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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Apr 18. 2022

가까운 사이의 ‘가스라이팅’

피해자로 남을 것인가? 벗어날 것인가?

가까운 사이의 ‘가스라이팅’, 피해자로 남을 것인가? 벗어날 것인가?



최근 각종 매체를 통해서 제법 ‘이슈’가 된 용어가 있습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8년 극작가 페트릭 헤밀턴이 연출했던 연극의 제목인 가스 등(Gas Light)에서 유래했습니다. 연극의 제목처럼 가스 등(Gas Light)을 매개로 남자 주인공은 정상적인 자신의 아내를 정신분열 환자로 몰아가면서 파렴치한 계획을 세우고 실현해 나갑니다. 




이 연극은 1940년 영국, 1944년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이 되었으며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0년 전 영국 런던의 한 저택에서 유명한 오페라 가수 앨리스가 살해당합니다. 앨리스에게는 폴라라는 조카딸이 있는데 유일한 그녀의 상속녀죠. 폴라는 이탈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중 그레고리라는 연주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집니다. 곧 둘은 결혼을 하고 앨리스의 저택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됩니다. 




폴라는 자신이 점점 미쳐간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남편 그레고리에게 더욱 의존하면서 대인관계는 물론 외출조차 혼자서 할 수 없어집니다. 그레고리에 의해서 고용된 두 명의 하인은 폴라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한 명은 귀가 어둡고, 한 명은 폴라가 정신병이라는 그레고리의 말에 그녀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레고리 : 폴라 당신은 자꾸 환상을 보고 있어. 이제 자신이 했던 행동조차 기억을 못 해. 물건은 자꾸 없어지고, 당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렇게 안 좋아 지면 어쩔 수 없이 당신을 전문가에게 맡겨야 해. 


폴라 : 난 아프지 않아요. 그리고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나도 날 못 믿겠어요. 다만 내가 그랬다는 것이 기억이 나지 않아요. 날 어딘가로 보내지 말아요. 조금만 옆에서 참고 기다려 줘요. 노력할게요.




그레고리는 폴라가 스스로 정신이 이상한 것처럼 생각하도록 상황을 설정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만 더욱 의존하도록 만든 것이죠. 다른 목적 때문에.




연주자 그레고리는 사실 오페라 가수 앨리스를 죽인 범인입니다. 이유는 앨리스가 소지했던 희귀 보석을 손에 넣기 위해서죠. 보석을 찾는 것에 실패하고 폴라를 유혹해서 결혼하게 됩니다. 목적은 폴라의 유산과 희귀 보석이죠. 그렇게 폴라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서 각종 상황극을 만들고 폴라를 정신병자로 몰고 갑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폴라는 더욱 남편 그레고리에게 의존하게 되고 심지어 혼자서 외출조차 불가능합니다.




폴라를 정신이상자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사용되었던 매개 중 하나가 바로 가스 등이에요. 남편 그레고리가 매일 밤 외출하면 가스 등이 희미해지고,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당시에는 여러 방에서 가스등을 나누어서 사용했기에 여러 방에 불이 켜지면 자연히 가스등이 약해지는 겁니다. 




그레고리가 외출한 척하고는 빈집을 통해서 자신의 집 다락방으로 몰래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다락방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앨리스가 지니고 있었던 희귀 보석입니다. 다락방에서 보석을 찾기 위해 불을 켜야 했기에 자연히 가스등이 약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 리가 없던 그레고리는 결국 이 때문에 범행의 덜미가 잡히고 맙니다. 물론 극적인 순간에 이모 앨리스의 팬이자 앨리스의 살인사건을 재수사 중이던 경찰의 도움으로 폴라는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남편 그레고리가 교묘하게 상황을 조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폴라의 심리를 조정해서 정신질환자로 만들고, 폴라는 스스로 믿지 못하고 자신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남편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는 거죠. 




