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제사와 시아버님 생신 축하 겸, 시가인 창원에 내려갔다. 장작 4시간 반에서 5시간 정도의 거리는 매번 ‘몹시도’ 먼 거리를 실감한다. 금요일에는 전을 지지며 제사를 드렸고, 토요일에는 시아버님과 옷 가게에 들어선 지 5초 만에 생신 선물을 골랐다. “뭐시라고 이런 걸 사?”라며 하셨지만, 막상 입으시며 “내가 간판이 좋으니까.”라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토요일에는 지금이 가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덥더니, 일요일부터 날씨가 급변했다. 도톰한 옷 사이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상당히 쌀쌀했다. 장거리 탓인지, 쌀랑해진 날씨 탓인지, 월요일부터 달리기를 살짝 미루고 꾸물꾸물 쉬고 싶었다.
달려야 쓸 수 있는 에세이를 시작했으면서 달리지 않는 심정은, 마치 공부해야 하는데 공부는 하지 않고 걱정 가득이면서 ‘열심히 필통 정리’만 하는 기분이었다. 화요일에는 인덕션 AS로 인해서 하루가 다 갔지만 소방 차단기의 문제였음에 허탈했다. 장작 5시간 동안 전투적으로 싸우며 날 선 감정을 드러냈음에 몹시도 부끄러웠다. 수요일에는 방송 댄스와 아파트 유리창 AS로 달리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자꾸만 계속되었다. 일정이 없는 목요일이 되어서야 복잡한 마음을 달리기로 달래자며 나아갔다.
‘딱 일주일만이네. 너무 오랜만에 달린 것 아니야?’
‘푹 쉬었던 만큼, 열심을 내어 20km 한번 달려보자. 할 수 있어! 두 걸음 전진을 위해서 난 한 걸음의 힘도 비축해놨던 것이니까. 힘내자!’
그렇게 달려 나갔다. 쉬었던 만큼, 확실히 컨디션은 괜찮았다. 인덕션 AS로 인해서 일주일이 넘게 불편함이 계속되자, 잘 기다리자 했던 마음이 폭풍우 쳤다. 괜히 전기 문제가 아니라 인덕션의 문제라고 확정지었던 첫 번째 기사님 덕분에, 또 2차로 AS를 받았다. 결국 AS 비용을 2번 청구받아야 한다는 말에 화가 났다. 인덕션은 문제없다는 걸 확인했지만 처음부터 정확하게 알려줬다면 다른 조치를 취했을 것이고 계속해서 AS를 기다리며 이런 불편함을 겪지 않았을 테니까.
소방 차단기의 문제 접수를 하니, 일주일 정도 또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암울했다. 인덕션은 화력이 너무 세서 신축 아파트는 단독 선으로 배선 작업을 한다는 사실과 우리가 이용하는 독일 제품은 콘센트를 빼고 직결로 연결한 제품이라는 걸 새로 알았다. LG나 삼성 제품들은 코드를 꼽아 쓰는 형태라는 것도. 인덕션을 처음 써보거니와 직결로 연결해주니 다 그런 줄 알았다. 소방 차단기가 고쳐질 때까지 또 얼마를 기다려야 인덕션을 온전히 쓸 수 있을지, 나의 성격 급함을 단계별로 테스트 받는 것 같았다.
마음이 복잡했던 만큼, 달리는 데도 잡념이 많았다. 그런 감정들과 싸우다보니 4km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제야 옆의 당진천의 모습도 보였다. 자연은 저렇게 순리대로, 잔잔히 평화로워 보였다. 내 감정의 들쑥날쑥한 마음을 툭툭 떨어내며 힘내보자 했다. 아이고! 너무도 힘을 냈던가? 진흙에 발을 잘못 내디디며 온몸이 휘청했다. 매트릭스의 주인공처럼 손을 허공에서 몇 번이나 휘저었다. 보기좋게 슬라이딩 되었다. 무릎과 정강이, 운동화, 두 손바닥이 진흙 범벅이었다. 이렇게 뛰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20km는 아직도 멀고 먼데 어쩌지? 고민스러웠다.
우선 당진천에 가서 손을 씻고 무릎의 흙을 몇번이고 덜어냈다. 그 짧은 시간에 무릎이 쓸렸는지 물이 들어가자 따끔따끔 쓰라렸다. 대충 흙 범벅인 상태를 덜어냈지만 ‘나는 열심히 미끄러졌소’를 단단히 말해주는 것 같았다. 피가 흐르는 무릎을 슬리브(반스타킹 같은 형태로 종아리를 잡아주는 것)를 올려 덮고 다시 뛰었다. 한번 휘청하니 달리는 페이스가 뒤흔들렸다. 7분 50초라는 알림을 받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집중해야 한다는 것과 남은 시간을 좀 더 힘을 내서 만회해야 했다. 감정적으로 복잡했던 마음은 이제 달리는 것으로만 채우자며 마음을 다졌다. 이제야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무릎의 쓰라림이 느껴졌다. 그래도 계획한 20km를 뛰고 싶었다. 이번 달 모자란 운동량을 채워야 한다는 임무를 반영하기 위해서.
