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르기, 남의 말 자르기는 관계에 흠집을 낸다
“우리가 잘라먹지 말아야 하는 것은 라면 면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의 말도 잘라먹으면 안 돼요. 우리의 소중한 관계마저 잘려나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우리말을 멋대로 잘라먹는 사람이니까요”
초등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토론 수업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편을 나누어서 한 가지 주제로 찬성과 반대의 주장을 펼친다. 발언할 때는 손을 들고 말하고, 상대방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신의 주장을 말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어린 시절에 토론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규칙을 잘 배웠다. 토론에서는 자신의 의견은 물론 상대방의 의견도 중요하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 토론에서 보여주는 존중의 규칙은 대화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 우리는 대화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있을까?
국정 청문회 영상 중에서 짧게 편집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질문과 응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감정싸움으로 번져가는 모습들이 꽤 나 있었다. 질문이 끝나기 전에, 답변하고 답변이 끝나기도 전에, 질문하는 등 서로의 말이 엉켜서는 감정싸움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끼어들어서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무례하다는 것쯤은 잘 안다. 그런데도 대화를 나눌 때 그 무례함을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 좀 끼어들면 어때, 괜찮겠지.’ 하고 별일 아닌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대화란 마주 보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다. 그래서 ‘talk with’라고 표현한다. ‘with’는 ‘함께’라는 의미다. 무엇인가를 함께 할 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여럿이 함께할 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조화가 아닐까? 대화에서도 조화로움은 지켜져야 한다. 그 조화를 지키는 첫걸음은 타인의 말을 잘라먹지 않는 존중의 태도다. 우리가 잘라먹지 말아야 하는 것은 라면의 면발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말도 마음대로 잘라 먹으면 안 된다. 일상에서 흔히 발생하는 ‘말 자르기 유형’을 안다면 본의 아니게 말을 자르는 상황을 조금씩 피해갈 수 있다. 대표적인 ‘말 자르기 유형’ 4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대화 중에 끼어들기 유형이다. 누군가의 말을 자르겠다는 생각 없이 자신도 모르게 자르는 경우가 있다. 상대방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황에서 도중에 대화를 끼어드는 경우가 그렇다. 엄마가 어린 아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이다. 옆에 계시던 할머니가 엄마에게 무엇인가를 물어보신다. 엄마는 할머니의 말씀에 즉시 답을 하느라 아들의 말에 대꾸할 수가 없었다. 또다시 할머니와 엄마 사이의 질의응답이 오가고 아들과의 대화는 어느덧 중단되어 버렸다. 아들은 자기 말이 무시된다고 느껴서 토라져 버렸다. 이 순간 어린 아들의 마음은 얼마나 상했을까?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모자의 대화를 중단하셨다. 이 또한 엄밀하게 말하면 말을 자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가족 간의 대화에서 흔히 발생한다. 우리는 가끔 가족이기 때문에 대화 속에서 예절을 생략한다. “가족인데 뭘 그렇게까지 해?”라고 말한다. 너무 가까운 사이라서 새삼스럽게 예절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대화 예절을 굳이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린 자녀와의 대화는 분명히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가족 간의 대화 예절 또한 중요하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향한 대화 예절도 지켜져야 한다.
둘째, 대화를 통해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말을 자른다. 대화에서 유독 말을 가로채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국내 심리학자들은 말을 가로채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은 자신의 말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타인의 말을 중단하면서요” 다른 사람의 말을 가로채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감을 그 순간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있다. 타인은 자신의 말을 자른 사람을 인정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 진심으로 인정받고 싶은 사람은 말 자르기 대신 타인의 말을 듣는 것이 좋다.
대화를 통해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 자신이 쌓아온 지식과 경험, 내면의 가치를 빨리 보여주면서 인정받고 싶다. 그들은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이 힘들다. 즉 자신의 조급함 때문에 타인의 말을 자르는 것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발생한다. 이런 와중에도 대화의 순간이 즐겁게 마무리가 되는 이유는 어느 한 사람이 말을 잘해서가 아니다.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 덕분이다. 배려하는 사람들은 소중한 대화의 순간을 망치기 싫어서 굳이 자신의 기분 나쁨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동안 받아온 따뜻한 배려를 이제는 베풀 때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타인은 우리를 인정한다.
셋째,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타인을 통제하고 싶은 유형이다. 직장에서 타인의 말을 중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장 상사들이다. 독일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자 작가인 코르넬리아 토프는 저서 『침묵이라는 무기』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했다. “상사들은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그 순간의 통제력을 행사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상사는 부하직원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못하고 회의 시작 1분 만에 자신이 발언하는 것이다. 상사들은 ‘말’이 곧 ‘통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부하직원의 말, 팀원의 말을 듣고 수용한다면, 자신이 권력이 없는 무능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된다. 힘이 없으니 부하직원의 의견을 들어준다는 것이다.