현대 사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이 영화의 스토리와 같습니다. ‘가스라이팅’이란 어떤 사람의 심리 상태에 조작을 가해서 자신을 불신하게 하고 가해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심리적인 학대입니다. 




중요한 것은 ‘가스라이팅’이 친밀한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관계가 보호자 관계이고, 그 외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 직장에서는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서 주로 발생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자신들이 ‘가스라이팅’을 가하고 있거나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지만 사실상 ‘가스라이팅’일 수 있는 상황과 말은 무엇이 있을까요? 




예전에 이슈가 되었던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민현서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끔찍한 폭력을 행사하고 그녀의 돈을 마음대로 빼앗아 갑니다. 주인공 지선우는 우연히 민현서를 도와주게 되고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눕니다.



 

지선우 : 그런 놈하고 얽혀서 한 번뿐인 인생 낭비하고 싶어요?


민현서 : 그 사람 인생이 저한테 달려있으면요? 걔, 나 아니면 받아줄 사람 없어요. 인생이 잠깐 꼬여서 화풀이하는 거예요. 원래부터 나쁜 애는 아니었어요. 난 꼭 좋은 남자로 만들 거에요.




민현서는 끊임없이 끔찍한 폭력을 당하면서 왜 가해자인 남자친구를 끊어내지 못하는 걸까요?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사랑해서랍니다. 정말 그럴까요? 연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스라이팅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런 경우입니다. 한때 서로 사랑하면서 즐거웠던 순간을 되새기면서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현재의 폭력은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가해자에게 오히려 연민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남자는 여자가 떠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함부로 대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를 떠날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감내합니다. 연인 사이의 ‘가스라이팅’은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상대의 정신을 무기력하게 만들어서 자기 자신을 불신하게 만드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합니다. 가족 간 혹은 직장에서도 흔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가해자는 주로 심리적, 물리적으로 우위의 입장에서 피해자의 심리를 자극합니다. 




가족 간에 일어나는 상황이란 보통 이런 경우입니다. 자녀 한 명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거나, 자신의 수입 대부분을 가족을 위해서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가족이니 자신의 희생이 너무도 당연시 여겨지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 또한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힘든 가족을 돌보지 않는 파렴치한이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디까지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지 적정선을 모른다는 겁니다. 




가족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이 가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정도를 정확하게 정해놓는 것입니다. 행여나 가족의 비난이 있을지라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선을 정하는 것이 더 큰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최선책입니다. 재정적인 것은 금액의 한도를 정하고 신체적 돌봄이라면 시간의 한도를 정해놓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변화로 갈등이 생길 수도 있지만 조금씩 서로 적응해 내갈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물리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서 ‘가스라이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사의 생각과 말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한 부하직원의 주관과 판단이 개입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가스라이팅’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상사는 언제나 나를 비난합니다. 

그 비난으로 마치 나는 모든 일 처리를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점차 상사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함부로 상사의 비난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계속 적인 비난으로 자존감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김 대리는 이해력이 부족한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김 대리 왜 이렇게 업무가 느려. 처리방식도 고지식하고.” “김 대리는 일머리가 없네.”



두 번째, 비난으로 자존감을 한없이 낮춘 후에는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오직 자신뿐인 것처럼 말합니다.

 “김 대리가 더욱 발전하기를 원해서 이런 말 하는 거야. 좀 더 노력해봐.”, “김 대리 내가 끌어줄게. 나만 믿고 열심히 해봐.”, “김 대리, 지금 우리 회사 나가면 받아주는 회사도 없어. 갈 때 가더라도 실력은 키워야 갈 곳이 생기지. 지금 실력으로는 안 돼.” 자신을 생각해 주는 척하는 몇 마디 말 때문에 가해자를 싫어했다가도 다시 의지하게 됩니다. 



세 번째, 상사 혹은 동료가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면서 누군가의 헌담을 하는데, 꼭 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갠 실력이 없어. 나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하는데.”, “개랑 일하기 힘들지. 말귀를 못 알아듣고 답답하고 제대로 하는 게 없어.”,“우리 회사를 어떻게 들어왔나 몰라. 빽이 있나 보지.” 




