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번지피지오 체험기
스피닝으로 고통받던 앞 허벅지가 괜찮아진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다음 운동을 할 시간이 왔다.
번지피지오는 버디의 위시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고, 나도 몸을 로프에 맡긴 채 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머릿속에선 어릴 때 타던 방방을 회상하며 이번엔 아주 쉽게 할 수 있을 운동이라 생각했다. 덕분에 가기 전까지 몹시 설렜다. 이번 운동은 내가 잘 뛰기만 하면 로프가 나의 무게를 당겨주어 가볍게 공중에 떴다가 사뿐히 내려올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며.
숨 가쁘게 회사를 마치고 부지런히 걸어 번지피지오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일개 직장인은 자주 볼 일이 없는 연습실 같은 풍경이 펼쳐져 마음은 이미 새로운 곳에 왔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천장에 깊게 고정되어 있는 로프들을 보니 기분이 들뜨었다. 환복을 하고 나와 로프 앞에 섰다.
당장 로프에 매달린 하네스에 발을 끼워 탄성을 즐기고 싶었지만, 이제 어떻게 적다고 우겨볼 수도 없는 나이이기에, 얌전히 선생님의 에스코트를 기다리며, 사방이 거울인 이 공간을 감상했다.
시련은 멀리 있지 않았다. 행복하게 운동이 시작될 줄 알았지만, 웁스.
선생님은 우리 몸무게의 앞자리를 물어봤다.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는데, 선생님은 무게 별로 로프를 달리 해야 하니 편하게 말해달라 하셨고, 우린 오늘 아침에도 각자의 F45 스튜디오에서 재고 온 인바디 기록에 대해 이야기하며 탄식을 금치 못하는 상태였다. 간신히 잊어버린 우리의 여러 가지 퍼센티지와 무게가 다시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릴 바라보는 선생님에게 멋쩍게 앞자리를 고하고 나니 들뜬 마음은 조금 차분히 가라앉아버렸다.
생각해 보면 번지점프도 하기 전 체중을 재는데, 왜 이건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까?
알맞게 로프를 교체해 주신 후 로프를 이용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코어가 훌륭한 버디는 스트레칭도 곧잘 따라 했고, 로프에 걸린 발로 인해 발생하는 흔들림을 아주 잘 통제했다. 흡사 대나무 같은 모습이었다. 고난과 시련에도 꼿꼿하게 서있는 대나무.
나는 스트레칭은 곧잘 따라 했지만, 이리저리 나부끼는 낙엽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바닥에 디딘 한 발로 콩콩이를 뛰어댔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 조금 수치스러웠지만, 뭐 사방이 거울이었기에 어쩔 방도가 없었다. 그냥 즐겼다 나의 수치스러움을.
본격적으로 하네스를 착용하고, 로프에 걸어 필요한 동작을 하나씩 배워보기 시작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앉았다 일어나기부터 시작했다. 이때까지는 로프가 다 알아서 해줄 거란 믿음이 있었기에 선생님을 따라 정강이와 허벅지가 90도가 되도록 스쿼트 하듯이 주저앉았다. 내 허벅지로 버티지 않아도 되니, 허벅지에 가해지는 가벼운 압박이 좋았고, 앉아서 느껴지는 로프의 탄성이 신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일어날 땐 달랐다. 로프의 탄성을 이용해서 타이밍에 맞춰 일어나지 못한다면 온전히 나의 힘으로 일어나야 했고, 타이밍을 맞춰서 일어난다고 한들 로프가 그렇게 강하게 당겨주진 않았다.
선생님이 앞으로 상체는 집에 갔다고 생각하라던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전신운동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꽤나 하체 집중 운동이었다. 동작을 몇 번씩 반복해 보고 일어서는 타이밍을 알듯 말듯한 상태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다. 스쿼트 자세에서 일어날 땐 발사가 아닌, 일어나는 것이라 알려주셨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피지컬은 모 아니면 도의 상태로, 발사 아님 불발이었다.
