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1장

: 꾸준히 읽고 계속 쓰는 사람

by 라이블리

지금껏 살아오면서 글쓰기는 학생 시절 독후감 제출을 위해 쓰는 것이 전부였다.

나름의 내면적 소용돌이가 꽤 휘몰아쳤었던 사춘기를 보낸 나는 일기를 매일 썼었으나 일기는 그저 마음의 위안을 위한 끄적거림이라 생각했었다.

글을 쓰는 일은 전문가들만 하는 분야라고 생각했었다.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과 육아에 정신없이 살아오는 동안 나의 삶에서 글을 쓰는 행위는 행방불명되었다.

책은 꾸준히 읽어왔다.

가족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쏟으며 나를 놓치고 사는 동안에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책은 놓지 않고 계속 읽어 나갔다.

아이들 방학이 끝나고 나면 책 한 권 들고 카페를 찾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책을 읽고 있으면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엄마들 모임, 지인들과의 만남, 전시 관람, 영화 관람등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탈출구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를 꾸준히 성장시키는 것은 독서 만한 것이 없었다.

계속 읽어나가다 보니 문득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내가? 왜? 대체 뭘? 쓸려고?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글을 쓸 필요가 없다는 이유가 항상 따라왔지만 결국은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끝이 났다.

인풋이 되다 보니 자연스레 아웃풋이 되어 나오는 건지, 무엇이 쓰고 싶은 건지도 모른 채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차가운 이슬이 맺히는 새벽녘, 아스라이 시야를 가리는 안개처럼 확실하게 잡히는 것이 없이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어느 날 문득 둘째가 말했다.

"엄마도 책상을 사서 쓰는 게 어때?"

식탁에서 소파에서 책을 가지고 부유하고 있는 내가 안정되 보이지 않았는지 아빠도 언니도 자기도 다 책상이 있는데 엄마만 없다며 엄마도 책상을 가져 보라고 했다.

"그래? 그럴까?"

그 말을 들으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왜 나도 모르게 내 의식 속에서 책상과의 인연은 끝났다고 여기고 있었을까.... 당장 서칭을 시작하고 책상을 주문했다.

책상이 배달된 뒤 조각을 맞추고 나사를 조이며 조립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내 책상을 가지게 된 기쁨에 비하면 이 정도 힘듦이야

중년이 된 지금 내 나이에 가지게 된 책상의 가치와 소중함은 유년기 때 가졌던 책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당연한 거라 여기며 될 수 있으면 앉고 싶지 않았던 자리가 유년기의 책상이었다면 지금의 내 책상은 앉아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갓처럼 마음이 꽉 차고 여기서는 무엇이든 하면 다 될 것 같았다.

좋아하는 그림도 앞에 놓고 스탠드도 사서 왼쪽 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내가 좋아하는 책, 보아야 하는 책들도 가지런히 꽂았다.

틈만 나면 앉아서 책도 보고 스케줄도 점검하고, 그저 책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뿌듯했다.

아직 글을 쓰지는 않았다.

여전히 쓰는 것에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나를 보던 첫째가 "엄마,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써보지 그래?"하고 말했다.

"브런치스토리? 네가 브런치스토리를 어떻게 알아?",

"나 5학년 때 카톡 처음 시작하고부터 브런치스토리에 있는 글들 매일 들어가 읽었었어."

"그랬구나. 엄마보다 낫네~"

" 그러니까 엄마도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써봐"

첫째와 대화 후 고민이 시작되었다.

진짜 글을 써볼까? 뭘로 글을 쓰지? 어떻게 쓰지? 일단 가입을 하고 또 몇 달이 지났다. 나는 뭐든 하게 되면 예열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다.

딸들의 조언과 권유를 스펀지처럼 흡수하긴 했지만 탐색하는 시간으로 몇 달을 흘려보냈다.

다른 작가들의 글들을 읽어 보며 시간이 지나갔다.

몇 가지 기능들을 시험해 보다 다시 저녁 준비하러 자리를 뜨고 다시 며칠이 지나 글을 좀 쓰기 시작하다 채 마무리를 못하고 다시 서랍에 저장하기를 반복하며 또 몇 달이 흘렀다.

그러던 차에 작년부터 여러 가지 일들로 복합적으로 마음이 힘들었다.

누군들 자기만의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겠냐만은 나이가 들어가며 더해지는 삶의 무게에 버겁고 힘듦이 쌓이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이 힘듦을 계속 마음에 담아 두고 있자니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담아 두고 있는 것들을 어떤 형태로든 덜어 내야 할 것 같았다.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드라마를 본 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옛날 생각이 나면 추억에 대해 쓰고 싶어지고, 미술 전시를 보고 나면 현장에서 내가 받았던 감동들과 작품들을 소개하고 싶었다.

제대로 갖추기를 기다리기 전에 한번 써보자 마음먹고 몇 개의 글을 써서 작가 신청을 눌렀다.

클릭하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은 그대로이지만 오직 나만이 아는 나의 비밀스럽고도 새로운 세계에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기대감은 내려놓고 기다리자 하면서도 문득문득 궁금해지고 나도 몰랐던 간절함이 더해지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알림이 떴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어머... 나도 작가가 되었다! 그때 그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나의 이 기분과 느낌을 오롯이 담을 수 있는 말을 찾기가 힘들었다.

아직은 많이 어설프고 서툴다. 하지만 이제 나도 작가다.

마치 학생시절 임명장을 부여받고 오늘부터 임기를 시작한 회장처럼 공식적인 당당함을 얻은 느낌이었다.

20년 가까이 주부로만 살아왔던 나의 삶에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같았다.

어떤 문을 두드려야 하는지도 몰랐고, 두드린다고 나에게 문을 열어줄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브런치 스토리가 그 문을 열어 주었다.

이제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도 나는 글을 쓰는 데 긴 시간 예열이 필요하고 썼다 멈추고, 썼다 지우는데 시간을 보내느라 많은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쓴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발행'을 클릭한다. 클릭하고 난 후에는 숨고 싶다.

SNS도 하지 않는 나는 온라인 세상에 나를 내보이는 것이 아직은 어색하고 매끄럽지가 못하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만 맴돌던 생각들이 정리가 되고 문자가 되어 하나의 스토리가 되는 과정은 내 속에 눌러왔던 나를 표현하는 것 같아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후련하면서도 안정감을 준다.

나의 온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두 딸들, 엄마가 되게 해 주어서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이제 작가라는 꿈도 꿀 수 있게 해 주니 내 삶의 진정한 은인들이다.

그리고 나에게 문을 열어 주고 공간을 내어 준 '브런치 스토리'..... 참으로 감사하다.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더듬더듬, 보폭도 일정치 않게 내딛고 있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나만의 이야기가 새겨진 길이 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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