이 외에도 회사에서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상황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가해자가 함부로 하는 언행 때문에 피해자는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받고 회사 가는 것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이 왜 이렇게 우리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런 ‘가스라이팅’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스라이팅’의 기본적인 정체는 바로 ‘부정암시’입니다. 암시란 생각이 말 혹은 글을 통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로 이동해 간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끊임없이 서로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뱃속에서는 엄마의 생각을 듣고, 태어나면서는 부모의 생각을 받아들이죠. 그리고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이 시작되면서 가족 이외 주변인들의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이렇게 주고받은 생각 중에서 부정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타인의 부정적인 생각이 나에게 들어와서 마치 처음부터 나의 생각이었던 것으로 자리매김을 해버립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를 향해서 부정의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우리 자신을 믿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흔히 알고 있는 ‘가스라이팅’의 모습으로 우리의 자존감을 한없이 망가트립니다. 




상대가 우리를 향해서 하는 ‘부정암시’ 일종인 ‘가스라이팅’은 그냥 그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실천규칙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직장 및 대인관계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상황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현재 상황이나 관계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힘들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면 그런 관계를 만들고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 지인, 직장 상사 누든지 우리를 향해서 부정의 표현 및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제공하고 있다면 모두 해당합니다. 



두 번째, 우리를 향한 부정적인 표현 및 평가를 차단해야 합니다. 

스님이 어느 무례한 부자와의 대화를 나눈 이야기입니다. 동냥하시는 스님께 부자가 욕을 하니 스님은 그저 미소를 짓습니다. 화를 내는 대신 미소를 짓는 스님이 이상하다고 여겨 이유를 물어보니 스님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손님이 당신께 선물을 주었는데 그것을 당신이 거절하면 선물은 누구의 것이 됩니까?”

“그야, 손님 것이지요.”

“그럼 그 손님이 당신께 선물 대신 욕을 했는데 그것을 거절하면 욕은 누구의 것이 됩니까?”

“그야 물론 역시나 손님 것이 되겠네요.”

“전 당신이 나한테 했던 욕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화낼 이유가 없지요.” 


우리를 향한 부정적인 표현과 평가는 스스로 거절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그 모든 부정은 오롯이 말한 사람의 것이 되는 겁니다. ‘쓰레기’를 건네면서 우리를 생각해서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괜히 그것을 받고 기분 나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세 번째, 내면을 강화하기 위한 긍정의 확언으로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를 가장 잘 알고 소중히 챙겨야 하는 당사자는 우리 자신입니다. 남이 좋은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에게 자신이 얼마나 괜찮고 좋은 사람인지 말해 주어도 됩니다.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해준 말이니 얼마나 정확할까요? 그러니 매일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는 자신에게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준다면 값진 ‘긍정 암시’가 될 겁니다. 




20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심리학자이자 약사였던 에밀쿠에는 저서 <자기암시>에서 의식과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간의 정신영역인 의식과 무의식의 대립에서는 항상 무의식이 이깁니다. 이유는 무의식의 영역이 훨씬 크고 거대한 정신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무의식에 통하는 언어가 바로 상상입니다. 무의식에 새겨진 상상들은 반드시 현실이 되어 나타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상상으로 얼마든지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식적인 영역이 고유의 힘을 빌려서 상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 있습니다. 이것을 ‘자기암시’라고 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긍정적인 상상이 되지 않는 순간에는 ‘자기암시’를 활용해서 긍정 확언들을 우리의 내면에 심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향한 긍정의 자기암시가 하루 이틀 쌓여갈수록 우리의 내면은 점점 강해지는 겁니다. 그리고 타인의 말에 상처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한 사람의 소중한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 ‘가스라이팅’은 우리가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수없이 하는 생각과 말은 습관입니다.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나쁜 생각과 말 습관’으로 나는 물론 상대방의 정신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는 시간을 함께 가져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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