코르넬리아 토프는 이런 직장 상사들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계속 떠들어야 통제력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통제력이 없다. 부하직원은 제대로 의사를 전달하는 상사와 통제력을 잃을까 봐 떠드는 상사를 정확하게 구분한다” 통제력을 잃고 권력을 놓칠 것이 걱정되어 계속 말하는 상사들을 안타깝게 표현했다. 자신의 권력을 얻고자 부하직원의 말을 자를 필요는 없다. 사람을 향한 진정한 존중이 그런 가짜 권력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존중받고 싶다면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람은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상관없이 존중받을 수 있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다.
넷째, 상대가 말하는 도중에 전화 받는 유형이다. 예전에는 대화를 나누는 당사자는 오로지 대화에만 집중하기가 쉬웠다. 대화를 방해받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시시때때로 울리면서 서로 간의 대화를 방해한다. 깊은 대화가 오가는 도중에도 전화가 울리면 곧장 전화를 받는다. 중요한 전화라면 받아야겠지만, 자신에게 속 깊은 말을 하는 상대방보다 중요한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앗! 잠깐만, 지금 걸려온 전화 먼저 받을게요. 잠시만 기다려줘요” 이 말을 하는 순간 눈앞에 있는 상대방은 일시 정지 버튼이 눌러진다.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새무얼 존슨(Samuel Johnson)은 말했다. “침묵은 스스로 퍼지기 때문에 대화가 오랫동안 중단될수록 할 말을 찾기가 더 힘들어진다” 맛있는 식사를 중단했다가 먹으면 입맛이 사라지는 것처럼 중단되었던 대화는 할 말이 사라지게 한다. 사실은 ‘입맛’과 ‘할 말’이 아닌 ‘먹고 싶은 마음’, ‘말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식사와 대화를 하는 것은 입이지만, 식사와 대화의 순간을 느끼는 것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한번 중단되면 다시 찾기 힘들다. 꼭 받아야 할 중요한 전화는 받아야겠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대화 중의 전화는 무음이 가장 이상적이다.
사람은 한 번에 한 가지만 할 수 있다. 듣는 동안에는 말할 수 없고 말하는 동안에는 들을 수 없다. 자신이 떠드는 동안에는 어떤 배움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 대화의 통제력을 가지고 싶은 욕구는 잠시만 내려놓아도 좋다. 완벽하게 말해야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경우가 많다. 사람은 덜 완벽한 사람에게 끌린다. 이를 잘 보여주는 한 가지 실험이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앨리엇 애런슨 (Elliot Aronson)의 실험이다. 성공한 인사 두 사람의 인터뷰 영상을 준비했고 그들의 인터뷰 내용은 비슷했다. 첫 번째 사람은 자연스럽게 말을 잘했으며 표현력 또한 매우 고급스러웠다. 실수가 없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다. 두 번째 사람은 다소 긴장했으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있었다. 인터뷰 역시 완벽하지 않았고 심지어 실수로 물잔을 엎었다. 두 사람의 인터뷰 영상을 지켜본 후 피실험자들은 더욱 호감 가는 사람을 선택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95% 이상의 피실험자들이 두 번째 인사를 선택한 것이다.
뛰어난 사람일수록 자신의 불완전함을 보여주면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호감을 받을 수 있다. 대화의 자리에서 타인의 말을 잘라가면서까지 자신의 완벽함을 어필할 필요는 없다. 말하고 싶은 욕구, 대화를 통제하고 싶은 욕구를 잠시 뒤로한 채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넘겨주는 것이 어떨까? 그동안 많은 말을 해왔으니 이제는 타인의 말을 듣는 것도 괜찮다. 듣는 속에서 또 다른 기쁨과 깨달음의 순간이 다가올지도 모르니까.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을 더욱 존중한다. 타인의 말을 듣는 것은 배려이고 베풂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것보다 위대한 행위는 듣는 행위라는 것을 기억하자. 독일의 작가이자 의사인 한스 카로사는 말했다. “잘 알면 세 마디로 족하다. 반면에 잘 모르면 서른 마디가 필요한 법이다” 자신의 진정한 훌륭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여러 말이 필요하지 않다. 단 세 마디면 충분하다. 우리가 몰랐던 사소한데 치명적인 대화습관 하나만 바꿔도 우리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아질 수가 있다.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으로 타인을 말을 잘랐다면 오늘부터 그들의 언어를 진심으로 존중해보면 어떨까? 우리의 소중한 관계를 위해서.
※꼭 기억하기!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말을 자르는 4가지 유형, 이것은 피해가자.
대화 중에 끼어들기 유형이다.
2. 대화를 통해서 인정받기를 원하면,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말을 자른다.
3.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타인을 통제하고 싶은 유형이다.
4. 상대가 말하는 동안에 울려 퍼지는 전화를 받는 유형이다.