15km를 넘어서자, 하프 거리인 21.0975km를 뛰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달리기의 중간 점검, 그러니까 ‘풀코스의 절반인 하프를 얼마큼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 체크 해야 했다. 그렇게 진흙 슬라이딩에 잠시 주춤했지만 계속해서 달리니 계획한 거리를 온전히 뛸 수 있었다. 딱 21.13km를 2시간 33분 25초에 달렸다. 하프거리인 21.0975km보다 300m 정도 더 많이 뛰었지만, 페이스를 좀 더 높여야 함은 숙제로 다가왔다. 하프 거리를 뛰고 나니, 풀코스의 절반을 왔고 앞으로 절반을 꾸준히 나아가면 완주할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들었다. 여러 일정과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이겨낸 것 같아 기특했다. 물론 조금 더 열심을 내서 틈틈이 달려 나가야겠다는 마음도 살포시 겹쳤다.
금요일 방송 댄스를 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달리기를 계획했다. ‘다시 20km를 뛸까?’ 했지만 전날 장거리를 뛰었고, 방송 댄스 후라서 생각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몸에서 ‘힘이 듦’이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12km 골드런 대회를 대비하자고 계획을 바꿨고 거리를 하향 조절했다. 스피드 훈련을 위해서 접수했으나 정작 스피드 훈련을 하지 않는 모순적인 나의 달리기.
진흙 슬라이드 한 곳을 지나가며, 이제는 넘어지지 않을 거라며 속도를 조금 줄이며 조심히 지나갔다. 달리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열심히 달리는 발걸음이 느껴졌다. 잠시 길가로 붙으며 그 사람이 지나가길 바랐다.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가더니 점점 거리가 벌어졌다. 순간, 나의 달리기 속도는 ‘느림보 거북이’가 된 것 같아 움츠러들었다. 남과 비교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순간순간 드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 나는 조금 느려. 하지만 조금씩 빨라지고 있어. 잘 달리는 사람과 자꾸 비교하다 보면 자꾸 나를 괴롭히며 채찍질하겠지? 난 어제의 나, 과거의 나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거야. 지금 나의 속도는 가장 즐겁고 행복하게 달릴 수 있는 최고의 속도야. 그러니까 흔들릴 필요 없어. 흔들려도 다시 제자리로 뿅!’
나를 달래며 다시 한 걸음 나아갔다. 달리기를 하다보면 감정적인 부분을 정리해 나갈 때도 있고, 흔들리는 내 마음을 일으켜 세울 때도 있다. 온전한 나 자신을 안으며 내 감정에 솔직해지면서 ‘그럴 수 있으니까. 괜찮아.’로 받아들인다.
9km부터는 몹시 힘들었다. 아무리 나에게 파이팅을 외쳐도 더 이상 힘이 나지 않았다. 자꾸만 10km만 뛰고 멈춰 설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멈춰서야 하는 걸까? 수없이 달콤한 유혹에 흔들거렸다. 겨우겨우 있는 힘을 다해 10km를 넘겼고 10.6km 정도에 반환점을 돌아 남은 거리를 채우려고 했다.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는데 12km가 그렇게 먼 거리였나? 확 포기하려는 마음이 99.9%였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가는 분이 지나가며 엄지척을 하고 가지 않는가? 순간 없던 힘이 급속으로 충전되었다. 누군가 말없이 건넨 그 엄지척 ‘따봉’에 나는 포기하려는 99가지 이유를 물리쳤다. 어쩌면 여기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골드런 대회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남은 거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1가지 이유를 증명해야 했다.
12km하고도 100m를 달리고 난 다음에야 온전히 멈췄다. 이겨냈다는 벅참이 있었고, 포기하려던 마음에 무심코 건넨 그 따봉이라는 엄지척을 해준 달리던 ‘그 사람’이 몹시도 고마웠다. 때론 나 자신의 응원만큼, 남이 해준 응원이 앞으로 나아가게 함을 실감했다.
몹시도 바쁜 11월, 저번 주까지 66.94km를 뛰었고 이번 주는 33.23km를 달렸다. 합하여 딱 100.17km를 뛰었다. 이번 달 남은 기간은 일주일, 그런데 이번 주말은 친척계 모임, 다음 주말은 김장까지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남았다. 대회까지 2주일 남았는데 약간의 조급함도 있고, 어떻게 남은 시간을 활용할지 고민도 되는 시점이다. 이번 달은 계획했던 대로 달리지 못하자 비겁하게도 ‘대회를 취소 할까?’라는 마음도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피하려고만 한다면 나는 대회만이 주는 피드백, 결과를 냉정하게 받아들일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이라 생각하며, 포기하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때론 그 결과 앞에 서서, 나를 다시 점검하고 반성하며 앞으로 도약해야 한다. 잘하든, 못 하든 좀 더 잘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언제나 후회는 남을 테지만.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기로 했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니까.
다음 주는 장거리는 1회와 언덕을 2회 연습하고, 12km 달리기를 1회 함으로써 주 4회 뛰는 것을 목표로 계획했다. 실내 자전거와 로잉을 통해서 근력과 유산소를 병행해서 체력적인 기본기도 다져야 한다.
“하면 된다. 할 수 있으니, 간절한 마음을 품고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나아가면 된다. 조금씩 풀코스를 달릴 몸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을 테니까. 묵묵히 나는 열심히 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