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공감대화는 상대의 마음을 물어보는 것이다

by 김민경

공감, 공감 대화는 상대의 마음을 물어보는 것이다


“공감의 다른 이름은 존중입니다. 공감의 또 다른 이름은 배려입니다. 당신을 향한 존중과 배려의 공감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입니다. 당신은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외롭고 힘든 순간에 우리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진솔한 대화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마음을 나누는 대화는 중요한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공감이다. 공감은 당신이 이 순간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아주고 이해하는 마음이다. 공감은 외로운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손길이다. 공감은 사람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이고 그대로의 받아들임을 말한다.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방송인 셀레스트 헤들리(Celeste Headlee)는 저서 『말센스』에서 친구와 공감 대화를 나누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친구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었던 공감 대화는 오히려 친구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다고 했다. 우리의 따뜻한 진심이 잘못된 방향을 향한다면 충분히 상처가 될 수 있다. 어떤 대화였길래 셀레스트 헤들리는 친구에게 위로는커녕 상처만을 남겼을까? 셀레스트의 친구는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친구를 위로하고자 카페에서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었다. 슬픔에 젖어있는 친구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들의 대화를 이랬다.


셀레스트 : 네가 얼마나 슬픈지 충분히 이해해. 난 태어난 지 9개월이었을 때 아빠를 잃었어. 얼굴도 몰라. 아빠가 없는 삶은 정말 슬펐어.

친구 : 뭐? 네 말은, 너는 아빠 얼굴도 모르는데, 나는 30년이나 아빠 곁에서 사랑을 받아왔다는 거네. 30년이나 아빠와 함께 살아온 나는 너보다 행복하다는 말이니? 네가 나보다 더 불쌍하니까 나는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셀레스트 : 아냐. 그런 뜻이 아니라, 다만 네 마음이 얼마나 슬픈지 이해한다는 뜻이야.

친구 : 네가 나를 이해한다고? 천만 해. 넌 내 마음을 죽어도 몰라. 내 슬픔은 안중에도 없고 넌 그저 너의 슬픈 경험만을 늘어놓잖아. 위로해 준건 고마워. 이만 갈게.


친구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한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셀레스트의 마음은 잘못 전달 되었고 친구는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고 떠났다. 셀레스트는 당시에 친구가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친구가 자신의 아픔을 마음껏 털어놓게 해야 했다. 대화 주제를 ‘친구의 아픔’에서 ‘나의 아픔’으로 바꾸면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실수 때문에 좋은 의도로 했던 ‘공감’은 ‘반감’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 만약에 셀레스트가 다른 공감의 대화를 했다면 어땠을까?


셀레스트 : 이 순간 아버지를 잃은 너보다 더 슬픈 사람이 어디 있겠니? 네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상상할 수 없어. 하지만 네게 진심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

친구 : 말만이라도 고마워. 난 아직도 아버지를 잃은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아. 아버지와 함께한 행복한 기억이 생생한데, 이제는 아버지를 볼 수 없다니.

셀레스트 : 아버지가 네게 많은 사랑과 행복을 주셨구나. 가장 기억에 남는 행복한 순간이 언제니? 그 행복한 기억이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평화롭게 만들지 않았을까?

친구 : 정말 그럴까? 마지막 순간에 평안하셨을까? 그랬다면 좋겠어.

셀레스트 : 난 믿어.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에 평안하셨을 거야. 네가 아버지를 많이 사랑하고 존경했다는 걸 아버지는 알고 계실 테니까.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면 친구는 충분히 마음의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 순간 모든 대화는 오로지 친구의 아픔과 아름다웠던 추억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체로 공감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감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 알고 보면 공감이 아닌 경우가 많다. 감정을 착각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불쌍한 사람을 보면서 ‘안 됐어. 불쌍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공감이 아닌 동정이다. 동정심을 자극하는 광고는 많다. 굿네이버스 광고에서 ‘케네디’라는 9살 꼬마 아이를 본 적이 있다. 부모 없이 할아버지와 5명의 동생을 돌보는 케네디는 매일 7시간을 일해서 번 돈으로 이틀 만에 첫 식사를 했다. 그마저도 겨우 고구마 3개가 전부였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나무에 붙은 흙을 먹고 있었다. 케네디를 보며 ‘얼마나 힘들까?’ 하고 가슴에 저며왔다. 이런 감정은 공감이 아닌 ‘동정’이다. 동정은 타의에 의해서 생겨나는 우리의 수동적인 감정에 가깝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감정을 착각할 때가 많다. 우리가 공감이라고 생각한 것이 알고 보니 동감인 경우다. 공감과 동감은 다른 감정이다. 예를들어 친한 친구가 회사생활의 괴로움을 하소연했다. “정말 회사 가기 싫어. 그 못된 선배는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야. 아! 짜증나!” 이 말에 “뭐 그런 선배가 다 있냐? 내가 더 화가 나네”라고 했다면, 이건 공감이 아닌 ‘동감’이다. ‘동감’은 친구의 상황을 마치 나의 상황인 것처럼 동일시해서 발생 된 나의 감정이다. 친구의 경험이 곧 나의 경험이 되었기에 완전히 같은 동감을 만들어낸다. 같은 상황에서 동감이 아닌 공감의 대화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친구 : 정말 회사 가기가 싫다. 그 못된 선배는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야.

