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성실히’ 연습했는가?

감정의 꿈틀거리는 움직임과 마주하기

by 행복 한스푼

골드런 마라톤을 접수했는데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 몰랐다. 중간에 시아버님 생신과 시어머님 제사, 친정 엄마와 아빠의 생신 겸 김장까지 너무도 바쁜 일상을 보냈다. 12월이 금방이라는 말밖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눈이 왔고, 잠시 달리기도 멈췄다. 빙판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자칫 다치기라도 하면, 대회는 아예 시작도 못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온전히 내 몸이 아니다. 우리 가족의 몸이므로 몹시도 귀하게(?) 몸을 사려야 했다. 그러면서 배번을 받고서야 대회를 실감했고 대회 전 카보로딩(경기나 운동 전에 탄수화물을 효과적으로 축적하여 운동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전략적인 식사 방법)만 열심히 했다. 일명 운동은 안 하고 합법적으로 열심히도 먹었다는 얘기다. 힘들게 몇 킬로 빠진 살들은 누군가 순식간에 살을 부쳐놓는 것 같은 비극을 맛보았다.


감정적으로도 많이 흔들렸다. 대회를 앞두고 올해 상반기 동안 준비했던 책이 출판되었다. 완주했다는 기쁨보다는 부족한 분량과 완성도가 걱정되었다. 출판도 다 된 마당에. 지인들에게 굽신굽신하며 한 권씩 사달라는 말과 출판기념회에 초대하는 과정에서 감정의 변화가 생겼다. 처음엔 축하도 받으며 둥둥둥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감과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실물의 책을 받아보기 전이라 ‘인쇄는 잘 되었을지? 완성도는 괜찮을지? 과연 사람들이 진짜 사줄지?’까지. 또 다른 선생님들의 책들을 받고 비교하는 마음이 꿈틀했다. 1인 출판처럼 표지며, 목차, 내지의 디자인과 교정과 교열 등 모든 과정을 해봤다는 경험은 앞으로 글을 써나갈 커다란 발판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었다. 비교라는 잣대로 나의 모든 노력이 배신당한 것 같았다. 하필이면 대회 전날.

상반기 동안 준비해서 출판한 "버티고 견뎌내며 성장중입니다만"

대횟날 아침, 5시에 일어나 아이들을 챙기고 금산으로 향했다. 물론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 몸만 실으면 됐지만, 대회가 주는 긴장감에 아이들이 서로 다투는 소리에도 예민해졌다. 준비를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에 심장이 자꾸 두근거렸다. 괜찮다고, 연습한 대로 하면 된다고 하면서도 ‘괜히 대회는 접수해서 고생을 사서 하는구나!’ 후회했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12km 정도는 충분히 연습했던 거리지만, 빨리 달리는 스피드를 완성하지 못했으니까.


전날 긴팔, 긴바지, 모자 등 날씨가 추우니 방한에 신경을 쓰라는 전마협(전국마라톤협회) 문자를 받았다. 나는 얇은 긴팔과 조끼를 입었고 바지는 쇼츠(짧은 바지)와 슬리브(반스타킹 형태의 종아리를 감싸주는 것) 형태라서 바람이 바지 속으로 쉼없이 들어왔다. 달리기 전에 몸통이 들어가는 큰 비닐을 쓴 채, 몇 번 왔다 갔다 질주를 하며 몸을 데웠다.


소규모 지역이라지만 대회 입구 쪽에 몇 개 있는 화장실이 전부였다. 다행히 여자 쪽은 참가 인원이 적어서 줄이 짧았지만, 남자 화장실은 줄이 제법 길었다. 대회에 참가하지도 않은 남편이 ‘화장실 수가 이렇게 적으면 어쩌냐!’며 열을 올렸다.

출발선에 서자 여러 마음도 교차했다. A조는 12km를 50분 안에 달리는 사람들이 섰고, B조는 나머지 사람들이 섰다. 역시나 잘 달리는 사람은 많았다. A조에 선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세상에나! 1km를 적어도 5분안에 뛰다니! 어떻게 그렇게 잘 달릴 수 있지? 그래도 나는 내 페이스대로!’

