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om Vitae

핑크와 병원 놀이

by JVitae

한동안 *핑크가 제일 좋아하던 놀이는
병원 놀이였다

세 살 인생에
병원에 실려간 기억
병원에 입원한 기억
병원서 수술한 기억
보다 찐한 기억도 없었겠지

본인이 환자 역할이 아닌
의사, 간호사 역할을 한다는 것에
정말 신나했다

반면 난
날마다 핑크에게 진찰받고 주사 맞는 것이 지루했다
하지만 가끔
맘이 찡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

집 근처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핑크가 어디서 가느다란 나무 막대기를 찾아오더니
여지없이 병원 놀이를 시작했다

난 늘 환자 역할이라
열심히 아픈 척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자긴 의사가 아니라 엄마라며 역할을 바꾸더니
아파하는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아
귀에 대고
It's ok. Mommy's here. You're doing great. You're gonna be ok.
속삭이며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우리가 해줬던 말이었다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 핑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우리 말이 가닿길 바라며
귓가에 속삭여주던 말이었다
애는 다 알고 있었다

-

어느 날은
거실 서랍 속 브라운 귀체온계가 핑크 손에 들어갔다
당장 나더러 바닥에 누우라 하더니
귀에 꽂고 체온을 쟀다
핑크의 다음 대사가 뜻밖이었다

어? 38도, 자기야, 타이레놀! 아, 어떡하지, 병원 가야 하나? 가방, 가방..

허둥대는 시늉을 하며 가방이 될 만한 걸 찾아 나섰다
병원에 갈 가방을 싸려는 모양이었다

핑크가 열만 났다 하면 우리가 경기가 날 지경이었다
애가 또 심하게 발작할까 봐서다
자기야! 38도야! 타이레놀!
자기야! 39도야! 응급실 가야 할 것 같아!

응급실 가는 것도 입원하는 것도 자주 해봤기 때문에
어떻게 짐을 싸야 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긴박한 순간이 오면
늘 정신없이 허둥거렸다
그 모습을 애가 내내 지켜보고 있었을 거란 사실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그랬다
그게 우리의 2024년이었다
요즘 핑크는 공주 놀이와 그림 그리기에 꽂혀있다

핑크와 병원 놀이를 한 지도
꽤 됐다


*핑크: 첫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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