: 그 선배, 너한테 어떻게 하는데?

친구 : 은근히 다른 사람의 업무를 나한테 시켜. 내가 무슨 봉이니? 팀 업무를 도맡아 하고. 날 싫어하는 것이 틀림없어.

: 네가 팀 업무를 도맡아 하는 상황이라면 무척 힘들 것 같아. 그런데 그러는 이유가 있어? 혹시 팀에서 네가 가장 실력이 뛰어나니까 그런 건 아닐까?

친구 :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지. 나만큼 꼼꼼하고 정확한 일 처리를 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 그렇구나. 역시 넌 회사에서 인정을 받는구나. 대단해. 네 선배도 너 말고는 믿을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 업무가 잘못되면 큰일 나니까. 네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 그런 걸 거야.


이 대화는 모든 감정의 초점이 내가 아닌 친구에게 맞춰져 있다. 친구가 느꼈을 감정을 인정하고 친구의 상황만을 대화의 소재로 삼았다. 그 덕에 친구는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불쌍한 타인을 향한 ‘동정’이나 친구의 분노에 함께 분개하는 ‘동감’은 저절로 생긴 우리 감정이고 그 주인공도 우리다. 반면에 공감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이 주인공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오롯이 상대방의 감정에만 집중하면서 그가 느끼는 상황과 감정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것이다. ‘아~ 네 상황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느끼겠구나!’라고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진짜 공감’이다. ‘진짜 공감’을 위해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잠깐만 상자 속에 넣어두자.


미국 최초의 명상 지도자 조셉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은 공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공감은 연민의 시작이다. 공감은 우리 자신의 삶만 바라보고 달려가기 전에 잠깐 멈추고 다른 사람에게 참으로 어떤 일이 생기고 있는지 느끼는 것이다” 공감은 연민의 시작일 수 있지만, 관계의 시작이라고 표현 하고 싶다. 우리를 향해있는 시선은 잠깐 멈추고 상대방을 바라보자. 그에게 일어난 일을 바라보고 그가 느꼈을 감정을 이해하면서 관계는 시작된다. 관계의 시작을 알리는 바른 공감의 모습 2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관계의 시작을 위한 공감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대화를 하는 것이다. ‘존중의 공감’은 상대를 미소짓게 한다. 수년 전에 EBS 교육다큐 『학교란 무엇인가』에서 상위 0.1% 학생들과 평범한 학생들이 부모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방영된 적이 있다. 상위 0.1% 학생들과 부모의 대화는 조금 특별한 것이 있었다. 특정한 문제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도 두 사람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특정한 문제는 자녀가 밤새 컴퓨터 게임을 했다는 사실이다. 같은 주제로 나눈 대화에서 상위권 자녀와 평범한 자녀는 어떻게 부모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상위권 학생과 부모와의 대화는 이랬다.

엄마 : 어젯밤처럼 밤새 컴퓨터 하면 네가 힘들지 않을까?

아들 : 어젠 정말 너무 끌려서 중단할 수 없었어요.

엄마 : 게임이 너무 재미있으면 그런 충동은 조절하기 힘들 수 있지. 그럼 계획을 세워서 게임의 충동을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아들 : 음, 제가 계획을 지킬까요?

엄마 : 그러게, 게임이 이롭지는 않은데 네가 열심히 몰입해서 하는 것은 사실 부럽네. 한 가지에 무아지경이 될 정도로 몰입하는 것은 멋진 것 같아.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게임은 네가 조절하고 대신 운동과 건강을 함께 신경 쓰기.

아들 : 네, 좋아요. 그 정도면 가능해요.”


평범한 학생과 부모의 대화는 이렇다.

엄마 : 네가 맨날 컴퓨터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면, 엄마는 기분이 어떻겠니? 사실 집에만 오면 엄마는 짜증만 나

아들 : 아....

엄마 : 게임도 머리에 든 게 있어야 하지, 머리는 비었는데 매일 게임만 하면 되겠니?

아들 : ...

엄마 : 게임만 그렇게 하면 네 동생이 너한테 뭘 배우겠어?

아들 : 아. 정말. 알았어요.

엄마 : 저거 봐, 엄마한테 말하는 태도.

아들 : 정말, 짜증 나요. 그만 해요.