A조 부분에는 여자 선수들도 몇 보였다. 신경은 몹시 쓰이지만 절대 신경 쓰면 안 된다. 나는 나의 페이스로 12km를 달려야 한다. 자칫 남의 페이스에 휘말리면 중간과 끝에 맥없이 무너짐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B조에 섰다.


출발 직전, 날씨가 추웠으므로 아이들과 남편은 차로 향했고 나는 이제 혼자가 되었다. 여러 사람 속에 있었지만, 괜히 혼자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후 A조가 출발했고 B조도 뒤를 따랐다. 우르르 사람들의 발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B조 앞부분에 서 있어서인지 내 뒤의 모든 사람이 나를 계속해서 추월해 갔다. 나는 달리고 있었지만, 자꾸 뒤로 가는 느낌. 처음에 사람들을 추월하려고 힘 빼지 말자고 했는데 나에게 추월당할 사람은 없어 보였다.


1km를 지나 나의 체온을 유지하던 비닐을 벗고 달렸다. 어느 순간 뒤에서 “김작가, 잡아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했는데 페이스메이커를 해주려고 남편이 뒤따라온 것이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마치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남편은 대회 복장도 아니었고 스마트워치도 가져오지 않은 상태였다. 자신 없어 하는 나에게 “페이스메이커라도 해줘?”라고 말했지만 거절했었다. 대회 끝나고 운전도 하고, 내가 뛰는 동안 아이들도 봐야 하니까. 남편이 오기 전에는 천천히 내 페이스로 완주만 하자던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왕이면 좀 더 열심히 뛰어보는 걸로.


남편은 페이스는 내가 뛰던 페이스보다 20초 정도 빨랐다. 나는 6분 40초 대가 편했는데 6분 20초 대로 자꾸 나를 이끌었다. 그래도 대회가 주는 힘 때문인지 그 속도를 유지하려고 열심히 뛰었다. 4킬로 지점에선 벌써 반환해서 뛰고 오는 선수들과 마주쳤다. 아무리 앞서 뛰었다고 하지만 엄청난 속도에 입이 벌어졌다.

‘아 저게 사람이야? 말이야? 경주말이 따로 없네! ’

지금 나를 지나쳐간 선두그룹의 사람들은 100m 단거리를 달리듯 질주했다. 그들에게 잠시 시선이 빼앗겼다. 부러운 마음과 함께.


날씨는 추웠다. 특히나 허벅지의 맨살은 얼음장 같았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 묵직한 다리를 끌고 가는 기분이었다. 또 하천을 지나 다리를 건너자 바람이 직방으로 강타했다. 시베리아 벌판과 마주한 나를 보았다. 방한을 더 신경 써야 했다. 뛸 때 조끼 때문인지 티셔츠가 자꾸 배 위로 말려 올라갔다. 배가 몹시 차가워지자 티셔츠를 내리려고 앞으로 휘저어야 할 팔과 손이 자꾸 배로 갔다. 차라리 조끼보다 바람막이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스마트워치와 대회 거리는 300m 정도나 차이 났다. 분명 km마다 정확하게 안내했었다. 8킬로 지점을 지나자 알람은 표지판을 한참 지나서야 울렸다. “이게 아닌데! 스마트 워치랑 거리 차이가 너무 나!”라며 당황했는데, 남편은 진지하게 “마지막이니 앞으로 10명만 잡자!”며 속도를 올렸다. 벅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놓이지 않으려고 남편이 급수하는 동안 나는 급수도 하지 않고 급수대를 지나쳤다. 그렇게라도 거리를 만회하려고 애썼다. 마지막으로 5명 정도를 따라잡으니 결승선이 저 멀리 보였다. 200m가 2km처럼 무척 길게 느껴졌다. 다 왔는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뭘까? 헉헉헉 거친 숨소리는 이제 편하게 숨 쉴 정도로 속도로 낮추어 달리고 싶었다. 매우 간절히도.


