마지막 날이 가장 심장이 쫄깃쫄깃 한 경험을 했다. 내 생명줄이 5년은 단축된 기분이었다. 남편이 작은 가방도 수화물로 넣자 갑자기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내 가방에 넣은 것이다. 작은 아이는 콧물을 자꾸 흘려 화장지와 물티슈를 꺼내다가 트래블 체크카드를 분실한 듯 하다. 거기에는 엔화로 환전한 금액을 카드로 쓸 수 있었다. 물론 사용하면 스마트 폰에 알람이 뜨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편함이 가득했다.
또 갑자기 비행기가 40분이나 늦게 출발하면서 리무진 탈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원래 제1 터미널에서 짐을 찾고 저녁밥을 먹으며 천천히 리무진에 탈 계획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제2 터미널로 예약을 잡아놨고 짐이 무겁다며 가방을 4개나 붙이는 바람에 짐 찾는 시간도 배로 걸렸다. 시간은 다가오는데 짐은 나오지 않고 돼지코(일본은 110V를 사용해서 변환하는 장치)도 통신사에 반납해야 하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겨우 캐리어와 가방을 찾아 경주마가 되어 달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통신사를 찾겠다며 뛰었고 나보고 아이들을 챙겨서 터미널 맞은편에 있으라고 했다. 터미널 맞은편 어디에 서 있으라는 말도 없이 사라졌고 리무진 버스는 터미널 맞은편이 아닌 바로 앞쪽으로 줄줄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남편에게 전화해도 받지 않고 집으로 가는 리무진 막차인데 이걸 놓이면 어쩌나 화가 나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다.
겨우 남편과 전화가 되었고 남편은 6번 게이트로 오라고 해서 달려갔다. 거기는 경기도 지역 리무진이 즐비했다. 키오스크 같은 검색대에는 당진이라고 몇 번을 쳐도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태안으로 검색해야 했다. 버스 기사님들에게 어디에서 타는지 물었으나 하나같이 모른다고 했다. 터미널 안에 들어가 표 끊는 곳에 가보라는 말을 듣고 안내를 받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는 제2 터미널 게이트라서 제1 터미널에서는 6번이 아닌 11번 게이트에서 타야 했다. 캐리어를 끌고 다시 11번 게이트로 아이들과 나와 남편은 질주했다. 마치 뒤에서 사자라도 쫓아오는 것처럼. 출발시간이 1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남편과 막 통화할 때 11번 게이트에 있었는데 되돌아가려니 화딱지도 났다.
무엇보다 남편은 돼지코를 반납하기 위해서 사라져 놓고 돼지코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어디에는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통신사를 찾아 헤맸다고 했다. 결국 남편은 시간이 촉박해서 포기하고 돌아왔다. 나는 돼지코 반납 비닐을 꺼내며 제1 터미널에는 12번 게이트라고 쓰여 있는 걸 발견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과 같은 마음과 지금 11번 게이트인데 이걸 1분도 채 남지 않는 상황에 반납할지? 말아야 할지?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돼지코를 쥐고 경주마가 경주하듯 12번 게이트 안으로 들어와 통신사를 찾았다. 즐비하게 줄 서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행히 무인반납기를 발견하고 직원분께 남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겨우 반납했다. 남편에게 전화가 계속해서 왔고 나는 있는 힘껏, 죽을힘을 다해 11번 게이트로 뛰었다. 이렇게 달리기 연습한 걸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니, 인생에서 무엇이든 배워놓으면 써먹는 날이 있다는 걸 실감했다.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고 버스를 탔다는 안도감에 긴장감이 딱 풀렸다. 이제야 1시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원래 늦게 도착하면 편의점에서라도 아이들이 먹을 것을 사서 먹이려고 했다. 이놈의 게이트 찾는 문제와 돼지코 반납 때문에 혼이 빠져나갈 경험을 했고 저녁밥 따윈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제야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밀려왔다. 아이들도 우리가 갈팡질팡 못 찾아 헤매는 동안 같이 뛰어다니느라 정신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리무진에 내려 9시가 다 되어서야 감자탕집에 들어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어찌나 김치가 그리웠는지 모두가 김치부터 먹으며 감탄했다. 일본의 모든 일정을 무사히 끝냈고 집으로 곧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먹는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달리기에서도 계획한 만큼 뛸 수 없는 것처럼, 여행에서도 계획대로 되지 않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변수는 중간중간 존재했고 돌발상황도 빵빵 터졌다. 마치 나는 이 상황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여전사가 된 것 같았다. 돈을 들이면서 고생을 체험하려고 낯선 곳을 가는 일이 여행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계획했던 볼거리를 찾다가 중간에 포기도 했다. 가족들의 힘듦을 보며 내 욕심을 채울 수 없었기에. 서로를 탓하려는 마음이 툭툭 튀어나오려고 할 땐, 어금니를 꽉 깨물며 그럴 수 있지를 외쳤더니 조금은 비난의 화살을 멈출 수 있었다.
11월에는 뜻하지 않은 일본 여행과 주말마다 행사, 아이들 참관 수업까지 잡혀 있어 달리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 부분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더 열심히 내야 기록도 좋아지고 풀코스도 5시간 안에 완주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텐데, 그럴 수 없음에 조급했는지도.
달리며 땀을 쏟고 개운하게 씻고 나오니 복잡미묘했던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나를 뒤흔들던 감정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달리기하러 나갈 수 없는 날에는 근력운동이나 맨손 운동을 하거나, 한 걸음 전진을 위해 푹 쉬며 재충전하고 있다고 여기면 된다. 안달복달하지 않고.
이번 달 중간 결산을 하니, 언덕 15회 2번과 장거리 3번을 해서 총 5번밖에 달리지 못했다. 거리도 66.94km로 저조하다. 남은 기간 뛸 수 있을 때 열심히 뛰어서 거리를 보충해 나가야 겠다. 포기하지 않고 가다 보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한다. 다만 가는 길이 즐겁고 행복하길 오늘도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