두 모자의 대화는 대화하는 분위기도 달랐지만, 대화 후의 관계도 달랐다. 첫 번째 대화에서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오롯이 자녀의 감정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문제 상황 대해서 자녀의 생각을 듣고, 스스로 상황을 통제해 나갈 수 있게 기회를 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녀가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에 대해 부정하지 않고 인정해 주고 있었다. 오히려 게임을 하는 동안 아들이 보여주는 ‘몰입의 모습’을 칭찬했다. 많은 학생이 원하는 어머니의 상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한다.


반면 두 번째 대화에서 엄마는 자신의 감정에 더욱 집중하고 자녀의 감정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자녀의 생각이나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주로 하고 있었다. 그 말이란 대부분 자녀를 향한 비난이다. 결국, 대화의 끝은 대화의 단절로 이어졌다. 반복되는 대화의 단절은 영원한 단절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관계를 끝내는 종이 아니라 시작의 종을 울리고 싶다면 상대를 존중하자. 존중의 공감 대화는 우리를 미소짓게 하니까.


둘째, 관계의 시작을 위한 공감은 상대를 배려하는 ‘배려의 공감’이다. 배려의 공감은 보살피는 마음을 말한다. 어느 시원한 밤에 세 여인은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갔다. 늙은 여인, 중년 여인, 젊은 여인이다. 중년 여인은 차를 주문했다. 늙은 여인은 차가운 쥬스를 원했다. 하지만 중년 여인은 차가운 것은 몸에 안 좋으니 따뜻한 걸 마셔야 한다고 했다. 따뜻한 차를 주문했다. 젊은 여인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원했다. 하지만 중년 여인은 커피는 언제든 먹을 수 있으니 특별한 것을 주문해야 한단다. 그리고 특별한 차를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음료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날 원하는 차를 마신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중년 여인은 늙은 여인과 젊은 여인을 더욱 잘 보살피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했을 때 좋은 차를 대접한 것이다. 하지만 늙은 여인과 젊은 여인은 만족했을까. 베풀어준 배려에 대놓고 화를 내지는 않지만 원치 않는 대접에 만족감은 덜했을 것이다. 중년 여인의 배려는 아름다운 마음이다. 하지만 그 마음의 기준은 상대방이 아닌 자신의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놓칠 수 있는 ‘배려의 공감’이란 이런 모습이다. 보살피는 마음의 진심은 알겠지만 중요한 한 가지를 놓쳤다. 그것은 마음의 기준이다.


소중한 사람을 보살필 때 우리는 그 기준이 자신에게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생각에 좋은 것을 상대방에게 권한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것이 필요 없거나 싫을 수 있다. 우리 생각에 괜찮다고 생각하는 행위는 상대방이 싫더라도 계속한다. 작은 소리에도 고통스러울 수 있는 사람은 고요함을 절대적으로 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TV 소리 정도는 괜찮겠지 라고 생각한다. 배려의 공감을 위해서 우리의 기준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의 기준을 살피자.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상대방이 원치 않는 것을 멈추었을 때 그 사람의 마음에 행복이 피어난다. 배려의 주인공은 상대방이니까.


존중의 공감과 배려의 공감도 상대방의 진짜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공감도 알아야 할 수 있다. 진심으로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싶다면 그 마음을 먼저 물어보자. “당신의 생각은 어때요? 당신은 어떤 마음이에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예요? 원치 않는 것은 뭐예요?” 물어본 말에 답을 해주면 진심으로 듣고 반응해주자. “아~그렇게 생각하는군요. 그런 마음이군요. 그것을 원했군요. 하지만 그것은 싫어하는군요.”


이렇게 상대방에 대해서 알게 되면 우리는 그들과의 관계를 지키는 공감을 할 수 있다. 진정한 공감은 상대를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존중의 마음에서 시작한다. 존중이란 그를 다시 보고, 계속 보는 마음이라고 했었다. 귀한 사람이니까 다시 보는 것이고 소중한 사람이니까 계속 보는 것이다. 이제는 내 생각이 어떤지, 내 감정이 어떤지 보여주려 하지 말고 상대의 생각과 감정에 관심을 가져보자. 그것은 우리 사이에 온기를 불어넣는 따뜻한 공감의 시작이 될 것이다.


※진정한 공감의 모습

1. 진정한 공감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대화를 하는 것이다. 관계를 끝내는 종이 아니라 시작의 종을 울리고 싶다면 상대를 존중하자. 존중의 공감 대화는 우리를 미소짓게 한다.

2. 관계의 시작을 위한 공감은 상대를 배려하는 ‘배려의 공감’이다. 배려의 주인공은 상대방이다. 진정한 배려는 내가 아니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기준이 상대방의 마음이다.

3. 존중과 배려의 공감을 위해서 상대방에게 물어보자. 상대가 답하면 진심으로 반응해주자.

“당신의 생각은 어때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예요? 원치 않는 것은 뭐예요?”

“아~그렇게 생각하는군요. 그런 마음이군요. 그것을 원했군요. 하지만 그것은 싫어하는군요”

keyword
이전 04화온기, 36.5도 따뜻한 말은 관계를 지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