거친 숨에 호흡이 딸리는 듯한 경험을 하고서야, 띠띠띠 결승선을 통과했다. 편하게 계획한 거리를 뛰고 오겠다며 욕심 없이 출발했었다. 남편을 만나 계획은 보기 좋게 틀어졌다. 좋은 쪽이지만 죽을 둥 살 둥 미친 듯이 뛰었다. 진짜 내 심장은 폭주했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거친 숨에 살아있음을 제대로 느꼈다. 결국 대회를 이렇게 마쳤다.


요즘 달렸던 기록 중에 가장 나은 시간이지만, 전체 순위와 여자 순위를 보는 순간, 나는 몹시도 못 달리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전체는 1508명 중에 1114등, 여자 순위는 316명 중에 213등, 30대 여자 순위는 73명 중에 48등이었다. 특히나 여자 전체 순위와 30대 여자 순위는 현 나의 달리기를 돌아보게 했다. 중간보다 훨씬 밀려버린 순위. 현실을 인지해야 했고 열심을 내야 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대회를 앞두고, 죽을힘을 다하지도 않았으면서. ‘혹시 실수로(?) 연대별 15위까지 주는 트로피를 14등으로 받으면 어쩌지?’ 행복하지만 터무니없는 상상을 했었다. 산산이 무너진 씁쓸한 마음을 안고 기다란 줄을 기다려 완주 메달에 이름과 기록을 새겼다. 오천 원을 주고, 딱 1초 만에 끝나는 각인을 보고 있노라니 좀 더 열심히 뛰어야 했다는 아쉬움과 씁쓸함이 자리 잡았다. 심장이 더 터져버리도록, 폐가 더 찢어지도록 달렸다면, 과연 후회가 덜 남았을까?

대회를 뛴다는 것은 현재의 지금 나의 위치를 냉정히 돌아보게 한다. 이번 코스는 솔직히 오르막길도 전혀없었고 힘든 코스도 없었다. 물론 다소 추웠던 점만 빼면. 내년 목표는 아직도 멀고도 먼 풀코스 완주이고, 지금은 조금씩 그럴 몸을 만들어야 했다. 그 풀코스를 향하는 과정이 매 순간 도전이겠지만, 그 허들을 성실히 넘어야 함을 도전받았다.


내년 3월 2일 경기마라톤 하프를 도전해 볼까? 한다. 남편과 진검승부를 견주어보는 걸로. 남편은 자신이 달리기 연습하지 않아도 나의 하프 페이스메이커는 충분히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나를 자극했다. 그렇다면 열심히 연습해서 반전 드라마를 써야 했다. 원래 역전할 때 더 재밌고 통쾌하다는 걸 보여주고 말겠다며 칼을 갈아보는 걸로. 몹시도 섬뜩하고 무섭게끔.

잘하겠다는 욕심을 조금 부려보고 싶다. 그에 합당한 노력의 땀방울을 뚝뚝 흘리면 된다. 이 추운 날씨에도 달리러 나온 이유다. 하프를 조금 넘은 22.1km라는 거리를 눈바람까지 맞으면서 계획한 거리를 채웠다. 뛰고 나니 훈장처럼 피곤함과 뻐근함이 몰려왔고 나의 방식으로 남편을 이길 전략을 짜야 했다. 체중 관리와 오르막길을 위한 근력 기르기, 틈틈이 스쿼트와 로잉, 실내 자전거로 겨울 보충 운동을 해나가야 한다.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나도 필사적으로 체육인처럼 운동해야 함을 다져본다.


#골드런마라톤12km완주를통해앞으로더나아가길

#갑자기달려온나의페이스메이커

#다음대회는경기하프마라톤

#역전의드라마를쓰기위해마음의칼날을갈며

#성실히나아가는러너가되길

#달리기에진심

#나만의방식으로남편을이길수있을까?

#겨울달리기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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