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용어에 Risk Lover(위험 선호자)와 Risk Averter(위험 기피자)라는 것이 있다
투자 결정을 할 때 위험 혹은 불확실성을 얼마나 감수할 의향이 있는 사람인가를 나타내는 말이다
Risk Lover는 고위험 고수익, Risk Averter는 저위험 저수익 투자상품을 선택하겠다
우리 집에는 Text Lover 하나와 Text Averter 하나가 산다
텍스트 읽기를 즐겨하는 자와 힘들어하는 자
남편과 나다
우리 집 Text Lover는 눈길이 닿은 텍스트란 텍스트는 다 읽어치운다
빨리도 읽는다
속독법, 속독학원이 따로 있는 게 이상하단다
빨리 읽어버리면 그뿐
나 Text Averter에게 텍스트란 날 가로막는 벽과 같다
벽을 넘기 위해서는 시선을 텍스트에 갖다 대는 것 이상의 결심이 매번 필요하다
모순적이지만 내게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는 취미가 있다
속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동경일까
새책을 빌려온 기분에 몇 챕터를 뒤적이고 나면 침대 머리맡에 몇 주가 지나도록 책을 모셔만 둔다
따뜻한 방에서 메주를 띄우기라고 하려는 듯하다
책을 빌려오고 반납하는 수고가 완전히 헛되지는 않다
한집에 사는 Text Lover가 눈에 띄는 대로 싹싹 읽어치우기 때문이다
기분 나쁜 면이 있다
내가 심사숙고 끝에, 기다림 끝에 한 권 한 권 빌려오는 책들이다
그런데 Text Lover가 가져가 후루룩 읽어버리고는 '어 괜찮았어' 성의 없는 소감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나버리면
김이 샌다
진 것 같다
언젠가 Text Lover가 말했다
자기는 나라면 절대 빌리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빌려 와
근데 읽어보면 다 괜찮아
신기해
내 취향을 인정받은 것 같아 우쭐했다
그럼에도
당연하지! 그거 다 좋은 책들이야!
마음속으로만 소리를 질러야 했던 것은
정작 난 다 읽어보질 못했으므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없었음이다
대학교를 왕복 서너 시간씩 걸려 매일 통학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지하철에 앉아 할 일이 없으니 책을 많이 읽었다
무슨 수를 써야 Text Averter가 다시 책을 잘 읽게 만들 수 있을까
오늘도 Text Lover에게 읽힐 책을 한 권 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