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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의글쓰기 Mar 26. 2024

어머니의 이력사(齒歷史)

치아건강

© diana_pole, 출처 Unsplash


지난 주말 KTX를 타고 부모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평소에 가족과 함께라면 차를 운전해서 가는데, 혼자 가는 길이라 기차를 이용했습니다. 운전하는 것과 시간 차이가 별로 없더라고요. 그뿐만 아니라 차가 막혀서 고생할 일도 없고  기차에서 잘 수도 있어서 좋았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늦은 점심을 먹고 어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이가 썩어 흔들려서 치과를 가셨다고 하십니다. 어머니 입안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썩은 이를 뺀 빈자리들과 오래되어 검게 변색되어 버린 땜질한 치아들... 그리고 벌어진 치아 사이를 붙들고 있는 고형물마저 누렇게 되어 있습니다.


치과를 가셨는데, 의사 선생님(아버지와 친구분, 50년 단골)이 이번 주에 일을 그만하고 폐업하신다 해서 할 수 없이 다른 치과를 가셨답니다. 어머니는 이곳에서 가짜이와 고형물 시술을 받으셨던 기억이 나셨답니다.


"의사 선생님, 내가 젊었을 때, 여기서 벌어진 이를 메꾸어 달라 했었는데, 8만 원 들여했었는데. 기억나슈?" 하고는 입을 벌려 앞니를 보여주셨답니다. 치과 선생님은 '그 보형물'을 보시고는 깜짝 놀라셨답니다. 본인이 30년 전 초보 시절에 시술했던 걸 어머니가 기억하고 계셨으니 말입니다~


치과치료, 치과시술

© designer4u, 출처 Unsplash


 어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치아가 고르지 못해서 속상하셨습니다. 저도 아머니를 닮아서 치열이 고르지 못했고 초등학교 시절, 교정하러 갔다가 너무 돈이 많이 들어서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가끔 그 일을 아쉬워하십니다.


어머니는 못난이 이를 가지고도 80년을 잘 버텨오셨습니다. 부모님은 자식들 키우느라 치아관리를 제대로 하셨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적금에서 나오는 이자를 모아서 임플란트 시술을 받으십니다.


어머니는 손가락으로 아래 앞니를 흔들어 보이십니다. '아무리 허술해도 제이가 제일이다'랍니다. 이가 빠지지 않는 한 그냥 쓰신답니다. 어머니는 허허 웃으십니다.


"엄마, 어쩌다 이렇게 이가 흔들렸어요?"

여쭈어보았는데, 갑자기 아버지의 흑역사가 튀어나옵니다.

"응, 젊은 시절 내 아버지가 술 주정할 때. 팔꿈치에 앞니를 맞았지 뭐냐..." 아버지의 엘보 타격이라니!

흑, 어린 시절 아버지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참다 참다.. 한 번씩 술주정을 하셨지요.


어머니의 치아에는 수많은 애완과 사연이 숨어있었습니다. 그래도 자식들 부담 주지 않고 스스로 치료받으시니 당당하십니다.  이 관리는 결국 돈과 시간의 문제이지요.




다음날 어머니와 저는 함께 집을 나셨습니다. 어머니는 세탁소에 옷 맡기고 골다공증 검사하러 병원 가는 길이고, 저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가야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종이가방에 음식을 가득 담아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차역 앞에서 현금 20만 원을 봉투에 담아서 제 주머니에 꼭 넣으십니다.


'차비해라...' 저는 그 손을 차마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제가 용돈을 드려야 하는 데, 거꾸로 어머니에게서 용돈을 받습니다.


흔들리는 이보다 자식들 뒷바라지가 항상 먼저이셨는데, 그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절대 마르지 않습니다.


오늘 살펴본 어머니의 치아 상태는 볼품없었습니다. 검고 누런 치아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더 반짝반짝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어머니 아버지의 입안을 살펴보세요. 그리고, 그 세월의 사연들을 들어 보세요~


어머니의 사랑, 음식과 돈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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