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에 대하여

잊는다는 건, 보관하는 것이다.

by 피곤한직장인



‘망각은 신이 준 인간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느낀 모든 기쁨과 슬픔을 하나도 빠짐없이 현재형으로 안고 살아간다면,

그 무게에 짓눌려 우리는 살 수 없을 것이다.


사랑했던 강아지가 세상을 떠나고, 연인이 떠나가고, 점점 야위어가던 할머니를 지켜보던 그날들.

나쁜 기억은, 심지어 좋은 기억들조차도 망각이라는 축복 아래에서 조금씩 흐릿해져 간다.


하지만 신이 준 망각은 완전하지 않다.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잘 접어 마음속 서랍에 넣어둘 뿐이다.

그 서랍 안에는 수많은 감정과 기억들이 '라벨'을 단 채 조용히 보관되어 있다.




중학생 때 시추를 키웠었다. 이름은 다소.

그 아이가 커 가는 동안 느꼈던 사랑, 함께한 산책과 낮잠 속의 따스함,

노견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느꼈던 슬픔.

그 모든 복합적인 감정은 지금 ‘사랑스러웠던 다소’라는 라벨 하나로 서랍 안에 보관되어 있다.


살다 보면 어떤 계기로, 좋든 싫든 그 서랍이 열릴 때가 있다.

지나가던 강아지가 다소를 닮았다거나, 드라마 속 인물 이름이 옛 연인과 같을 때.

그럴 때면 우리는 꺼내놓을 생각조차 없었던 감정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러한 감정 기억을 Peak-End Rule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감정의 전체가 아니라, 가장 강렬했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만 기억해

전체의 인상을 왜곡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있었을 때, 당시 함께 갔던 여자친구와

다투고, 화해하고, 둘이 돈이 모자라 고생도 많이 했다.

그 시절은 분명 복잡하고 혼란스러웠지만,

지금 내 기억 속에서는 “젊어서 고생한 좋은 추억”이라는 말로 정리되어 있다.




이처럼 감정을 요약하고 정리하려는 경향과는 정반대의 시도를 한 작가도 있다.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는 기억과 감정을 요약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 기억, 생각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끊기지 않게 서술해냈다.

그 소설은 마치 한 인간의 의식 자체가 활자로 흘러나오는 것 같다.




어느 날, 회사 동료가 영국산 유시몰 치약을 선물해줬다.


그 치약을 보는 순간, 그것이 오래 전 여자친구가 독일에서 쓰던 치약이라는게 떠올랐고,

그와 함께 마르셀 프루스트의 문장처럼 수많은 기억이 밀려왔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처럼 복잡한 감정들이 잠시 나를 휩쓸고 지나갔지만,


나는 다시금 대니얼 카너먼의 방식대로 그 기억에 ‘좋았던 기억, 잘 지냈으면 하는 친구’라는 라벨을 붙여

조심스럽게 다시 서랍에 넣어두었다.




기억은 때때로 아프고, 때로는 아름답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그것을 현재진행형으로 끌어안고 있을 필요는 없다.


기쁨도, 아픔도, 적당한 때가 되면 서랍에 넣어야 한다.


기억은 정리되고 나서야 비로소 ‘추억’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 그 서랍을 다시 열었을 때,

마주할 수 있다면, 아프지 않다면 그것이 바로 극복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담담하게 정의할 수 있다면,

우리는 결국 기억을 이겨낸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잘 정리하고 품어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간 것은 어찌됐든 서랍에 넣고,

새로운 현재를 맞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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