동일하게 런지와 사이드 런지 동작을 연습하고, 동작마다 함께 할 손동작도 함께 연습했다. 런지 후 발을 뒤로 모아 제자리로 가야 함을 알려주기 위해 선생님이 손을 뒤로 보내는 모션을 했는데, 이도 같이 해야 하는 율동이라 생각하여 똑같이 따라 했다. 잠시 후 이건 왜 따라 하냐는 선생님의 말에 그 스튜디오의 모든 사람이 배가 아프게 웃었다. 난 당연히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버디는 하지 않았다. 소박한 배신감이 약간 느껴졌지만, 재밌었기에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배운 동작은 무릎을 살짝 굽힌 채 위가 아닌 앞으로 뛰었다가 착지하는 동작이었는데, 번지피지오를 검색해서 볼 수 있는 사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작이다. 응당 번지피지오를 하러 왔기에, 이 동작은 당연히 하고 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역시 당연한 것은 없었다. 위가 아닌 앞으로 뛰어야 하는 걸 머리와 마음으로는 알지만, 몸이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발가락 밑 발바닥이 무지하게 아팠다. 실내 운동화를 챙기지 못한 패착이었다.
뛰기 위한 준비 동작은 로프에 의지한 채 앞으로 비스듬히 서서 골반을 내미는 것부터 시작했다. 내밀기 까진 쉬웠다. 여기서 무릎을 살짝 밴딩 하고, 발뒤꿈치를 땅에서 띄우고, 발가락이 아닌 발바닥으로 디딘 채 대각선 앞으로 뛰어야 했다. 추구미는 나비였지만 도달가능미는 나방이었다. 어딘가 구리고 묘하게 옹색했다.
힘이 빠져 무릎을 살짝만 밴딩해야 하는데 너무 굽히고, 일어나진 못해서 무릎을 꿇은 채 로프가 당기는 대로 질질 끌려가기도 했다. 성동일 물아일체 사진처럼 로프에 끌려갔다. 선생님의 아이고 저런 저런 같은 추임새로 인해 웃기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로프가 나를 당겨줄 때의 재미는 어쩔 수가 없었다.
중심만 잘 잡으면 탄력을 이용해 스쿼트와 런지를 신나게 할 수 있고, 잠시나마 공중에 머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공중으로 올라갈 때마다 끼얏호~! 신난다! 하고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버디는 준비된 근력만큼이나 많이 뛰고 많이 소리 냈다. 이 사람 대체 일상에선 이런 신남을 표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운동 고수들은 다 그런 걸까 싶은 생각이 슬쩍슬쩍 들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동작을 합쳐 하나의 안무를 해보기로 했는데, 마음이 급해지면 타이밍을 잃고, 순서를 신경 쓰다 보면 중심을 잃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노래에 맞춰 약간의 안무까지 할 수 있겠지 했던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스쿼트-런지-사이드런지 후 반바퀴 돌아 나방 점프를 하며 마무리했다.
우리의 모든 움직임은 약간 해상도가 낮은 영상 같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 끝나고 로프에 걸었던 몸을 풀고 나서 장난 삼아 런지를 한번 했다가 잠시 벗어났던 중력이 느껴지며 허벅지가 묵직하게 아파왔다. 모래주머니를 떼고 있다가 다시 찬 기분이었다. 버디도 느끼는 바가 똑같았는지, 탈의실에 들어오며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모습으로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지하였던 스튜디오를 빠져나가기 위해 계단을 오를 때 또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우린 둘 다 말로 하진 않았지만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일 아침에 운동 어떻게 하지.."
그저 방방이라고 생각하고 가면 큰 오산이지만, 방방만큼 재밌는 번지피지오였다.
선생님의 텐션도 상당했기에, 스튜디오를 빠져나오며 운동 중 잘못 따라한 제스처를 다시 하며 이제 가보겠다고 하니, 똑같은 제스처에 웨이브까지 넣어서 배웅해 주시는 모습에 박장대소를 하며 나왔다.
만족도 200% 번지피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